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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5-28 (일) 10:2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448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엡 4:25-32)


[성령강림주일]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믿을만한 증거는 과거에 은혜를 받고 주님을 영접한 경험이 아니라, 현재 생활에서 주님을 나타내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진실로 성령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새 사람이 되었으면 그에 합당하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바울은 앞 문맥에서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의미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7-24절). 옛 사람일 때에 자기 중심적으로 허망한 것을 좇고 살았다면 이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삶의 목적이 있는 생활을 하며, 옛 사람일 때에 하나님의 진리에 무지하였다면 이제는 그 진리를 알고 이해하며, 옛 사람의 부도덕한 습관들을 벗어버리며, 늘 성령의 도우심으로 변화 받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근심하지 않게 하려면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올해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이미 성령님이 오셨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데,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며 말씀을 나눕니다.

첫째, 성령님을 근심하지 않게 하려면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25절)고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연약하여 한두 번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거짓은 습관적인 거짓말, 젖어 있는 거짓된 삶을 가리킵니다. 이웃을 속이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짓을 말합니다. 사실 어떤 사람 매일의 삶이 거짓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사탄의 자녀입니다(요 8:44). 사탄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스도, 생명, 죽음, 천국, 지옥, 성경, 선한 것이나 악한 그 모든 것에 관해 거짓을 말합니다. 또 직접적인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부풀려 말한다든지, 없는 이야기를 더한다든지 모두가 사탄의 역사입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는 이러한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님이 근심하게 됩니다. 다만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truth)을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가리켜 "진리의 영"(요 14:17) 이라고 하였고,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니이다"(요 17:17)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령을 받아 신자가 될 때에 그는 거짓의 영역에서 참된 것의 영역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모양의 거짓도 새 사람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25절에 이웃이라는 것은 교회의 다른 성도, 형제, 자매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여야 하는 이유가 서로 한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에는 진리인 그 말씀과 그의 사람들, 즉 교회를 사용하시는데,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이라면 사용하실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세상 밖에서도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더욱 진실을 말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일을 감당할 수가 없지요.

