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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5:0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770    
[5/14/06] 보라 네 어머니라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5-27)
어머님의 무덤 앞에서 애타하는 어느 시인의 고백을 듣습니다.‘오늘 새벽에도 깨어나 뒤척이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많이도 불렀습니다. 어머니!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아무리 울어도 가슴이 잠들지 않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처절히 후회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다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다 이해하실 줄 알았고, 다음에 잘하면 될 것 같았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시니 아무리 몸부림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남은 몰라도 부모님 가슴의 못은 특별히 잘못한 일이 있을 때나 마음을 몰라줄 때나 똑같이 박힙니다. 차라리 늘 곁에 있는 못된 자식보다 제 살기 바쁜 척 자주 뵙지 않고 생각의 거리가 멀 때 더 깊이 박힙니다. 나야말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정말로 따뜻하게 안아주었는지, 한번이라도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생각하면 그저 멍해집니다. 내가 전화할 때마다, 과일 한 개 사드린 것도 다 일기장에 적어두셨는데 지금은 전화할 수도 없고 과일을 보낼 수도 없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어머님께서 그렇게 바라시던 모습으로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나를 바꾸어 스스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민 생활하시면서 어머님과 떨어져 있는 분들에게는 가슴 깊은 감동을 주는 고백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가운데 하신 칠언(七言) 가운데 한 말씀입니다. 두 손과 발을 긴 못에 박힌 채, 창에 허리를 찔리시고 피와 물을 다 쏟으시는 엄청난 고통 중에 하신 일곱 마디 말씀 가운데 이 한 마디는 오직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요한이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를 맡게 된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였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하는 일을 마치자 백성들은 제각기 돌아갔습니다. 슬퍼서 그토록 흐느껴 울던 대부분의 여인들도 돌아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못 박혀 십자가에 매달리신 동안에도 남아있던 네 여인들이 본문에 등장합니다.
25절에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 여인들에게 골고다 언덕은 단지 사형장이며, 십자가는 저주의 형틀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부활의 진리를 미처 깨닫지 못할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골고다 형장에 나와 끝까지 멸시와 천대의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십자가 아래서 아픈 가슴을 쓸어 안으며 서 있는 가련한 모친 마리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녀에게 예수님은 육신으로 치면 아들이요, 받은 바 계시를 통해 생각해 보면 저희 백성을 죄에서 구원해 내시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였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볼 때에, 모친 마리아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가장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실 때, 그가 어떻게 저 높은 하늘로부터 이 낮고 천한 땅에 오시게 되었는지를 그 누구보다도 소상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천사가 나타나서 그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예언하던 날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까지 가르쳐주던 천사의 생생한 음성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린 핏덩이를 안고 사관에 머물 곳이 없어서 마구간 구유에 뉘어야 했던 가슴 아픈 기억과,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았던 그 밤, 그리고 헤롯의 칼을 피하여 애굽으로 황망히 피신해야 했던 일들이 영화의 장면들처럼 말입니다.
그녀는 천주교에서 숭배하는 그런 특별한 사람, 무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여성에 불과하였지만 경건하였습니다. 삼 십여 년을 아들 예수와 함께 살았으며 지금은 그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고 있습니다. 평범하게 그저 아들을 사랑하던 한 어머니가 지금 자기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가장 흉악한 강도들과 함께 근거 없는 누명을 쓰고 처참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지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픔은 이미 예고된 아픔이었습니다. 주님을 낳은 후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서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에게 성령이 함께하시는 가운데 예언한 내용입니다(눅 2:25절 이하).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낳도록 분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모욕, 멸시를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의 태를 기꺼이 내주었던 동정녀 마리아에게 시므온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눅 2:34-35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을 때에 그녀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고백하기를 "이 후로는 만세에 모든 여자가 나를 복있다 일컬으리라"(눅 1:48) 하였습니다. 그녀는 실로 축복과 슬픔을 함께 지녀야 했던 여인이었습니다. 마치 이 세상에서 자녀들을 기르는 모든 어머니처럼 말입니다. 물론 그녀는 자신 앞에서 죽어가는 예수님은 단지 자기의 아들 예수가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예수는 지금 마리아의 아들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구세주로 비참한 죽음을 겪고 계신 것이며, 그의 죽으심은 단지 사망이 아니라 부활과 세상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비탄 속에 울고 있는 육신의 모친 마리아에게 주님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십니다. "여자여" 하고 부르심이 우리말로는 비하(卑下)하는 칭호같이 느껴지지만, 헬라어에서는 그런 비하의 뜻이 담겨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여자라고 부르신 것이 적합하지 않음이 분명한데, 왜 그러셨을까요? 우리는 이 짧고 특별한 호칭 속에서 모친 마리아를 향한 예수님의 인간적인 배려를 읽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기 위하여 아들과 함께 모리아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번제할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웠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같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이삭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내 아버지여 여기에 땔감도 있고 칼도 있고 불도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요"! 우리는 제물로 바쳐지기 위하여 산을 오르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 아브라함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 번제할 제물은 바로 너다" 라고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을까요?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소중한 아들, 장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어머니는 자기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흉악한 강도들과 같은 부류로 낙인이 찍인 채, 처참하게 죽어가는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슬픔이 봇물처럼 가득차서 흐느껴 우는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름으로써, 그 가득찬 아픔을 더 터뜨릴 생각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처럼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 마리아를 마지막 순간까지 위로하기 위하여 "여자여"라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상한 심령을 돌보시는 주님의 자애로운 배려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었으나, 이처럼 어머니의, 인생들의 약하고 여린 부분을 깊이 이해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당신의 육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살 찢기고 피 흘리시면서도, 모친 마리아가 받을 마음의 상처를 염려하였던 것입니다. 그 사랑은 마리아에게만 그치지 않고 우리와 같이 가치 없는 죄인들에게까지도 계속됩니다.
