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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12-09 (월) 11:4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46    
예수님이 칭찬한 믿음 (눅 7:1-10)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영접한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인(Christian)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인데, 내 자신도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심을 믿고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받으시고 그 자녀가 되며(요 1:12) 풍성한 삶을 누리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요 10:10). 가장 기초적인 이 믿음 위에 점점 성경말씀을 알아가면서, 그 말씀을 순종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 더 확실히 알고 믿을 때에 믿음은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살아서 역사하는 모습들이 우리 주위에 나타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한지가 오래되는데도 나만 잘 믿으면 되지 하거나, 혹은 나만 소유하고 있어서 아무도 모르는 믿음은 아닌지?
아니면 주위 사람들에게, 이웃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믿음인지?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모습 속에서 성령이 함께하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그러한 믿음인지, 우리의 믿음을 살펴보는 이 시간되기를 원합니다. 이유는 주님께서 그 믿음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놀랄만한, 칭찬할만한 믿음을 나타내고 보이는 우리가 되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백부장, 사도 베드로의 고향인 가버나움에서 사병 백 명을 수하에 데리고 있던 한 이방인 로마장교가 주님 앞에 보인 믿음을 생각하며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을 살펴보며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주님도 놀랄만한 믿음이어서 칭찬했던 것입니다.
공생애 사역의 첫 설교였던 산상수훈의 주옥 같은 말씀을 전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의 중심이었던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습니다(1절; 눅 4:23).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 때 한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2절),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 장로들 몇을 예수님께 보냅니다(3절). 마태복음에서는 그 병이 심한 중풍병으로 큰 고통 중에 심히 괴로워한다고 했습니다(마 8:6). 예수님께서 그 종을 구원하실 줄 믿고, 살려주실 줄 믿고 장로들을 보낸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이방인인 로마 장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에 대한 소문만 듣고도 간절한 믿음으로 사람들을 보낸 것입니다. 헬라어 원어에 여기 쓰인 '종'의 뜻은 젊은 아이, 십대 청소년을 가리킵니다. 그 당시 로마군인으로 백부장 정도면 대단한 권세로 자신의 부하나 종들을 부리며, 그들을 사람취급도 하지 않을텐데 이 백부장을 달랐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그로 하여금 어린 종들까지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2절)이라고 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이 백부장은 유대민족을 사랑하여 자기 재원을 사용하여 유대인 회당을 지어준 것이었습니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5절)라고 유대 장로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종을 고쳐주시려고 그 장로들과 함께 백부장의 집으로 가려고 합니다(6절).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 집으로 온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을 보낸 백부장에게서 들려오는 말이 뜻밖입니다.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6-8절)라고 합니다. 이 고백이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주님이 놀랍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칭찬합니다. 이유는 백부장의 믿음을 표현하는 고백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히 여겨 돌이켜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9절)!
어떤 믿음이기에 예수님이 놀라고, 칭찬합니까?

첫째는, 예수님이 진정으로 '주'가 되심을 인정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말하면 로마군대 백부장이 목수의 아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명예와 권세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그가 세상 모든 권세를 갖고 있음을, 이 세상 만물의 주인이 되심을, 주권자이심을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주여' 라고 부르고 있는 것처럼 감히 하나님의 아들이 미천한 자신의 집에 어떻게 들어 오겠느냐는 것입니다.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지극한 겸손입니다. 정말로 종의 자세로 예수님을 주로 받드는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진정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 자신은 죽고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사십니까(갈 2:20)? 아니면, 입으로는 '주여' 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내 뜻대로 사는 것은 없습니까? 내 의지대로 살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인생 운전대를 잡은 분이 예수님이 맞습니까?

