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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10-07 (월) 10:1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69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고후 1:15-22)


이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에 그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일을 성취했는지로 판단합니다. 그 사람의 인격(characters)이 어떠한지 별로 상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스포츠 영웅들이나 Movie Stars, 사업가, 심지어 정치가들조차 그들의 performance 로 평가합니다. 그들이 어떤 삶의 원리원칙으로 사는지, 고상한 인격을 소유했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무엇 일이든지 잘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heart)을 보느니라”(삼상 16:7절하)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고 슬프게도 교회 안에서조차, 믿는 사람들을 평가할 때에도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과 동일한 잣대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얼마나 일을 잘 해내는지로 말입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 인격을 중요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일을 잘 해도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인격으로, 주님의 지혜와 힘으로 하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그렇지 않다면 좋지 않게 여기고 시정해 나가야 할텐데 말입니다. 특별히 지도자들이라면 더욱 주님의 인격으로, 주님의 은혜와 지혜와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해야 정말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모습에서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 나타나야 할 인격, 성품들을 살펴보며 우리 모두는 이런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자신들에게 왔다가 마게도냐로 가는 줄 알고 있었는데, 오지를 않고 바로 마게도니아로 바로 간 것에 대하여 무척 섭섭하여 불만을 나타냈던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온다고 말해 놓고 오지 않은 것에 대하여 몇 몇 사람이 그를 믿지 못할 사람이라고 비방하였던 것입니다. 사탄, 마귀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바울은 설교만 잘하지 자신이 한 말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고, 생활도 엉망이어서 전적으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한번 불신하게 되면 그 때부터는 그 어떤 말도 믿지 못하고 의심을 갖게 하여 아무리 좋은 설교도 소용이 없게 합니다. 말씀의 은혜를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사탄에게 아주 작은 틈이라도 주면 안 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계속 자신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자기 양심이 증거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12-14절), 이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과 행동을 통하여 고린도교인들이 알기를 원합니다.
   그에게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격이 있었습니다. 첫째, 한번 마음을 쏟으면 끝까지 그 마음이 변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충성(loyalty)의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15-16절)라고 합니다. 즉 바울이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갔다가 마게도냐로 가기 원했고, 거기서 또 다시 고린도로 가기 원했던 것은 그가 얼마나 고린도교인들에게 마음이 있는지를 증거하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정말 그들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았기에 그렇게 몇 번씩 가서 만나기를 원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첫 번째 방문을 취소하였는지는 이제 23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설명을 하게 되는데, 그의 진심은 고린도교인들을 아끼고 배려해서 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을 생각해서 방문을 늦추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예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17-18절)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기가 계획을 세웠을 때에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혹은 경홀히, 가볍게 생각하고 육체를 따라, 세상적인 방법으로 계획하여서 적당히 ‘예’ 혹은 ‘아니오’ 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증인인데,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듯이 자신도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자신은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예’ 하는 것은 반드시 ‘예’, 한번 ‘아니오’ 한 것은 반드시 ‘아니오’ 라는 삶의 원리원칙을 지키며 산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Yes 하고서는 다음에는 No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을만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한 복음,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멘’ 하면서 영광을 돌리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19-20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 라고 하였다는 것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지, 나중에 ‘아니라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 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고, 앞으로도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과거의 약속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것도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아멘’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이 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는 것을 보고 그가 마음대로 약속을 바꾸었고, 신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좀 늦춰질 뿐이지 바울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께 열심히 무엇을 놓고 기도했는데 아직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하는 더 좋은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직 때가 아니든지, 다른 무슨 계획이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 드려서 손해 보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아멘’ 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바울은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증인이며, 성령님이 보증하였습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21-22절)고 하였습니다. 