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603,174
오늘방문 : 6938
어제방문 : 46301
전체글등록 : 3,882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5-04-27 (월) 05:1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71    
너희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라(롬 6:12-23)


저는 지난 주일에 양희송 씨의 책 ‘가나안 성도’에 대하여 언급을 하면서, 오늘날 우리 주위의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참된 교회답지 못하여 교회를 떠나는 성도들에 대하여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씀 드렸습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교인이 주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믿는 자가 되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믿고 세례를 받을 때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몰라서든지, 아니면 잊고 있어서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녀도 복음의 능력을 삶 가운데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진짜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세상 사람들 눈에도 헷갈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을 때 예수님과 하나가, 연합한 자가 되었습니다(롬 6:1-11). 마치 부부처럼 어디든지 예수님과 함께 갑니다. 언제나 예수님이 함께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는 죽었고, 의에 대하여 살았습니다. 이것이 믿는 순간에 실제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를 모르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렇게 여기지 못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어,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함께 산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진리를 바로 알고(know) 여기는(consider)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러므로”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선 해서는 안되는 것을 살펴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12-13절상) 하였습니다. 즉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몸이, 다시 죄에 대하여 살아 그의 노예처럼 몸의 사욕을 순종하지 말라고 합니다. 죄가 왕 노릇하여 내 몸을 지배하도록 그냥 내 버려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몸의 지체를, 즉 눈과 코과 귀와 입과 손과 발을 악한 데 사용되도록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욕(evil desire), 악한 정욕에 사로 잡혀서, 우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도구로 내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럴 필요가 없는 이유는 우리는 더 이상 죄가, 사탄이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성령이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14절)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17-18절)고 하였습니다. 죄의 권세로부터, 그의 능력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고, 오히려 의의,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으나, 어리석게 계속 죄의 종처럼 사는 경우도 있기에 바울은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경고합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15-16절)! 그렇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누구에게 순종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주인이 누군지 알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분명히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니, 이제는 죄와 상관이 없는데 계속 죄에게 순종하고 있다면 그는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법과 상관이 없습니다. 반면에 복음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복음에 순종한 것과 같이 의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13절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몸을, 지체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헌신해야 합니다. 의의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더 이상 죄의 종처럼, 불의의 도구로 쓰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19절부터 계속 “이제는”을 반복하면서 이 진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19절)고 하였으며, 이어서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 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20-21절), 또 계속하여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이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22절)고 하였습니다. 믿기 전과 믿은 후에 어떻게 변화를 받았는지, 어떤 결과가 되었는지, 정말 극명한 대조를 반복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변화를 받은 자신을 생각하고, 이제는 의의 종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거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지체를 의의 도구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5)고 하였습니다.
   본문에 ‘드린다(present)’는 동사가 중요한데, 그 뜻은 구약의 희생 제물이 제사 때 드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드려졌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에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함축해 놓은 구절이기도 합니다. 우리 몸 전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구별된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제물로 드려지기를 원합니다. 우리 몸의 지체들이, 눈과 코, 귀, 입, 손, 발, 머리, 아니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 시간, 건강, 물질, 심지어 마음, 감정조차도 하나님의 의를 위한, 그 나라를 위한 도구로 드려지기 원합니다. 사실 그 모든 것들이 이제 우리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면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닙니까?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내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몸을 위하여 헌신해야 합니다. 한 공동체로 묶어준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되 주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할뿐만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전도하고,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만약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gift)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23절)는 말씀을 믿는다면 말입니다. 그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면 말입니다.
   ‘나는 죄의 종도 아니고, 의의 종도 아니다’라고 주장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에서 가만히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지금 죄의 종이든지, 의의 종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사망으로 향하고 있던지, 영생의 길에 들어섰든지 말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엄청난 자유의 선물을 받고도 소중한 줄 모르고, 과거를 잊은 채 자기 욕심과 정욕을 위해 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죄로부터 자유 하게 되어 새로운 인생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고 말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 자유를 만끽하게 되었다는 이 복음의 위대함을 모르고 그냥 살아갑니다.
