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21,064
오늘방문 : 4463
어제방문 :
전체글등록 : 3,866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4-07 (금) 08:36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416    
고뇌에 가득찬 예수님의 기도 (마 26:36-46)
우리의 인생 가운데 심한 괴로움과 고독을 느끼며 번뇌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33년 삶 가운데 가장 힘든 시간을 맞이하여 고뇌가 가득찬 가운데 기도하시는 장면이 오늘 본문입니다. 유명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입니다. 마가복음 14:32-42에도, 누가복음 22:39-46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요한복음 17장에는 그 기도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셨으면 땀 방울이 핏방울 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눅 22:44).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William Barclay는 “진실로 우리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한다” 라고 하였으며, D. A. Carson은 “마치 주님의 죽음이 독특하듯이, 그의 고뇌도 독특하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 앞에 최선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셋째날 오늘 새벽에 살펴보았듯이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이제 곧 모두 다 자신을 버리고 부인할 것을 말씀하시면서도, 하지만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로 먼저 가서 그들을 만나 주시며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31-35절). 이제 십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 준비를 하십니다.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게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목요일 밤 자정을 넘긴 한 밤중으로 생각됩니다.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러서 기도할 준비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육신의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졸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을 반복하여 기도하신 후에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45-46절) 하십니다. 기도를 통하여 감당할 힘을 얻으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네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인성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리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예수님의 속성 가운데 인성과 신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는데, 하나님이시기에 죄는 없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냐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성령의 조명이 아니면 이해하고 믿기가 어렵지요. 삼위일체 교리처럼 말입니다. 사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구세주로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그 증거를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와 똑 같이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서 피곤하기도 하셨고, 금식하신 후에 굶주리기도 하셨고, 슬퍼하시면서 울기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십자가를 앞에 놓고 고민하고 슬퍼하시는 모습이 37절에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절에도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하시면서, 고뇌에 가득찬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십니다. 마치 우리가 인생살이 가운데 고민하고 슬퍼하듯이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당하는 상황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자신은 무죄한데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벌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 잔(this cup)”으로 표현하셨습니다(39절).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하는 성경적 비유입니다.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끼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시 75:8)고 하였고, 이사야 51:22에서는 “나의 분노의 큰 잔”이라고 하였으며, 예레미야 25:15에서도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잔을 받아가지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가 받아야 될 진노의 잔을 대신 마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진노의 잔 대신에 새 언약의 피, 성찬식의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도의 중요성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수없이 들어온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유는 기도가 중요한지 알면서, 우리는 얼마나 기도하며 사는지요. 사도 바울도 “쉬지말고 기도하라”(데살전 5:16),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들을 위하여 구하고”(엡 6:18) 하였습니다. 헌데 특별히 큰 고민이 있을 때에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장 힘들 때 기도하셨습니다. 심야 기도였습니다. 아주 길게, 열심히, 3번을 반복하여 기도하였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이야 더욱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 나라가 솔로몬 이후 분열되어 북 이스라엘, 남 유다로 나뉘어졌는데, 북 이스라엘에는 선한 왕이 하나도 없었습니다만, 남 유다에는 선한 왕이 몇 있었습니다. 그 중에 히스기야 왕을 기억하십니까? 앗수르 나라가 왕성하여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산헤립 왕이 유다를 공격하며 몇 도성을 정복하면서 예루살렘과 히스기야 왕에게 항복하라고 사자를 통하여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 왕이 그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편지를 펴 놓고 “그 앞에서 기도하며 가로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왕하 19:14-15) 하면서 간절히 기도한 결과,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응답하시고, 다음날 새벽 동트기 전에 여호와의 사자가 산헤립의 군대 185,000 명을 치고, 산헤립은 니느웨로 도망하였습니다.
바로 우리가 어려움이 닥칠 때에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예수님도 그 어려움을, 고통을 하나님 아버지께 가지고 나아와 간구하였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으시고 강하게 하셨습니다.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눅 22:43)고 하였습니다. 아 멘!

셋째는,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먼저 (1)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도 기도할 수 있고, 성령님께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삼위의 하나님께 다 가능합니다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 6:9) 라고 하였듯이 하나님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4:36에서는 예수님께서 “아바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적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부르는 ‘아빠’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충격적인 하나님에 대한 호칭입니다. 하나님의 이름(Yahweh or Jehovah)을 함부로 부를 수도 없었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으니, 그들이 듣기에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이었습니까? 오늘날도 많은 신자들이 너무 하나님을 몰라서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놓치고,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문제는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성경 66권에 나타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에게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람이 만든 신입니다. 그런 헛된 신에게 기도하고 응답이 있겠습니까? 물론 사탄이 속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많은 신자들이 기도를 형식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쏟아 붓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혹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사람이 들으라고 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진솔하지 못한 형식적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겠습니까?
