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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2-17 (월) 06:2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3    
구원에 이르는 지혜 (눅 7:31-35)


혹시 누군가를 전도해보려고 예기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한번 예기해서 잘 안되어, 기도하고 또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간증도 하면서 설득해보았지만 상대방이 그 굳어진 생각, 사상으로 인해 마음을 열지 않아서 답답함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특별히 연세가 드신 분일수록 더 힘들지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같은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의 음성에도, 예수님의 음성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자 비유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그 동안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들은(예: 22절) 자신이 메시아임을 입증하고도 남을만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를 메시아로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하시면서,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여기 ‘세대’라는 단어를 종종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는데,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눅 9:41), 그리고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눅 11:29)고 묘사한 것처럼,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부정하는 세대의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32절)라고 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장터에서 결혼식 놀이를 하면서 피리를 불면 보통 아이들은 흥에 겨워 춤을 추면서 같이 놀텐데 어떤 아이들은 요동하지 않고 그냥 구경만 하더라는 말입니다. 아니 뾰로통하니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은 장례식 놀이를 하면서 슬프게 울고 있는데, 전혀 우는 척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냥 한쪽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을 비판만 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놀더라도 만족하지 않으면서, 불평하고 비난하는 아이들(Spoiled Brats)을 비유로 들어 유대종교인들을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비유의 말씀을 설명하십니다.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며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33-34절)라고 비판하는 유대종교인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엄격한 나실인의 생활을 하며 자신을 부인하기에 광야에서 잘 먹지도 않고, 잘 입지도 않는 생활을 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치니 그들이 귀신들렸다고 했던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400여년 만에 나타난 참 선지자로, 이사야 선지자와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자신들의 기대에 어긋한 예언을 하니 경멸하며 귀신들렸다고 한 것입니다.
반대로 인자이신 예수님은 아무 차별이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쁜 자리에 참여하여 잘 먹고, 포도주도 마시니, 그는 세례 요한과는 대조적으로 부풀려 과장하여 먹는 것에 욕심을 내고, 술을 즐긴다고 비난하며 세리처럼, 죄인처럼 산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 주지할 사실은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 포도주를 만들어 주시고 드신 것은(요 2장) 오늘날의 포도주와 다릅니다. 포도열매를 거둔 후에 하얀 천을 깔아놓고 발로 밟아 그 아래 떨어지는 포도즙을 말합니다. 이 포도즙을 항아리에 넣어 오래 두면 발효를 하여 독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세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리한 세금을 거두어 재산을 빼앗아 가는 자들이었기에 당시 욕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죄인’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613가지의 율법 조항을 지키지 않고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켰습니다. 특히 복음서에서는 성적인 죄를 짓는 자들에게 자주 죄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보통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시려고 함께 식사를 하였던 주님이시며, 결코 세리나, 죄인들과 어울려 죄를 지으신 분이 아닙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을 주고, 심령과 육신을 고쳐 주시기 위하여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즉 장터에서 아이들이 피리를 불며 기뻐하며 혼인잔치 놀이를 한 것의 비유는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으니, 기다리던 메시아가 왔으니 그들이 기뻐해야 하는데 전혀 동참하지 않고 있는 것을 뜻하며, 아이들이 장례식을 맞아 애곡하는 놀이의 비유는 세례 요한을 가리키며 그가 선포한 대로 회개를 통해 길을 예비함으로 그들이 거룩한 메시아 앞에 서도록 준비하라고 한 것인데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자신을 부인하며 외치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너무 극단적이다’ 하며, 버림받은 자, 외로운 자, 가난한 자, 병든 자의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너무 사교적이다’ 하며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들은 진리의 말씀이나 공의에는 관심이 없고, 다만 자신들의 잣대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정죄하며 비판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은 전통 유대종교의 대적이었던 것입니다. 굳어진 사상으로, 율법주의로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을 이성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제압할 수 없으므로 그저 비판만 한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들을 보았지만 인정하지 않고, 시기 질투만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그들의 불신앙을 성경이나 믿는 자들을 비판하면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35절)고 하십니다. 