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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5-02-27 (금) 00:19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866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24)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절하-32절)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마음에 거하여 진리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 죄의 사슬에서 놓이게 된다는,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6장의 바울의 말을 빌면 더 이상 죄의 종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의의 종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이 말씀에 이렇게 덧붙여 말하는 것이 제게 충격을 주며 마음 속에 와 닿았습니다. ‘진리가 당신을 자유케 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당신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왜 대부분의 신자들이 영적으로 자라는데 어려움을 겪는지 깨달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사실 진리를 잘 몰라서가 아닙니다. 어쩌면 너무나 많은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단지 진리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안다고 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한다면, 이 자리에도 벌써 이미 성숙해진 성도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진리를 알지만, 진리가 우리를 먼저 아프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는 말씀이 실제로 역사하는 것을 막는다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의 죄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왜곡시키고, 자기 편에 맞도록 합리화하며, 논쟁을 벌이기도 하며, 때로는 알고 있는 진리를 무시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피할까 연구하며,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에게는 아프지 않게 합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줄 만큼은 진리가 내 안에서 역사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미성숙하고, 쉽게 분노하고, 완악하고, 냉혹합니다. 교만하고, 정욕으로 가득차고, 탐욕이 넘치며, 자기 중심적이고, 친절하지 못하고, 참 사랑을 하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나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진실로 자유로운 사람들은 과감하게 진리가 자신의 심령을 찢기를 허용하는 사람입니다. 그 고통을 받는 과정 속에서, 아니 그 후에야 자유롭게 됩니다. 참된 치유가, 진정한 자유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여러분들은 진리가 여러분을 아프게 하도록 허락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결단하셔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어떤 핍박이 있어도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한 후에 12지파에게 나누어 주고, 평안을 누리던 시간을 보내고, 이제 그 백성들과 이 땅에서 작별해야 할 시간에 마치 모세가 그랬듯이 세겜에 백성들을 불러 놓고 말씀을 전합니다(수 24:1). 이전까지 받은 하나님의 수많은 축복들을 열거하였습니다(2-13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땅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셨는지(2-4절), 어떻게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게 하시면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면서 구하셨는지(5-7절), 어떻게 그들을 아모리인과 모압 족속에게서 구해내셨는지(8-10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나님께서 여러 전투에서 놀라운 승리를 하게 하셔서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셨는지(11-12절)를 상기시켰습니다. 결론은 분명하였습니다. “내가 또 너희의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축지 아니한 성읍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 거하며 너희가 또 자기의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는다 하셨느니라”(13절)! 이는 그들이 가진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내가”를 강조하시면서, 그들이 노력해서, 농사해서 얻은 것도 아니고 전부 다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강조했습니다.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결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14-15절)고 외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 성실(faithfulness)과 진정(sincerity)으로 섬기라는 명령입니다. 옛날 애굽에서 우상신을 섬기던 일을 그만두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좋지 않거든 우상을 섬기던지, 하나님을 섬기던지 결단하라고 합니다. 여호수아와 그의 가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길 것이니 너희는 결정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응답합니다. 네 번씩이나 ‘우리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기고 그 말씀을 청종하겠습니다’(18, 21, 22, 24절)라고 결단합니다. 이유는 그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들과 지난 시간까지 보호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7절). 또한 아모리 족속을 비롯한 대적들을 쫓아내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8절).
그래서 여호수아가 그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선포하며(25절), 돌을 하나 취하여 그 증거로 삼습니다. 27절에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라 그런즉 너희로 너희 하나님을 배반치 않게 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돌이 하나님과 그 백성들 사이에 맺은 언약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그 돌을 볼 때마다 그들의 맺은 언약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도 그 돌을 볼 것입니다. 모세를 이어, 여호수아 시대를 끝내고 사시 시대로 넘어가면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결단한 헌신을 다시 한번 확인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언약의 증거로 주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생각하며, 그 사랑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결단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지금 내가 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재확인할 때에도, 앞으로 진행해 나아가면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말씀들이 나를 아프게 하도록 겸손히 허락해야 합니다.
물론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9절). 그렇지 않으면 주신 복도 빼앗아 가고, 도리어 화를 내리신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은 온전히 하나님 한 분만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섬기기 원하시지, 다른 것을 함께 사랑하며 섬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싫어하십니다.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돈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눅 16:13).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만 섬길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그러면 새롭게 결단하고 헌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여러분의 과거와 꿈을 주님께 내어드리십시오. 옛날이 지금보다 더 좋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생각을 주님께 내어드리십시오. 아니면 지난 날이 슬픔과 고통 뿐이었습니까? 그것도 주님께 내어드리세요.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큰 꿈과 소망,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너무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주님께 내어드리십시오. 모든 꿈과 소망과 계획을 주님께 드리세요. 주님 발 아래 내려놓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여러분의 과거, 그 안에 담긴 아름다운 추억과 슬픔도 함께, 그리고 여러분의 미래, 그 안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두 드리십시오.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주님! 당신은 어제의 하나님이시며, 내일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제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도록 저의 어제와 내일을 모두 주님께 드립니다!’ 그 마음의 고백을, 결단을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둘째, 현재의 상황을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어쩔 수 없어서 감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현재 상황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러분이 있는 곳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있기를 바라는 곳이며, 하나님께서 다른 곳에 있기 원하신다면 여러분은 다른 곳에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만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이곳에 있습니다. 나의 주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임을 압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라고 고백한 다윗처럼 말입니다. 아니 사실 여태까지도 선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지켜 주셨습니다.
셋째, 여러분의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만 섬기며 순종하기로 결단하십시오. 실망이 거듭되면 우리는 차가워지고,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무에 대하여 태만해집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대라고 하면, 우리의 죄성은 수백 가지를 찾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그대로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미루지 마십시오. 상황이 좋게 될 날을 기다리며 바라지 마십시오. 핑계대지 마십시오. 일이 여러분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쨌든 팔을 걷어붙이고 나가서 일하십시오. 순종하십시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의지로 인해 상황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전 9:10) 하였습니다.
넷째,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찬양은 감정이 아닙니다. 찬양하고 싶을 때에만 찬양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찬양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감정에 상관없이 언제나 찬양해야 합니다. 주님을 찬양하고 싶은 감정이 생기지 않을 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찬양은 우리의 감정과 상관없이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갈등 중에도, 일이 순조롭지 못할 때에도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그 시간에도 함께 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찬양하시면 성령께서 여러분의 영혼이 기쁨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만사가 순조롭지 못할 때에도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영적으로 많이 성숙해져 있는 것입니다. 상황이 좋을 때에 찬양을 드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에도 ‘이것은 내가 바라던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나에게 좋으신 분입니다’ 라고, God is good all the time 이라고 찬양한다면 이미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이루어지며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삶의 법칙대로 살아가면, 우리의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과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호수아처럼 나와 내 집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살겠다고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헌신하며 결단하십시오. 헌신에는 ‘대충’ 혹은 ‘조금만’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 전부를 제물로 다 드리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일사각오로 섬기는 것입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 멘!”(히 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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