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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2-22 (목) 05:4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630    
[2/18/07] 성령과 악령의 싸움
성령과 악령의 싸움 (사도행전 13:4-12)
성령(Holy Spirit) 하나님께서 실제 인격체로 살아계셔서 믿는 자들 안에서,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역사한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악령(Evil Spirit)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어떤 이들이 천국은 믿으면서 지옥은 믿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 악령, 사탄과 그 수하의 마귀들이 실제로 존재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과 그 악령과의 싸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악령들이 역사하고 있기에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려고, 그 나라의 확장을 막으려고 오늘도 몸부림치고 온갖 궤계로 사람들을 유혹하며 공격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는 물론 가정, 교회 그리고 사회, 나라 전체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늘 이 사실을 기억하고 정말 믿음을 굳게 하여,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하고 대적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성령과 악령이 싸우는 것을 봅니다. 초대 안디옥 교회에서 최초의 선교사로 부름받아 성령의 인도로 지도자들에게 안수를 받고 이방 세계로 파송된 바나바와 사울이(1-3절),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안디옥을 떠나 항구도시인 실루기아(Seleucia)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로 향하는데, 구브로(Cyprus) 섬으로 갑니다(4절). 제 1차 전도여행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었습니다. 그런 연고 때문에 처음 선교지를 구브로로 정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브로 섬의 수도인 살라미(Salamis)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5절)고 합니다. 이 한 구절 말씀에 3가지의 전도 혹은 선교 전략이 나타납니다. 첫째로 그들은 사람이 많은 도시로 갔습니다. 둘째, 그 도시의 회당으로 먼저 갔습니다. 아무래도 복음의 배경에 생소하지 않은 유대인을 먼저 찾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듣지 않으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전도(선교) 사역은 팀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도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요한은 바로 마가 요한으로 바나바의 생질이기도 합니다(행 12:12, 25, 골 4:10). 그는 풋내기 견습생으로, 마치 여름 방학에 짧은 기간 단기선교를 떠나는 학생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여튼 세 사람이 한 팀이 되어서 사역을 한 것입니다. 그는 같이 선교를 하다가 나중에 밤빌리아에서 바울을 떠남으로 실망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전도 혹은 선교 전략에 적용하자면, 첫째, 하여튼 사람이 많은 데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먼저 교회에 조금이라도 노출이 된 사람들에게 전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 정말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는 것이지요. 셋째,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팀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뒤에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하고, 전방에서 직접 부딪히는 사람도 있어야 하되 팀 사역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최초의 선교팀 세 사람은 살라미에서의 사역이 끝난 후에 섬을 가로질러 바보(Paphos)라는 도시에 이릅니다(6절). 그런데 거기서 바예수(예수의 아들, 구원의 아들)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요 박수(점치는 사람 혹은 무당, 마술사)를 만납니다. 그 이름의 뜻과는 정반대로 마귀의 아들입니다. 악령이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구브로 섬을 다스리는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는데, 총독 수하에서 거짓 예언을 하며 마술을 부리면서 상당한 부와 권세를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총독은 지혜있는(intelligent) 사람, 즉 지적인 똑똑한 사람으로서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습니다(7절). 선교팀에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 섬을 다스리는 총독이 변하면 그 섬 전체에 얼마나 그 영향을 끼치겠습니까? 지적인 총독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한 사실을 보면 복음은 무지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똑똑한 사람, 많이 배운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성령께서 그 마음을 미리 준비시켜 주신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선교팀이 총독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니까, “이 박수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8절)라고 합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냅니다. 그 동안 총독 옆에서 점성술로, 마술로 여러가지 능력을 보이고 있다가, 이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자신이 있을 자리가 없어지니 큰 위협을 느끼고 당연히 믿지 못하게 힘쓸 수 밖에요.
그렇습니다. 악령의, 사탄 마귀들의 가장 큰 방해는 한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믿게 되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아니 자신들의 종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주님의 종이던지 마귀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던지 사탄의 자녀입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의 노예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방해합니다.
오늘날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믿는 자들이 부자가 되고 유명해 지는 것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할 때, 무명할 때에는 기도도 많이 하고, 예배도 뜨겁게 드리고 하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부자가 되고, 유명해 지고 나니까 교만하여져서 기도도 덜 하고, 예배도 건성으로 드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너무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았기에 사탄은 그런 일로 긴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열심을 가지고 잃어버린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영혼을 바로 세워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보면 가장 강력하게 공격합니다. 처음 믿을 때서부터 오랜 신앙생활에도, 평신도일 때에도,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하여도 변함없이, 아니 더 열심히 전도에 힘쓰는 사람을 사탄은 가장 싫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9-10절)라고 외칩니다. 이제 신약성경에서 처음으로 ‘사울’을 ‘바울’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성경 구절입니다. 사울(Saul)은 히브리 이름이고, 바울(Paul)은 로마식 이름입니다. 이제 사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정말 그 사역을 시작하기에 이방인의 이름으로 불리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구절에 악령이 하는 구체적인 일이 나옵니다. 모든 궤계(trickery, scheme), 모든 악행(deceit) 즉 속임수를 쓰고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마귀의 자녀이지, 이름대로 바예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사기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8절에 엘루마(박수)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동안도 총독 옆에서 이 사람은 속임수로 그 심령을 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악령들이 사람을 속입니다. 거짓말을 합니다. 모든 궤계, 악한 계획을 세워서 자기 노예가 되게 합니다. 옳은 길을 굽게 합니다. 거짓 선지자의 특징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해 예언도 하는 선지자 혹은 사도인양 이야기 하면서 헷갈리게 합니다. 사실 맨 처음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한 뱀의 모습이 아닙니까?
