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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8-27 (월) 11:2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223    
믿음으로 끝까지 경주하는 자(히 12:1-3)


성경은 우리 성도들의 삶을 경주(race)에, 달리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고전 9:24, 갈 5:7, 빌 2:16). 천천히 걷는 것이 아닙니다. 조깅도 아닙니다. 100m 혹은 200m 경기도 아닙니다. 마라톤 경주입니다. 경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의 뜻은 ‘고통이 따르는 씨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당히 힘든 경주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기도 한 달리기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하였습니다. ‘이러므로’라 함은 11장에 나타난 신실하게 살다가 주님께로 간 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교훈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믿음으로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11:2, 13, 39). 이 세상에서는 끝까지 믿음으로, 소망으로 경주를 했다고 합니다. 경주를 하는 길은 선수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최측에서 미리 정해놓듯이 우리 모두는 정해진 그 길을 경주하는 선수입니다. 그 길에서 이탈하면 실격입니다. 그런 경우는 처음부터 믿는 척 한 것이지 정말로 믿은 것이 아니거나 잘못 믿은 경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승점은,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눈과 눈으로 주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경주를 할 때에 1절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함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마라톤을 하는 선수가 무거운 짐을 지고 뛰겠습니까? 무거운 것을 가지고 뛸 수 없지요. 경주하는 데에 지장이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뛰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는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얽어 매는 모든 장애물들, 예를 들면 나쁜 습관, 쓸데없는 생각, 지나친 취미생활, 거짓, 시기, 질투, 자존심, 교만, 남을 비방하고 흉보는 말, 세상적인 욕심, 방탕 등을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것들로 매여 있으면 경주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합니다. 마라톤 선수도, 수영 선수도 조금이라도 스피드에 방해가 되는 것은 다 제거합니다. 그것이 앞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은, 실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버리는 체험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리석게도 그 상황에서도 버리지 못하면 계속 바닥에만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비워야 채워지는 것입니다. 바닥은 절망의 자리가 아니고, 치고 올라가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문맥을 생각하면 한마디로 그러한 모든 죄의 근본인 불신앙(unbelief)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장에서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강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앙을 벗어버리고 주님을 신뢰하면서 인내로 경주하라는 말입니다. 여기 인내로 경주한다는 뜻은 시련 가운데 앞으로 나가겠다는 결단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가겠다는 결단 말입니다. 그냥 어쩔 수 없으니까 참는 것이 아닙니다. 수동적인 참음이 아니라 능동적인 참음, 역동적인(dynamic) 인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온전히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 다가온 고난이나 시험에 대한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시련을 통하여 인내를 만들어 내려고 주시는 고난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면 시련은 이 역동적인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비록 잠시 넘어졌다 하더라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내 생명 다할 때까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는 특징이 버리는 것, 포기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목적을 위하여 쓸데없는 것, 복잡한 것, 시끄러운 것, 헷갈리게 하는 것들을 다 정리하고 단순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우리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surrender) 것입니다. 내가 꼭 쥐고 있는 권리, 내 계획, 내 야망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 사랑하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곧 내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편안한 삶을 포기했습니다. 좋은 땅 소돔과 고모라도 롯에게 양보하며 포기했습니다. 첩에서 난 아들 이스마엘도 포기했습니다. 100세에 받은 아들 이삭도 포기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놀랍게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것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해야 우리가 주님을 정말 신뢰하면서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2절과 3절에서 두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이 집착하는 것들을 포기하려면 우리의 눈을 주님께 고정해야 합니다. 마라톤을 경주하는 사람은 결승점을 바라보고 뛰듯이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마라톤을 뛰다가 너무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하고 싶어도, 아니 넘어진다 하더라도 결승점을 바라보는 사람은 다시 일어서게 되어 있습니다. 상을, 면류관을 바라보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마라톤 경기에서 끝까지 달려 승리한 사람에게 면류관이 주어지듯이 말입니다.
여기 ‘바라보라(fix)’는 말의 원어의 의미는 ‘집중적으로 공부해 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방하라,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2000여년 전에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도 경주하셔야 할 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 만을 바라보며 그 경주를 잘 마쳤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생애는 오해와 비난과 부당한 대우 등의 고난 속에 끝내는 십자가의 죽음까지 당했습니다. 베들레헴의 요람에서 골고다의 십자가까지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포기하는 삶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들이기에 주님께서 결정하시는 대로 결정하고, 사시는 대로 살고, 순종하시는 대로 순종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시는 대로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자신을 포기하신 대로 우리도 우리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제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끝까지 경주를 잘 하시기 원하십니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처럼 자기를 비어 종처럼 행하십시오.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셨듯이 자신을 내어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결국 높이셨듯이 높이실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의 삶과 죽음에 초점을 맞추며, 우리의 눈을 고정시키신다면, 깊게 묵상한다면 우리도 우리 자신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경주를 마칠 수 있습니다.
