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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11-21 (목) 11:29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61    
자족하는 마음으로 (딤전 6:1-10)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달갑지 않은 상황이나 책임을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다. 오히려 주어진 환경 속에서,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믿는 자로서 높은 수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경건한 삶, 거룩한 삶이요, 아름다운 복된 삶입니다. 특히 재물, 돈 문제에 있어서 정직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돈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선 바울은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이 노예였기에 노예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1절)고 하였습니다. 비록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여도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은 믿는 자답게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예제도 자체를 부정하여 데모를 하며 주어진 책임을 하지 않는 것은 믿는 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자로서 상전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더 당당한 것입니다. 결코 비참하거나 비굴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입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의 정부나 사회기관, 직장, 교회 심지어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복종하고 그들을 존경하기 원합니다(롬 13:1-2, 딛 3:1, 벧전 2:13).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 교훈이 훼방을 받지 않게 됩니다.
특히 믿는 상전이라면 주님이 맺어준 형제이니 더 잘 섬기라고 합니다. 바울은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2절)고 합니다. 당시 부유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종이나 청지기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고 해서 종이 자신의 신분을 벗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전을 섬기는 종의 의무도 가볍게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잘 섬겨야 합니다. 상전과 종이 하나님의 권속이 됨으로, 서로 형제가 됨으로 서로를 섬기는 의무가 더 커지게 됩니다. 더 높은 수준의 삶이 요구됩니다.
그 이유는 유익을 받을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종으로서 주인이 신앙을 인정해준다는 것이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들은 다 손해보고 어떤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 것만으로, 예배하며, 찬양하고 기도하는 자유가 있다는 것으로 더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족하지 못하고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다고 해서 더 노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그 다음에는 상전이 먹을 것을 더 많이 주기 바라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의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주인이 신앙이 있더라도 마음이 상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훼방을 받게 됩니다.

바울이 디모데 목사에게 종과 상전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존경과 순종, 사랑의 원리를 가르쳤는데 이 영역에 있어서 거짓교사들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3-5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않는 것’이 거짓 가르침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대로 전수되어 있었습니다. 그 영광의 복음(딤전 1:11)과 사도들이 가르친 경건에 관한 교리가 있었습니다. 복음과 교리가 그들의 신앙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에 ‘착념하라, 곧 붙들어라’고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교만하여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넘어가면 투기와 분쟁, 훼방(malicious talks), 악한 생각이 나고 마음이 부패하여 지고 진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삶은 마음이 control, 지배하게 됩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생각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탄 마귀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잠 4:23). 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롬 12:2).
사탄 마귀의 거짓 가르침은 우리로 하여금 자족하지 못하게 하고 탐심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습니다. 즉 신앙으로 돈벌이를 하려고 합니다. 신앙을 이용하여 자리를 차지하고, 신앙을 빙자하여 자기 이익을 채우려고 합니다. 교회에 와서 장사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게 되고 교회는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교훈에 대하게 될 때마다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이 가르침이 진정한 믿음의 기초가 되는 성경 말씀과 일치하는가? 이 가르침이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게 하는가?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고 경건의 삶을 살아가는데 유익한가? 이런 질문들을 해야 합니다.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족하는 마음만 있으면 그런 거짓 교훈에 넘어가거나 교만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경건의 큰 유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의 큰 이익이 되느니라”(6절)! 바울이 말하는 경건은 새 생명과 결합된 바른 교훈과 바른 삶으로 확인되는 진리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의 전 영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열정을 말합니다. 이는 물질적인 소유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물질을 통해 만족을 얻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의 삶을 추구하는 성도들은 육체의 소욕을 좇지 않습니다. 자족하기에 욕심을 버립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7-8절)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말하는 격언입니다. 우리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나중에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데 뭐 그렇게 욕심을 내느냐는 것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있기에 집도 필요하고, 자녀가 있으니 교육도 시키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법니다. 성경은 이것이 죄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필요를 위하여 돈을 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욕심으로 인하여 원하는 것을 가지려고 부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9절)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게 하나요? 이유는 사람은 돈에 욕심을 내면 정직하기 어렵습니다. 죄를 짓게 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고 한 것처럼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Lottery 에 인생을 거는 사람, 도박에 빠진 사람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침륜과 멸망에 빠진다고 한 것입니다. 침륜은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더 이상 마귀의 유혹에 저항하지 못하고 정복되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한심하다 비방하고, 욕한다 하더라도 거절할 것은 우리 영혼을 걸고 거절해야 합니다. 넘어서는 안되는 라인을 넘어가면 안됩니다.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는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10절)라고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불행과 악의 원인이 됩니다. 이유는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족하지 못하고 돈이 있어도 늘 부족하기에 더 많이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돈을 사랑하는 사업가는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하여 가족을 도외시 합니다. 일 중독자가 되어 일에 모든 것을 투자하기에 사랑을 잃어갑니다. 늘 한탕 하려는 사람은, 대박을 바라는 사람은 다시 일하지 말아도 되기를 바라며 Lottery 나 도박을 합니다. 돈을 더 벌려고 주식에 투자하려고 친구나 친척의 돈을 끌어 들였다가 많은 손해를 보게 합니다. 더 나아가 때로는 탐심을 채우려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거나, 현금을 노리고 살인도 하는 것을 봅니다. 자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시기하기 때문에 불평하게 되며 주위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돈 때문에 양심도 팔게 되고, 친구도 배신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믿음도 팔아먹게 됩니다.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는 것이 되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돈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죠. 돈을 정직하게 벌고, 자신과 가족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직장이나 사업체와 건강으로, 시간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돈이 하나님의 선물이지요. 문제는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돈이 살아가는 목적이 되면 안됩니다. Money should not be the driving force of life.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돈을 버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추진력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돈에 대한 올바른 관점, 성경적인 관점을 몇 가지 더 말씀 드립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면 얼마든지 돈과 작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욥은 이 원리를 이해했습니다. 재물을 주신 자도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욥 1:21). 돈을 가진 자는 돈을 자랑하면 안됩니다. 돈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돈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안전보장(security)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재물에 소망을 두면 안됩니다(딤전 6:17).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마 6:24). 재물은 영원한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합니다(마 6:33).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교훈을 배웁니다. 첫째는 우리 믿는 자들은 자족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관계된 사람들이 믿는 형제, 자매들이라고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더 잘해야 합니다. 경건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도덕적인 기준보다 훨씬 높은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에 자족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면 안됩니다. 자신과 가족의 필요를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하여 돈을 버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돈을 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드려야 합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14)고 한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늘 자족하는 믿음을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사탄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고, 오히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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