또 악령들은 사회와 나라를 부패하게 합니다. 가정을 파괴합니다. 돈이 전부라고, 쾌락, 정욕을 채우고 사는 것이 전부라고 인도하며 타락으로 몰아갑니다. 도덕적인 삶, 형이상학적인 인간의 삶을 비도덕적인 삶으로 형이하학적인 삶으로 가치를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요즘은 종교다원주의가 득세합니다. 악령은 종교가 다 똑 같은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다 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분명히 다르지요. 참된 길은, 진리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참 하나님께 가는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갈 수가 없습니다. 죄 사함을 얻지 못합니다.

성령과 악령의 싸움이 어떻게 됩니까? 바울이 성령 충만하여 엘루마 박수 무당에게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11절상) 외치니, 즉시 그 눈을 안개와 어두움이 덮어 보지 못하게 되어 자기를 인도할 사람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절대로 악령이 성령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유는 이미 예수님께서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어떻게 사탄 마귀가 하나님을, 성령님을 이긴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우리에게 대적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성령 충만하여야 합니다. 본문에도 9절에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합니다.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기도로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말씀을 선포하면, 말씀대로 살면 반드시 사탄 마귀들을, 악령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12절에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하였습니다. 성령님이 이기는 것을 보고 믿게 되었고, 주님에 대한 가르침에 놀랐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선교팀의 사역으로 얻은 전도의 첫 열매로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성령님이 악령을 제압하는, 사도가 박수 무당, 마술사를 제압하는, 복음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가정도, 교회도, 직장도, 학교도, 사회도, 나라도 전쟁터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터라는 말입니다. 성령과 악령이 치열한 싸움을 하는 전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도 경고하였습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0-12)! 이 영적 전쟁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영적 전쟁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말입니다. 아니 안일하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 있음 조차 알지 못하고,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것조차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둔감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경우 지고 맙니다. 죄에 빠지고 맙니다. 다 이겨놓은 전쟁인데도 지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이 성령과 악령과의 싸움이 가장 치열한 곳은 전도지, 선교지입니다. 전도대상자가 있는 가정과 이웃, 교회입니다. 이제 막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려는 연약한 성도들이 있는 곳입니다. 자꾸 의심하게 하고 여러 가지로 간교하게 속여서 혼동하게 하여 그 믿음을 버리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성경도 잘 모르는데 올바로 가르치지를 않고 비슷하게, 혹은 전혀 다르게 가르치고 인도하는 거짓 목자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도 오류가 없는 정확무오한 성경을 그대로 믿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맛에 맞는, 좋아하게끔 골라서 가르치는 신학자, 목사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비판하고 잘라내는 그들입니다.
그리고 악령이 하는 주된 일은 갈라놓는 것입니다. 화평이 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온갖 잘못된 생각과 의심, 시기와 질투, 거짓과 속임수로 갈라놓습니다.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약 3:14-16)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런 전쟁터에서 전쟁을 하는 군인으로서 우리가 무장을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진리의 허리띠, 의의 방탄조끼, 평안의 군화, 믿음의 방패, 구원의 헬멧,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엡 6:14-17)? 그리고 이에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한 것처럼, 늘 기도하면서 최전방에 있는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악령과 싸우면 이깁니다. 성령님을 소유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성령님을 의지하며, 모든 일에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이깁니다. 지는 이유는 싸우려고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적이 오는 지도 모르고, 잠자고 있거나, 나태해져 있으면, 또 전혀 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싸우기 때문입니다. 약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 6:10) 한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세상 군대도 강해지기 위하여 고도의 훈련과 신무기로 무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우리의 영적인 삶이 너무 안일하지 않습니까? 내가 전쟁터에 있는 것조차 모르고 지내는 것은 아닙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주님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마귀들과, 악령들과 싸워야 합니다. 깨어 있으십시오. 늘 경계태세를 늦추지 마십시오. 성령 충만하여 말씀과 기도로, 찬양으로 무장하고 싸워 이기십시오. 그리고 그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영광을 받으시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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