둘째로, 불의한 분노을 품지 말고 의로운 분노을 품되 속히 해결하라고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26-27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분(anger)"이라는 단어는 잠깐 감정적으로 내는 화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쓴뿌리의 분노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의로운 분노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인격이 모독을 당할 때라든지, 하나님의 의나 영광이 해를 입을 때에, 악에 대한 분노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실 때에 보이신 진노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요 2:15).
보통 화를 내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은 내 자신의 이기적인 것에 해를 당할 때에 나는 분노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미움이 되어 살인하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마 5:21-22). 그러니까 그런 분노는 정말 속히 삼켜야 합니다.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며 이기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안위를 생각하며 내는 분노는 가능할 뿐 아니라 성경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분노도 하루 해를 넘기면 안된다고 하는데, 이유는 그렇게 되면 마귀가 역사하여 시작과 동기는 선한 것이었지만 나중은, 결과는 악하게 될 수 있기에 경고하고 있습니다. 의분이라도 오래가면 상대방이 복수심이 생기며 결국,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을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7-19, 21)는 말씀을 어기게 되는 것이니까요. 어찌하든지 사탄의 궤계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셋째로, 남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여 나누라고 합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28절)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남의 것을 훔치고 싶은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훔치는 것을 재미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도 하는데 죄성이 가져다 주는 매력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많은 상점들도 물건을 잃어버릴 것을 생각하고 대신 가격을 올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한, 꼭 실제 남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일한 시간을 과장해서 Pay를 받거나, 국세청에 세금보고를 정식으로 하지 않고 떼어 가지거나, 일군들에게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 등도 사실 도적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요.
그러니 성령을 받은 사람으로 더 이상 도적질을 하지 말고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가난한 자와 소득을 나누며 구제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계획은 모든 사람이 일하는 것입니다(창 3:17).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후 3:10) 고 하였습니다. 물론 성도의 노동은 선한 일이어야 합니다. 정직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만한 일이어야 합니다. 제가 늘 말하는, 성경에서 '선하다'고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착하다' 하는 것과 뜻이 다르다고 하였지요. 성경에서 말하는 '선'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질적으로 좋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의 기준에 어긋난, 그의 거룩한 말씀에 벗어난 일이나 직장, 사업을 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래서 도박이나 로또를 사는 것은 죄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정직히, 열심히 벌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넷째로, 더러운 말이 아니라 건전한 말로 덕을 세우며 은혜를 끼치라고 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29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더러운(σαπρὸς, rotten or worthless)"은 '부패한, 썩은' 이라는 뜻으로, 주로 상한 과일이나 채소, 부패한 음식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불신자들이 쉽게 내뱉는 욕이나 비정상적인 농담, 음담패설, 야비한 말 등을 가리킵니다. 우리 성도들의 입에서는 나와서 안될 말들을 말합니다. 혀를 다스리기가 쉽지가 않지요. 야고보서는 혀를 불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약 3:6-8). 다윗도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물론 입술은 마음에 있는 것을 표현할 뿐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 12:34)고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선은 마음을, 생각을 늘 선하게 가져야 되지요. 그렇지 않으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선한 말을 하되 오직 덕을 세우는 말과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말과 은혜가 될 말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정말 소금처럼 썩는 것을 막고, 맛을 낼 선한 말을 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바울은 결론적으로 30절 이하에 명하십니다. 무엇보다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30절) 하였는데, 여기 “근심하다(λυπε,w, grieve or cause to sorrow)”의 뜻은 말 그대로 슬퍼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성령님을 슬퍼하게 하며, 근심하게 합니까? 그러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만 인격체가 아니라 성령님도 인격체이기에 여러분들이 옛 사람의 생활의 모습들, 불신자들의 모습과 말과 행실들을 하시면 성령님이 근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진실로 영접할 때부터 영광의 날까지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까닭에, 성령님이 우리를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근심하며 슬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앞서 말한 분을 내는 것과 관계된 쓴 뿌리에 관한 못된 행동들을 31절에 열거 하시면서 모든 그런 것들을 버리라고 다시 강조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라고 말입니다. 악독(bitterness)과 노함(wrath), 분냄(anger), 떠드는 것, 즉 말다툼이나 공적인 곳에서 시끄러움, 훼방하는 것(slander) 등 모든 악의(malice), 즉 자연인, 불신자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성령을 받은 새사람이 되었다면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32절)고 끝맺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 서로 인자, 친절하게 하며, 부드러운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며,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듯이 서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용서'의 말씀이 나올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마태복음 18장 21절 이하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 빚진 종과 주인, 그 종에게 빚진 동관, 친구의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여러분께 조그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얼마나 진노하실까 하는 생각을 해보십시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서로 용서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성령을 받지 못하고, 새 사람을 입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그래서 아직도 옛 사람의 모습으로 목적없이 허망하게 살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진심으로 영접하시며, 구주로 모십시오. 성령님께서 인을 쳐 주시며, 영원토록 내주하시고 그 시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아니 이미 새 사람을 입으신 여러분들, 어떤 변화가 있으셨습니까?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는 않습니까? [설교요약]
거짓을 버리고 서로에게 참된 것만을 말하며 지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화를 내어도 의분이 되어야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이 채워지지 않아서 내는 불의한 분노가 되어서는 안되고, 의분이라 할지라도 속히 해결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그것을 사용하여 틈을 타고 시험에 들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도적질을 하지 말고 스스로 열심히 일을 하여 얻은 것을 가지고 구제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말을 조심하되 더러운 말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고, 덕을 세우며, 주위의 형제 자매들에게 도움이 되는 필요한 선한 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성령이 근심하며 슬퍼하게 되고, 역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어떤 모양이라도 쓴 뿌리는 버려, 자연인처럼, 불신자처럼 살지 말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고, 서로 용서하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용서하심과 같이 용서하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그러한 모습이 실제적으로 우리 교회 모든 분들의 생활에서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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