   사실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게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죽도록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그 사람은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아름다운 갈망이 생깁니다. 어쩌면 사랑에 대한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까지는 그 심령이 죽어 있습니다. 생의 가치가 무엇인지,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깨닫고, 믿게 되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합니다. 놀라운 은혜를 힘입어 허락하신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허락하신 두 번째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고 싶고, 몸을 하나님 나라 위하여 사용하고 싶습니다. 물론 믿자 마자, 새로운 피조물이 되자 마자 그렇게 사는 분도 혹 있지만, 대부분은 바로 온전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 주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면서 만나는 새 가족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공동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누군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마치 회심한 바울을 주님의 제자들에게 소개한 바나바처럼 말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새 가족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격려를 받으며 믿음으로 살아갈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입니다. 사명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부어져야 하고, 함께 기도를 하는 가운데, 찬양을 부르는 가운데 성령의 은혜가 흘러 넘쳐 스스로 그 은혜를 지속적으로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을 길들여야 합니다. 아니 몸을 훈련시키기 전에 생각부터 훈련시켜야 합니다. 믿기 전에 했던 모든 잡생각들을 물리치고, 하나님 생각으로 대치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생각은 자유라고 하면서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훈련이 안되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주 말씀 묵상이 필요합니다. 물론 생각만 가지고 안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감정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훈련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유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되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의 종이 아닌데 계속 그 노예처럼 살든지, 아니면 의의 종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살든지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며, 어떤 행동을 하는가 다 여러분의 선택 사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억지로, 강제적으로 하라, 말라 하지 않으십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즉, 순종하는 문제는 여러분의 자유 의사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믿는 여러분이 왜 순종해야 하는지, 왜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지 충분한 이유를 다 설명을 다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최종적인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 주어도 여러분의 몸을, 지체를 계속 죄에게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의에게,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의의 종으로서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은 그에 대한 책임도 있습니다. 아니 책임을 반드시 묻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죄에서 자유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요,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옮겨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 위하여 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도 설명해 주시고는, 거룩하게 의의 종으로 몸을, 지체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공은 우리 편으로 넘어 왔습니다. 그 모든 은혜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선택이 우리의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선하게 사용하든지, 아니면 몸의 사욕을 따라 사용하든지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여 올바른 선택을 하고 살기를 원합니다. 의의 종으로서 말하고, 행동하는 삶이기를 축원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육신의 부모처럼 우리 아버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그런 은혜 속에서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926 주일설교 [1/18/09] 사랑의 모임 한 태일 목사 2009-01-21 1891
925 주일설교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요 16:25-33) 한태일 목사 2011-11-14 1890
924 주일설교 [5/30/10] 구원 받게 하시려고 한 태일 목사 2010-05-31 1890
923 수요설교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선지자(신 18:15-22) 한태일 목사 2012-08-02 1889
922 주일설교 [2/28/10]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는(1) 한태일 목사 2010-03-01 1888
921 수요설교 하나님의 무궁한 자비와 긍휼(애 3:19-26) 한태일 목사 2011-08-04 1885
920 주일설교 [10/29/09] 수요예배 - 하나님을 만난 성도의 삶 한태일 목사 2009-11-13 1885
919 주일설교 [10/25/09] 거룩한 능력을 나타내는 삶 한태일 목사 2009-10-26 1884
918 주일설교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라(신 5:8-10) 한태일 목사 2016-09-05 1881
917 수요설교 더 큰 영광의 직분(고후 3:7-11) 한태일 목사 2016-12-08 1879
916 주일설교 [10/13/10] 수요예배 - 성도의 위험 한 태일 목사 2010-10-14 1879
915 주일설교 [6/6/10]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믿음 한 태일 목사 2010-06-07 1879
914 주일설교 주님을 닮는 온전한 제자가 되려면(엡 4:11-13) 한태일 목사 2013-03-11 1878
913 주일설교 [9/15/10] 수요예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려면 한 태일 목사 2010-09-17 1878
912 주일설교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한 태일 목사 2011-01-29 1877
911 주일설교 교회와 세상(고전 5:9-13) 한태일 목사 2012-10-01 1875
1,,,2122232425262728293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