(2) 효과적인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기도에도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버림을 받는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세 번씩 기도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 외에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길이 있으시면 그렇게 해주시되, 그것은 내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세요’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기도라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우선,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중심에 놓고, 하나님의 관심을 첫째로 놓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라고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관심과 초점이 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 영광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에 일치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삶에 구체적인 뜻을 다 가르쳐 주지는 않지만 원칙,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어떤 기도는 끈기있게 해야 합니다. 반복해서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귀머거리도 아닌데, 한번 기도했으면 되었지 뭐 계속해야 되냐고 반박합니다. 그러나 오늘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기도를 보십시오. 똑 같은 기도를 세 번 반복하십니다(44절).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을 기도하였습니다(고후 12:8). 물론 응답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9절) 하였기에, 그것을 고린도교회에 간증하였습니다. 왜 끈기있게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가 그렇게 끈기있게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바꾸신다는 말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물론 때로는 그렇게 강청하는 기도는 결국 우리가 받을 만하게 변하여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4) 그래서 응답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달라서, 하나님의 길과 우리의 길이 달라서(사 55:8-9)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응답이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대하며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주님께서 가실 그 십자가의 길은 정해진 것이라 마땅히 그 잔을 마셔야 하지만, 주님께서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모습의 주님을 생각하며 “그가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 5:7-8)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들께서 잘 아는, “ ”(히 4:15-16)는 말씀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 육신의 연약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12제자들 가운데서 그래도 더 사랑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그들만큼은 자신의 고뇌를 이해하고 함께 기도해 주기를 바라고 그들을 데리고 기도하러 가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만큼에서 홀로 기도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와 보니 자고 있습니다.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40-41절) 두 번째로 나아가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은 연약할 뿐 아니라 죄성으로 인하여 타락하였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항하는 것이 육신입니다. 성령의 인침을 받고 중생한 신자들은 변화를 받아 조금 덜 하지만, 그래도 아직 연약합니다.
무엇이 해결책입니까?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40절). 안 그러면 시험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대로 제자들은 시험에 빠졌고, 영적인 비극을 연출하였습니다. 오늘 새벽의 말씀(31-35절)과 연결해서 제자들이 영적으로 실패한 원인, 그 패턴을 살펴보면 (1) 자만, (2) 깨어있지 못하고 잠들었고, (3) 시험에 빠졌고, (4) 죄를 지었고, (5) 불행을 자초하고,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이유, 그 패턴을 살펴보면 (1)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 (2) 깨어 기도하시고, (3)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시험을 이기시고, (4) 순종함으로 죄를 이기셨고, (5) 결국 부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영광을 누리셨습니다. 무엇이 영적으로 실패하게 하는지, 승리하게 하는지 잘 보여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도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교훈들이었습니다. ‘인간이라면 이 세상에서 누구나 만나는 고통과 슬픔 앞에 어떻게 이겨나가는가’에 대한 해답이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들을, 연약함들을, 고민과 슬픔을 예수님도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인성을 가지고 계셨기에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분임을 보았습니다.
솔직히 아무런 고민이,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라고 주시는 일들이 아니겠습니까? 늘 기도하며 살아야 하지만 특히 괴롭고, 외롭고, 슬플 때에는 더욱 간절한 끈기있는 기도가 필요한 것을 예수님에게서 배웠습니다.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기도였습니다. 끈기있는 기도였습니다. 응답이 있을 줄로 기대하고 드리는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정말 겸손히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 밖에 없고, 죄에 빠지게 되며, 재난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겸손히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구하며, 깨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힘주시고 이기게 하시며, 어떤 모양으로든지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아 멘!!

마음이 어둡고 괴로울 때 주님 예수님을 나 생각해요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시던 혼자 기도하시던 주님 생각해요
주님만 섬기며 따르기로 한 나 세상이 준 이 모든 괴롬 버리고
예수님처럼 기도하기를 원해요 예수님처럼 기도하기를 원해요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37 내가 밟는 땅(여호수아 18: 11-20) 관리자 2023-09-25 316
1336 주일설교 삼위의 하나님을 찬양 (계 1:4-6) 한태일 목사 2023-09-10 405
1335 수요설교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가라 (벧후 3:14-18) 한태일 목사 2023-09-07 453
1334 특별설교 기쁨의 본질 (눅 10:17-20) 관리자 2023-09-06 212
1333 주일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계 1:1-3) 한태일 목사 2023-08-27 311
1332 주일설교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책임 (유 1:17-25) 한태일 목사 2023-08-20 302
1331 수요설교 주님 재림하시는 날 (벧후 3:8-13) 한태일 목사 2023-08-17 296
1330 주일설교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유 1:1-16) 한태일 목사 2023-08-13 310
1329 주일설교 선한 것을 본받으라 (요삼 1:9-15) 한태일 목사 2023-08-06 379
1328 수요설교 재림을 믿지 못해 조롱하는 자들 (벧후 3:1-7) 한태일 목사 2023-08-04 377
1327 주일설교 사랑을 증거하는 자 (요삼 1:1-8) 한태일 목사 2023-07-30 354
1326 주일설교 진리를 지키라 (요이 1:7-13) 한태일 목사 2023-07-23 407
1325 수요설교 영의 직분이기에 (딤전 4:7-11) 한태일 목사 2023-07-20 305
1324 주일설교 진리에 행하는 자 (요이 1:1-6) 한태일 목사 2023-07-16 347
1323 주일설교 우리가 확신해야 하는 것들 (요일 5:13-21) 한태일 목사 2023-07-02 245
1322 수요설교 그래도 우리는 진리대로 살자 (벧후 2:12-22) 한태일 목사 2023-06-29 234
1234567891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