지혜를 의인화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의 병행구절인 마태복음에서는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 11:19절하)고 하였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지혜는 저들의 잘못된 거짓 고소와 비판과 같은 부패의 타락한 행동을 만들어 내지만,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의 지혜는 회개와 죄 사함, 의의 행동을 나타낸다는 뜻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로 인도되는 자녀들에게는 그런 열매들이 나타나게 되어서 하나님 앞에 옳다고 인정을 받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얼마 후에 그들의 모함과 누명으로, 신성모독죄로 판결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만에 승천하심으로, 이 땅에서의 3년 동안의 사역이, 하신 말씀이 모두 진리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참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그 이후 2000여년 역사상 수많은 제자들에 의하여 복음은, 진리의 말씀은 온 세상에 퍼져서 믿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거짓이라면 금방 밝혀져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내려올 수가 없습니다. 거짓은 시간이 지나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1487년경에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이래 가장 많이 인쇄된 책이 성경책입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베스트셀러는 성경책입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진리가 아니면, 진실이 아니면 2000여년을 내려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이 지구상의 75억의 인구 중 약 25% 이상이 참된 그리스도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의 말에 의하면 오늘날 중국이 아무리 기독교를 핍박을 해도 1억명 이상의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합니다. 아니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예수님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이제 곧 다가올 부활절이나 성탄절을 왜 지키는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지혜서인 잠언 1장에서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20-23절)고 하였습니다. 지혜가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사람들아, 인생들아! 내 말을 들어라. 어리석은 자들이 언제까지 어리석음을 좋아하고, 거만한 자들이 거만을 기뻐하고,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는구나. 제발 책망을 듣고 돌이켜라 그러면 성령을 부어주며 내 생각을 알게 하겠다’라고 안타깝게 외칩니다. 예수님의 외치는 음성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어리석고, 거만하며, 미련하여 지혜를 듣기 싫어합니다. 아니 오히려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멸시하며 책망을 받지 않습니다(잠 1:24-25). 그리하여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재앙이 폭풍 같이 임합니다. 근심과 슬픔이 임합니다(잠 1:27).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잠 1:28). 이유는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잠 1:29-30)고 하였습니다. 훗날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 말씀을 주신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 말씀 안에 참 믿음과 구원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만이 인생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한 마디로 줄이면 그것은 곧 죄인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의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를 예언한 구약 성경대로 오신 신약성경의 메시아, 그리스도가 부활 승천 한 후에 또한 다시 오시겠다고 한 약속을 믿을 때 풍성한 구원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0-11)라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도 진리의 말씀을 비판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음, 거만함, 미련함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이며, 다 옳으며, 굳은 마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비판하기만 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 진리의 말씀으로 인하여 죄악의 삶에서 의의 삶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슬픔에서 행복으로, 이기적인 삶에서 자신을 주는 삶으로 변하고 있습니까? 그 모습을 어떻게 부인한다는 말입니까? 무엇으로 설명한다는 말입니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리석고 미련합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고 하였습니다. 가장 기본은, 첫걸음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대신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게 하시고, 놀라운 능력으로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수많은 제자들에게 사심을 나타내시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셔서 오늘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주권적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어리석음과 교만과 미련함을 내려놓으십시오. 겸손히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진솔하게 고백하시고 회심하여 예수님을 구세주로, 여러분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기다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하셨습니다. 믿는 순간 예수님이,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의가 주어집니다. 아직 육체를 입고 있는 한, 죄성이 있는 한, 연약하여 또 죄를 지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인이라고 불러주십니다(롬 4:24-25). 자녀로 삼으십니다(요 1:12). 할렐루야!
이미 구원에 이르는 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세상에서 구별된 성도가 된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 크신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정말 구원의 이르는 지혜로 믿음을 갖게 된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욕망이 달라집니다. 추구하는 바가 달라집니다. 죄된 삶을 버리고 의의 삶을 추구합니다.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힘을 냅니다. 전에는 이기적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이타적으로 살려고 애씁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위에 아직도 이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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