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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3-19 (목) 10:4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49    
귀히 쓰는 그릇 (딤후 2:20-26)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던 인간을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시든지 말입니다. 바울은 그의 마지막 서신, 2장에 들어와서 디모데에게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강하여지며(1절),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되라고 한 후(15절), 오늘 본문에서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귀한 그릇으로서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우선 한 예를 들고 있습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20절) 하였습니다. 큰 집은 교회를 가리킵니다(딤전 3:15). 교회는 그 크신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집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머무는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 때문에 큰 집입니다. 그런데 어느 집이나 여러 종류의 다양한 그릇들이 있듯이, 하나님의 집에도 다양한 그릇들이 있습니다. 금 그릇, 은 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이 있습니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같은 진흙으로라도 하나는 귀하게 쓰는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쓰는 그릇을 만드십니다(롬 9:21).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임을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금으로 만들어진 금 그릇이라 하더라도 귀하게 쓰임을 받지 못하고 천하게 쓰임을 받거나, 자주 쓰임을 받지 못한다면 금으로 만들어진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흙으로 만들었어도 귀하게 쓰임을 받으며, 자주 쓰임을 받는다면 그 가치는 금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 사실 우리 중에 자신을 금 그릇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 부족하고 연약한 그릇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비유하여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었다고 하였겠지요(롬 9:21). 자신도 질그릇으로 여겼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도,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고 하였습니다. 비록 우리가 질그릇이지만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졌으니 그의 능력이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그릇이 자주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일까요? 어떤 인생이 그런 복된 삶을 살까요? 21절에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것’이라 함은, 앞 문맥 14절-19절에서 언급한 망령되고 헛된 말을 한다든가 말다툼을 하는 거짓 선생들의 경건하지 않음을 가리킵니다. 그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그 사람은 귀히 쓰임을 받을 것입니다.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그릇만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그런 그릇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다고 하였습니다. 불결하고 더러운 그릇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설거지를 해야 합니다. 청결해야 사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오염되지 않고 순수하고 거룩한 삶을 유지할 때에 사용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선한 일을 하는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깨끗하고 거룩함을 유지하는지 알려줍니다. 첫째로,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22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청년’은 청소년을 뜻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은 인생을 청년과 노년의 둘로만 나누어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청소년, 청년, 청장년을 다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20대부터 적어도 50대까지 일컫는 말입니다. 디모데도 당시 나이가 30대 혹은 40대였습니다. 그러니까 ‘청년의 정욕’이 20대의 어떤 성적인 욕망만을 뜻한다기 보다는 모든 이기적인 야심이나 오만한 독립심을 의미합니다. 부와 권력에 대한 야망, 그에 따르는 시기와 질투 등을 뜻합니다. 그런 사탄의 유혹을 피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악을 피하면서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해야 합니다.
여기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전가된 하나님의 의를 따라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거룩하고 의롭게 사는 것을 뜻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진리의 말씀에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물론 아가페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도움을 베푸는 것입니다. ‘화평’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특성들이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에게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자들과 교제를 해야 사탄의 유혹을 피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주님을 붙들고 이길 수도 있지만, 이러한 믿음의 권속들과 함께 하면 훨씬 더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로,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니라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23절-24절상)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귀히 쓰임을 받으려면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좋지 않은 것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데살전 5:21-22)고 하였습니다. 비상식적이고 어리석은 논쟁에 휘말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자들과 다투지 않아야 합니다. 이미 바울은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딤전 1:4)고 하였었습니다. 당시에 에베소 교회 안에 진리가 아닌 신화나 족보에 집착하여 자꾸 다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분별력을 가지고 쓸데없는 논쟁에 휘말려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셋째로, 오히려 온유와 겸손으로 가르치며 참고, 계속 거역하는 자가 나타나면 온유함으로 징계하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24절하-25절상) 하였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주님의 종들은 모든 사람을 온유함으로 대합니다. 잘 참습니다. 겸손해서 그렇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들까지 무조건 참고 잘해주는 것 아닙니다. 온유함으로 징계합니다.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며, 경계하고, 경고합니다. 주님께 귀히 쓰임 받는 사람은 이런 성품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부족하면 자꾸 자신을 쳐서 변화를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이런 성품을 개발해야 합니다.
넷째로,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 말입니다. 겸손과 온유로 참고 가르치면서 징계하면,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여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25절하-26절)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종의 마음이 순수하고 겸손하다면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거역하는 사람의 마음을 회개하도록 하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가 어둠에서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사실 진리를 거역하는 자도 주님의 종이 온유함으로 대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징계한다는 것을, 경계한다는 것을 압니다.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사 하나님의 뜻을 좇을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택자이면 회심할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으로 진리를 말하고, 가르치며, 우리 스스로가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직도 사탄 마귀의 올무에 매여 있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시고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사실 그릇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순금으로 만들어진 그릇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쓰레기로 가득하거나 더러우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어디에 부딪혀서 금이 가서 깨어졌거나 하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흙으로 만들어진 질그릇이라 하더라도 깨끗하면 자주 쓰임을 받습니다. 우리의 외적인 이력(spec.)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크기, 모양, 재질은 관계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것을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 유한하고 연약한 죄인들입니다. 질그릇입니다.
문제는 질그릇이 깨끗하냐는 것입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순수하고 청결하여 주님이 귀하게 쓸만한 그릇이냐는 것입니다. 깨끗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씻어야 합니다. 주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되어야 합니다. 깨진 곳이 있으면 수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치유와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깨끗하고 거룩함을 유지하려면 우선 이기적인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의 부와 권력, 명예에 대한 야망을 버려야 합니다. 교만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대신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해야 합니다. 진리와 비진리에 대한 분별력,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몰상식하고 어리석은 논쟁이나 다툼을 피해야 합니다. 대신 모든 사람에게 온유와 겸손으로 대하며, 가르치며, 잘 참아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절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잃어버린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온유함으로 가르쳐서 혹시 진리를 거역하는 한 영혼이라도 회심하고 사탄 마귀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품에 안기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0)고 하였듯이, 토기장이 하나님께서 그 만드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깨끗하고 순수한 그릇들로서 주님으로부터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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