물론 또한, 어머니를 가리켜 "여자여" 라고 부르심은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자기 인식을 보게 합니다. 이제는 그녀의 아들로 고난을 당하시며 죽으심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삼십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며 살았지만, 이제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혈육에 매여 있을 수 없는 만왕의 왕이요, 모든 사람의 구속주가 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향해 "여자여" 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요한을 소개하셨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죽은 후에 어머님을 맡을, 돌볼 아들로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을 지명하시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마리아의 생계를 요한이 책임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끝까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공경, 효(孝)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도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보라 네 어머니라”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요한은 즉시 순종하며 그 때부터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요한의 태도를 우리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을 꺼려하며 서로 미루는 것을 봅니까? 얼마나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고, 나이 들어 늙고, 부족한 모습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함부로 대하고 있습니까? 요한은 친 부모도 아닌데,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마리아를 책임지기 시작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모친 마리아를 요한에게 맡기시며 네 어머니라고 하심은 예수 안에서 새롭게 이루어지는 가족 관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자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48-50)고 하신 말씀과 그 맥락을 같이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함께 은혜를 받고 믿음 생활을 하는 어른들이, 형제 자매가 우리의 혈육보다 더 사랑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우리는 집안 식구들을 더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의 이중성에 가책을 받곤 합니다만, 오늘 주님의 유언을 통해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가 새로운 가족들을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 받는 백성이 된다는 것은 믿음의 형제들과 동기간이 된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영적인 가족 관계를 새로 맺게 된 것을 기뻐하며 사랑하고 함께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없는 곳에 주님도 안 계실 것입니다. 오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예수님께서 이처럼 요한과 마리아를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로 묶어 놓으시는 것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감격이 있는, 그 사랑이 있는 교회는 형제 사랑이 있고, 그 은혜가 사라진 곳에는 세상 사랑만이 있을 뿐입니다. 십자가로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마다 이처럼 새롭게 이루어진 영적인 가족 관계에 감격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참된 하나됨입니다.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은,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한 젊은 자녀들은 교회의 어른들을 영적 부모로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친 어머니만 어머니가 아니라, 영적 어머니들을 그렇게 어머니처럼 공경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아는‘어머니 마음’이라는 가곡이 있습니다. 양 주동 씨가 작사하고 이 홍렬 씨가 작곡한 노래입니다. 양 주동 씨가 신자인지 잘 모르지만 이 노래 가사는 부를 때마다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 피를 못 속여,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감동을 받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우리가 철들기 전까지는 어머님들이 우리를 위하여 해 주시는 모든 사랑의 수고를 당연한 것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철들기 시작하고, 더 성장하여 우리 자신이 부모가 되어 자녀를 기르면서, 또 거기다가 만약 신앙의 부모님을 모시고, 우리도 신앙으로 살면서 성숙해 가면, 어머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공경하는 것은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들이 과거에 우리에게 해주신 모든 것들을 기억합니다. 특히 오늘같이 다시금 맞는 어머니 주일을 지키며 되돌아보면, 그들의 도움, 조언, 겸손, 인내, 희생, 그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우리가 얼마나 빚진 자들입니까. 늘 그 은혜에 감사가 넘쳐야 할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도 슬퍼하는 어머니를 돌보시며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였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또 요한을 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어머니에 대한 참된 사랑, 공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늘 그러하셨듯이 말로만 사랑을, 부모 공경을 부르짖으시는 분이 아니었음을 다시금 증명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시인처럼 나중에 돌아가셔서 후회하지 말고 우리의 어머님들이 살아계실 때에 사랑하며, 공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축복이기도 합니다(출 20:12, 엡 6:2-3).

한편 사랑하는 어머님들!
아마 이 세상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자녀들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치는 분들이 여러분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자녀를 만들어 내느냐는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성경에는 훌륭했던 신앙의 어머니 모습들이 나옵니다. 사라가 없이는 이삭이 어떻게, 요게벳이 없이 모세가 어떻게, 한나가 없이 사무엘이 어떻게, 엘리사벳이 없이 어떻게 세례 요한이, 유니게가 없이 어떻게 디모데와 같은 인물들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영광을 돌렸을까요? 이러한 믿음의 영웅들은 모두가 신앙이 독실한 부모님들의 좋은 영향이 없이 탄생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어머님들의 자상한 사랑과 훈계, 기도의 본 등이 없이는 자식 농사를 잘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님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도 모르게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이 좋은 영향이던, 나쁜 영향이던 하여튼 영향을 받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감사할 줄도 모르고, 순종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책임도 감당 못하고, 여러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잊어버리며 지나가는 것 같으나, 결코 여러분들이 함께 사는 삶에서 끼친 그 영향은 지우지 못합니다. 반드시 어딘가 닮은 꼴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친 어머니로서 뿐 아니라 십자가로 말미암아 새로 맺어진 관계 속의 영적 어머니로서 한 공동체 안에서도 여러분들이 늘 기도하며 살고, 믿음의 본을 보이며, 진실을 말하며, 의의 행동을 보이는 것이 우리 영적 자녀들의 앞날을, 우리 교회의 앞날을 좌우하는 것이 됨을 확실히 깨달으시고 성령의 의지하며 노력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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