둘째는, 예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집까지 가실 필요가 없는 이유는 그저 말씀만 하셔도 자기 하인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병마까지도 순종하리라는 믿음입니다. 사탄도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는 힘을 못쓸 것을 알았던 믿음입니다. 마치 백부장 자신도 윗 사람인 천부장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고, 자기 아래 사람은 자기 말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만왕의 왕 되신 주께서 말씀하시면 이 세상에 그 누가 그 말씀을 거역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말씀 한 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인도함으로 허락하신 이 성경 말씀에 능력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말씀이 능력이 있음을 믿으십니까? 이 세상 어떤 것도 그 말씀 아래 굴복하게 될 것을 믿습니까? 온갖 병마나 무슨 고통을 가져다 주는 사탄도 어쩔 수 없음을 믿으십니까? 어떤 사람이든, 천사들이든, 귀신, 악령들 할 것 없이 다 그의 통치 아래 있음을 믿으십니까?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언약의 말씀이, 약속하신 모든 말씀이 그대로 될 줄 믿어야 합니다. 본문의 백부장은 예수님께로 나아가서야 말씀을 들었지만 우리는 언제나 원하면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더욱 능력 있는 삶이 우리 앞에 있는 것입니다. 또 백부장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종들인 우리도 그 말씀 앞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굴복하여야 합니다. 감히 그 말씀 앞에 대항할 자가 누구입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병마도 물러간 것입니다.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더라”(10절)고 하였습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선택한 민족이라고 자랑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는 지옥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 사람이 많겠다고 하셨습니다(마 8:12). 하지만 백부장과 같은 이방인들 중에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서 지낼 자가 많겠다고 하십니다(11절). 많은 유대인들을 만나신 예수님이지만 본문의 백부장처럼 진실하고, 겸손하고, 사랑이 많고, 주의 말씀을 온전히 믿는 깊은 믿음을 가진 자를 만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이히 여기신 것입니다. 감동을 받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모태신앙으로 신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저절로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지요. 저절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은 아니지요. 본인 스스로의 믿음이 결정합니다. 개인의 믿음이 그의 장래를 좌우합니다. 그런데 한 개인의 살아있는 믿음은 그 주위를 밝게 합니다.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주위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이 중풍병을 앓고 있는 종을 고쳤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리라는 백부장의 믿음 때문에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살아있을 때에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 가족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요(마 5:13-16).
한번은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을 여행하실 때 가나안 여자 하나가 주님 앞에 나아와 "소리를 지르며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마 15:22) 하였는데 주님께서 모른 척하셨습니다. 그러자 다시 붙들기에 그녀를 시험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마 15:24, 26) 하시니까, 그 여인이 대답하기를 "주여 옳소이다 만은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7절) 라고 합니다. 믿는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다가 넘쳐 흘러 버리는 그것이라도 받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이 믿음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28절) 함으로 그 시간에 딸이 나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감동을 받은 또 하나의 사건입니다. 이 어머니의 큰 믿음이 딸을 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영혼의 구원은 개개인의 믿음과 관계 있지만, 한 사람의 믿음이 살아 있다면, 행동으로 실천된다면 하나님을 감동하게 할뿐아니라, 그 주위 사람들에게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그 믿음이 사랑과 겸손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의지하고 순종함으로 가족이, 친구들이, 이웃이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믿음이 선한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아닙니까?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가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었지 않습니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2-3)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을 감동시킨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축복을 체험한 경우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믿음 때문에 여러분의 주위 환경이 달라진 적이 있습니까? 믿음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 믿음의 대상이 잘못되어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실패합니다. 망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믿음이 작다 하더라도 믿음의 대상이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이라면, 올바로 알고 믿는다면 결코 작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고 하셨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믿음은 하나님조차 감동을 받습니다. 주위에 선한 영향을 미칩니다. 정말로 말씀에 능력이 있음을 확신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믿음은 주위에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백부장의 믿음으로 그 종이 고침을 받았듯이 말입니다.
나만 비밀스럽게 몰래 믿는 믿음이 아니라 내 가족과, 친지와, 이웃에게 나타나는 믿음이 살아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물론 그러한 믿음은 자기 희생으로 나타납니다. 백부장처럼 내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며, 실제로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싹이 날 수가 없고, 꽃이 필 수가 없고, 열매는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지요.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처럼,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 구원과 축복을 가져다 주신 것처럼 만약 우리의 믿음 때문에 우리 주위에 잃어버린 영혼의 구원과 축복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입니까?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믿음이 하나님이 칭찬할만한 믿음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가버나움의 백부장처럼, 귀신들린 딸을 살린 가나안의 여인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웃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확신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주님으로 모시고 살며,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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