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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9-01 (금) 10:4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746    
[8/27/06] 생각을 바꾸라
생각을 바꾸라 (사도행전 10:9-23)
사람들에게 굳어진 생각, 고정관념, 혹은 전통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물론 좋은 생각이나 올바른 관념, 혹은 좋은 전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성경적인 신념은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기에 바꾸어서는 안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되는 선입견(편견), 통념, 고정관념, 전통 등은 버려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 동안에 만들어진 관념이라면 깨뜨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이 드신 어른들이 생각을 바꾸고 변화를 꾀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하실 수 있으십니다. 여러분께서 바꾸기를 원하고 협조하신다면 말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언급하였듯이 당시 유대사회에서 부정한 자로 낙인이 찍혀 있던 죽은 동물의 시체 가죽을 벗기는 피장의 집에 사도 베드로가 여러 날을 머무르고 있었습니다(행 9:43).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던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가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계시된 말씀을 받고 사람들을 보내었을 때, 베드로는 제 육시(정오)에 기도를 하기 위하여 피장의 집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9절). 또다시 반복하여 말씀드립니다. 고넬료와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기도 시간에 특별한 체험을 합니다. 사람들이 점심을 준비하는 시간에 그곳에서 베드로는 비몽사몽 간에 환상을,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습니다(10절). 부정하다고 여기는 곳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졌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11-12절)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렇지 않아도 시장기를 느끼고 있었던 베드로에게 그 짐승들을 잡아 먹으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13절). 베드로는 불쾌하고 단호한 어투로 그 명령을 거부합니다. 이유는 그것들이 속되고 정결하지 못한 것들, 곧 부정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14절).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보자기 같은 그릇에 담겨 내려온 짐승들은 베드로의 전통과 관념에 있어서는 ‘속되고 부정한 것들’이었습니다. 사실 구약 레위기 11장에 유대인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물에 대한 그러한 제한 규정이 있으며, 에스겔 선지자는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겔 4:14) 하면서 부정한 음식 먹는 것과 영혼이 더럽게 되는 것을 연결시키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잡아 먹으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 단호하게 자기 주장을 펴며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반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의 음성이 두 번째로 다시 들리면서 “하나님께서 깨끗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15절)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야 먹으라면 먹어라. 그것은 내가 이미 깨끗하게 하였다는데 네가 왜? 나를 거역하느냐? 어떤 것이 깨끗한 것인지 아닌지를 누가 결정하느냐? 너냐? 하나님이냐? 너는 이미 부정하다는 피장의 집에 며칠 머물지 않았느냐?’
구약에서 예언되어진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과 오신 후는 너무 달라진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후에도 구약처럼, 율법이나 전통에 얽매어 살겠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 전에 먹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먹는 음식이 부정하여서 사람이 더러워지는 것이냐?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몸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한 마음에서 나오고 말로 표현되는 것들의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 15:11). 죄성을 가진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는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19-20) 하였습니다.

두 번씩이나 음성을 들려주어도 베드로가 먹지를 않자, 세 번째로 또 음성이 들려온 후에야 그 음식 담긴 그릇이 하늘로 올리워 갔던 것입니다(16절). “베드로가 본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17절상) 한 것을 보면, 그는 환상에서 깨어난 후에 받은 계시를 의아하게 여기며 무슨 뜻인지를 확실히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다 하시면 깨끗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사람이 더럽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에 대한 베드로의 고정관념과 전통을 깨뜨리고 생각을 바꾸라는 주님의 의도가 드러난 것입니다. 이제 곧 자신을 찾아온 고넬료의 사람들을 좇아 그 집에 가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를 보고서야 이 환상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가 이해하게 됩니다(10:28, 34-35절).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통념, 선입견(편견), 전통이 이방인의 구원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언제나 거침돌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9장에서 있었던 사울 사건이 어떤 사람의 과거 경력이 어떠하였든지, 그가 과거에 무슨 일을 하였든지 주께 은혜를 받는 데에는 상관이 없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선언하였다고 한다면, 10장에서는 어떤 사람의 신분과 관계없이, 배경과 관계없이 누구나 복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은혜 안에 들어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차별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왜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느냐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것을 뛰어넘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이 두 사건, 사울의 회심과 이방인 고넬료의 회심이 사도행전에서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이 사건이 갖는 중요성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환상의 의미를 의아해 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하여 베드로를 찾았습니다(17절하). 베드로가 그 시간에 그 환상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할 때였습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노라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노라”(19절하-20절)! 베드로가 그 사람들을 만나 안으로 들여 함께 하면서 이야기를 듣습니다(21-22절).