즉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뿐만 아니라 고린도교인들 가운데서도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1)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즉 주님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주셔서 주님과 하나가 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믿음이나 흔들리는 믿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흔들릴 수 없는 견고한 복음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셨습니다. 2)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큰 복이 나오는데 바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었습니다. 특히 왕이나 제사장, 선지자들에게 감람유를 머리에 부었을 때에 성령의 임하심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어지는 성령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였느니라”(고전 12:13)! 그러니까 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다면 믿을 수가 없고,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능력을 주셔서 죄를 이기게 하십니다. 3)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치셨습니다. 인을 친다는 뜻은 어떤 것을 인증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적으로 권위를 부여하거나 자기 소유임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낙인을, 도장을 찍을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처럼 인을 치는 행동은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의 진정성을 확인해 주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은 바울이나 고린도교인들 가운데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신앙의 순수성을 성령으로 확인했다는 뜻입니다. 4) 보증으로 성령을 그들의 마음에 주셨다고 합니다. 여기 보증은 보증금(pledge) 혹은 선불(deposit)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집을 사려고 하거나 건물을 짓고자 할 때 융자를 받으려면 보증금이나 보증인이 필요합니다. 모게지를 낼 수 없을 경우에 보증금이나 보증인으로 감당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우리의 보증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우리를 그 구원에서 내쫓지 않는다는 뜻으로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주셨다는 뜻입니다. 영원한 구원의 약속으로 성령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보증을 선불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구원이 보장되어 있다는 뜻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축복을 성령을 통해 미리 맛보게 해 준다는 뜻도 됩니다. 선불은 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언제든지 꺼내 사용할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분이 하나님께서 갑작스럽게 기도를 응답해주시고, 축복해 주셔서 당황스럽다고 하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축복의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맛보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앞으로 더 큰 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인들도 성령의 인침을 받은 진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자신이 에베소에서 바로 고린도를 방문하던, 나중에 마게도냐를 들렀다가 방문하던 아무 상관이 없다라는 말입니다. 자신이 지금 당장 방문하는 것이 나중에 방문하는 것과 차이는 있겠으나, 고린도교회 안에도 성령이 계시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견고하게 하시니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바울이 고린도교회 방문을 늦춘 이유는 자신의 사도성을 의심하고 교회 안에서 윤리적으로, 교리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치리 해야 하는데, 자신이 직접 하는 것보다 고린도교인들이 스스로 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야 피차 유익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정말 그리스도인들입니까? 진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까?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침과 보증이 여러분의 구원과 믿음을 확실히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바울과 같은 인격이 삶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한번 마음을 주었으면 끝까지 변치 않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충성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죄성은 사탄, 마귀가 역사하여 여러분의 마음을 자꾸 바뀌게 합니다. 충성하지 못하게 합니다. 줏대 없이 이리 저리 흔들리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일향 변함이 없으신 분이기에 그의 자녀들도 하나님을 닮아 그저 변함 없는 마음으로, 지조와 절개를 지켜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충성은 물론, 누구에게든지 한번 마음을 주었으면 끝까지 지켜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바울과 같이 정직하고 신실하여 여러분 주위에 있는 누구나 믿을만한 분이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Yes 면 Yes 고, No 이면 No 라고 하였습니다.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믿을만한 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도 하나님을 닮아 정직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실한 삶이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믿을만한 분,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는 분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의 진정성(authenticity)이 있어야 합니다. 진지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누가 보더라도 여러분들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진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표시가 나타나야 합니다. 성령님이 정말 인을 치셨고, 보증하는 모습이 여러분의 생활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예외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루 아침에 이런 주님을 닮는 인격들이 심어지는 것 아닙니다. 말씀과 기도 훈련을 꾸준히 받고, 환난과 연단 가운데서 성령님께서 우리들을 그렇게 만들어 빚어가시는 것입니다. 오래 함께 살면서 부부가 닮아가듯이, 주님과 오래 함께 교제하면서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지난 주일에 살펴본 12-14절 말씀, 신앙양심의 증거와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는 일로서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 로, 주님의 인격이 드러나는 가로 판단해야 하고, 또 그렇게 판단을 받아야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판단하시는 잣대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인격이 나타나는 삶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을 받는 진짜 그리스도인들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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