눈을 주님께 돌려 그 놀라운 얼굴보라 주님 은혜 영광의 빛 앞에 세상 근심은 사라지네!

둘째로, 주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3절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하였습니다. 여기 ‘생각하라(consider)’는 원어의 의미는 ‘비교해보다, 계산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은행에서 매달 재정보고서가 올 때에 우리 checkbook 과 비교해 보면서 오차가 난 것이 없는지 맞추어 보고 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2절에 바라보라는 뜻이 주님을 연구하여, 주님의 생애에 우리가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면, 3절은 우리의 삶을 주님의 본보기와 그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서 측정하고 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며 비참하게 여겨지거나, 혹은 한심하게 여겨진다면 여러분의 상황을 주님의 상황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핍박을 받게 되며, 비난을 받을 때면 우리 주님께서 그런 상황에서 참으신 것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앞으로 여러분이 세운 계획, 꿈, 야망 등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에 주님께서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조정하신 것을 비교하며 생각해 보십시오.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죄인들이 자기에게 그같이 거역한 일을 참으셨다고 하였습니까? 여러분이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서 입니다.
여러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런 것들을 집착하는데 얼마나 에너지가 소비되는지 아십니까? 정말 피곤합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을 잃기도 합니다. Let it go! 그저 놓으세요. 주님을 생각하면서 내려 놓으세요. 그러면 피곤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잃어버리지도 않습니다. 내려 놓으시고 맡겨 버리세요. 주저하지 마세요. 그저 단순하게 내려 놓으세요. 그러면 아마 여러분들도 놀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에너지가 있게 되는지. 얼마나 역동적인 삶이 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처음이 제일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내려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쉽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전거를 배울 때를 기억하십니까? 부모가 넘어지면 어떻게 하나 겁을 먹고 계속 붙들고 있으면 그 자녀는 평생 자전거를 배울 수 없습니다. 놓으시면 그 자녀는 스스로 배웁니다. 넘어지면서도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로서 마음이 아프고 힘들지만 놓으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라면 믿음으로 끝까지 경주하여야 합니다. 그 길에서 이탈하면 안됩니다. 결승점이 분명히 있는 경주입니다. 눈을 결승점에 맞추어야 합니다. 경주하는 목적이 분명하면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승점에서 면류관을 들고 서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생각하면서 끝까지 경주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그 수치와 모욕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사실 사람에게 제일 힘든 것이 누구에겐가 오해를 받는 것입니다. 진실을 몰라주고 다르게 생각하여 판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만큼 오해를 받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논쟁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내하셨습니다. 이유는 그 앞에 있을 즐거움을 보신 것입니다. 사흘 후면 살아나시고 결국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을 미리 보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결승점에 도달하면 주님으로부터 받게 될 상을 기대하지 않으면 끝까지 달리지 않습니다. 힘든데 끝까지 달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앞에 놓인 큰 장애물을 보지 마시고 그 뒤에 서 계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거센 폭풍이 몰아칠 때 그 시커먼 구름을 보지 마시고 그 구름 뒤에 햇빛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현재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나 환경을 보지 마십시오. 자꾸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바라볼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내 자신의 연약한 모습도 보지 마십시오. 우리의 목표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하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2절에 믿음의 주(主)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살아가신 삶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자주 내 삶과 비교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조정할 것이 있으면 조정해야 합니다. 나를 묶어 놓는 것들, 무거운 짐들, 얽매이기 쉬운 죄를, 불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집착하는 것들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포기해야 합니다. 돈이, 물질이 자꾸 얽어 매고 있습니까?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녀들이 나를 자꾸 얽어 매고 있습니까? 그저 하나님께 맡기고 자꾸 집착하지 마십시오.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에너지를 다 고갈시킬 수 있습니다. 정작 주님을 위하여 쓸 에너지조차 빼앗아 갑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앞서간 믿음의 영웅들이 지금 주님 옆에서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1절상). 운동경기에서 홈 그라운드의 이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유는 홈에서 경기를 할 때에 자기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경기장을 둘러싸고 응원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더 힘을 내고 경기를 잘 한다는 말입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듯이 신앙생활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자전거는 뒤로 갈 수 없습니다. 뒤로가는 것은 넘어지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을 수도 없습니다. 가만히 그 자리에 있으면 잠시 후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리고 맙니다. 신앙생활이 뒤로 가거나, 정체 상태라면 이미 넘어진 것입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앞을 향해 갈 뿐입니다. 어쩌다 무엇에 부딪쳐서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서서 페달을 밟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마라톤이건, 수영이건, 자전거 타기든 공통점은 반복입니다. 어쩌면 지루할 정도로 연속되는 반복의 결과가 결승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 반복하지 않는 것은 지루함, 지겨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야 결승점이 보이게 됩니다. 옳은 길, 바른 길을 계속 반복하여 뛰다가 피곤하여 지치거나, 어떤 장애물 때문에 중도에서 그만두고 싶을 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생각하고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면 끝까지 믿음의 경주로 결승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의 남은 여생에 그런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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