우리는 여기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주도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본문이 끊임없이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고넬료의 집에 가서 일을 주도한 것이 예루살렘 형제들에게 문제가 되어 힐난을 받을 때에(11장) 베드로가 다시 이 사건의 자초지종을 유대인 형제에게 말하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베드로에게 이런 환상을 보이시며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왜 하필이면 베드로일까요? 사실 이방인의 사도는 사울(사도 바울)이라고 하였는데 말입니다(행 9:15). 이방인의 대표성을 가진 고넬료와 그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서 만이 아닙니다. 베드로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듯이 베드로를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크신 은혜와 축복을 그를 통하여 만방에 허락하시려고 베드로를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에 있어서 거침돌이나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시고 바로 잡으시기 위해, 또 얽매인 고정관념이나 전통에서 그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라고 28절에서 고백하듯이, 그도 율법과 전통에,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만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 그리고 이방인들까지도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벽을 허물어야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23절에 보면 베드로가 그 사람들을 불러 들여 함께 하룻밤을 유숙한 후에 이튿날 욥바를 떠나 고넬료가 있는 가이사랴로 갑니다(23절). 그 집 하룻밤의 그림을 상상해 보십시오. 구약에서 말하는 부정한 사람 피장, 거룩한 유대인의 사도 베드로, 그리고 깨끗지 못하다고 여긴 이방인 심부름꾼! 당시에 도저히 같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는 이 이질적인 세 종류의 사람이 한 지붕 밑에서 같이 한 밤을 지내고 있다는 이 충격적인 모습과 다음 날 피장의 집에서 고넬료가 있는 가이사랴까지 31 마일이나 넘는 먼 길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한 무리가 되어 걸어가서 결국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수일을 더 머물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48절).
무엇이 이런 벽을 허물었는가? 무엇이 그들의 고정관념, 전통을 버리게 했나요? 무엇이 베드로의 생각을 바꾸게 했나요?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진리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2000여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 후와 이 전은 너무 다릅니다. 바뀐 것이 너무 많습니다. 어려운 말로 하면 신앙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율법 중심으로 살았다면, 신약에서는 은혜 중심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신 이 후에 희미하던 진리의 말씀이 분명해졌습니다. 불완전하던 계시가 완전해졌습니다.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생각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고정관념, 전통을 버려야 했습니다. 선입견, 편견을 부서뜨려야 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세 번씩이나 환상을 보여주었는데도 의아하게 생각하며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깨우쳐 주심으로 결국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물론 앞서 언급하였듯이 좋은 전통과 성경적인 신념을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어긋난, 내게 굳어진 생각이 있다면 바꾸어야 합니다. 바꾸지 못하는 것은 곧 교만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비성경적인 아집입니다. 전혀 쓸데없는 고집, 아니 하나님으로부터의 축복을 막는 장애입니다. 아무리 내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바로, 내 잣대로 되고, 안되고 판단하여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그 생각이 틀리면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서라면 생각을 바꾸고, 그러한 선입견이나 편견, 쓸데없는 전통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열린 마음으로 성령께서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 인간적인 판단으로 이 사람은 되고, 저 사람은 안되고 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이십니까? 예수님 당시에 어느 누가 창녀나 세리에게 주님께서 다가가시고 사랑을 베푸시며 은혜를 베푸신다고 감히 생각하였겠습니까? 저주 받았다고 생각했던 문둥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버린 바 된 사람들을 찾아가시고 고쳐주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때로는 안식일에 고쳐주셨습니다. 율법과 전통에 얽매인 유대주의자들에게 얼마나 비난을 받았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의인을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위하여 오셨던 것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인데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그 생각을 바꾸지 못하고 오히려 에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너무 쉽게 여러분 자신의 생각으로 어떤 사람이던 어떤 사건이던 판단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생각이 언제나 옳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잣대로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이 널리 전파되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하십니까? 그 도구로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님 믿기 전의 고정관념이나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믿은 후에라도 성경을 배우면서 그 가르침에 위배되는 선입견,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어 말하고 행동하셔야 합니다. 기도하십시오. 정말 여러분이 변화 받기를 원하면서 간절히 간구하면 성령께서 은혜를 주시고 생각을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충만함이 바꾸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사실 여러분의 인생도 그것에서 탈피할 수 있으면 축복입니다. 그것을 못 버리기 때문에 변화하지 못하고 늘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릇을 더 크게 못하는 것이지요.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는데도 그 벽을 허물지 못하여 준비가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은혜 체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굳어진 생각들, 선입견(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넘어서기를, 바꾸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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