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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4-10 (금) 04:38
분 류 특별설교
ㆍ조회: 149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요 19:17-27)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다섯째 날
종종 금으로 장식된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여인들, 혹은 남자들을 볼 때 거의 다 그저 아름다운 장식으로 합니다. 간혹 어떤 이는 자신의 믿음을 나타내거나, 자신이 신자임을 자랑하기 위해서 합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2000여년 전에 로마제국 하에서 그런 장식을 하고 다녔다면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며 미치광이나 정신병자로 봅니다. 이유는 그 당시에 십자가는 말할 수 없는 수치와 모욕의 상징(symbol)이었습니다. 아주 천한 계급의 사람들 중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받던 형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쳐다볼 수 있는 높은 언덕 위에, 극악무도한 죄인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하기 위하여 세워지던 십자가였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심각한 것이 죽음입니다. 결국 언젠가 우리 모두는 다 죽어야 합니다. 그 죽음이 두려워 사람들은 가능하면 오래 살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그리하여 병으로 고생하지 않고 아주 오래 살다가 잘 죽으면 ‘복이 많다’고 합니다. 반대로 젊은 나이에 죽으면 모두들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며 불쌍히 여깁니다. 그런데 젊어서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이 죄를 짓고 교도소에서 사형을 당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더 비참한 것이 있다면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여관에 방이 없어 마구간에서 태어나고, 30세가 되기까지 목수 일로 아버지를 도왔으며, 3년 동안의 공생애 사역 기간에도 머리 둘 곳 조차 없으시던 예수님께서 마지막 그의 삶을 마감한 곳이 바로 ‘해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골고다(갈보리) 산 위의 십자가였습니다. 그 십자가 위에 주님은 그의 지친 몸과 가시 면류관에 찔려 핏자국이 흥건한 머리를 기대면서, 이 만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실 때, 자신을 저주하며 십자가에 못박는 유대인들과 로마 군병들을 향한 복수나 공정한 심판을 부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비를, 용서를 구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생의 두 번째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구약의 성경을 인용한 말씀이 있듯이(24절), 예수님 십자가의 사건은 이미 주님 오시기 1500년여 전부터 예언되었던 것입니다(창 3:15). 또한, 메시아의 고난은 이미 이 일이 있기 1000년 전에 시편 22편에 손과 발이 창에 찔리심(16절)과 뼈가 상하심(14,17절), 겉옷과 속옷을 빼앗기심(18절), 모욕과 멸시를 당하심(12-13절)들이 생생하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53장에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오신 메시아의 고난과 죄인들과 함께 죽으심이 전체적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해골이라는 뜻을 가진 골고다 언덕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걸어 가셨습니다(17절). 아마 그 지형의 윗 부분이 벗겨진데다 사형 집행이 되는 장소라서 해골 같이 생겼다 하여 골고다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로마법의 관례대로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는 사람은 채찍에 맞은 후에 반드시 처형장까지 그 십자가를 메고 가야 했습니다. 다른 두 행악자들과 함께 아무 죄도 없으신 분이 여느 중 범죄자처럼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 도성을 가로질러 갈보리 산으로 향하였습니다. 두 명의 강도와 함께 못 박힘도 "그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사 53:12)는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유월절 기간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찾아 왔기에 이 광경을 봅니다. 예수님은 너무 잘 알려진 분이었기에 그들 대화의 주제가 됩니다. 가로가 약 5-6 ft, 세로가 약 6-8 ft 되며, 무게가 약 80-120 파운드나 되는 무거운 십자가 나무를 지고 오르십니다. 물론 가시다가 너무 힘드셔서 자꾸 쓰러지시고 가지를 못하시니, 군병이 옆에 있던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지우게 합니다(막 15:21). 주위에는 백부장을 지휘관으로 로마 군병들이 둘려져 갑니다. 목에는 약 1 x 2 ft 나무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이라고 쓰인 패를 매달고 올라 갑니다(19절). 유대인 지도자들은 '자칭 유대인의 왕' 이라고 바꾸라고 하지만 빌라도는 자기 쓸 것을 썼다고 합니다(21-22절). 그런데 사도 요한은 기록하기를 이 패가 히브리어(아람어)와 로마(라틴어)와 헬라(그리이스)어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20절). 즉 예수님의 죽음은 어느 민족 차별없이, 이 온 세상을 위하여 돌아가신 메시아로, 만왕의 왕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이 팻말의 유대인의 영적인 의미는 믿는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님은 결국 골고다 언덕에 도착하셔서 십자가 형틀 위에 못박히십니다(18절). 십자가 처형제도는 야만인이나, 미개인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페르시아 제국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중범죄자의 죽음은 천천히, 고통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상상할 수도 없던 처형 모습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 역사학자인 Josephus 도 "가장 악한 죽음" 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주 심한 고통이 손과 팔, 발과 전신으로 퍼지면서 점점 예수님은 정신을 잃어 갑니다. 피를 많이 쏟아가시면서 점점 온 몸에 마비가 옵니다. 목이 말라 갑니다. 그 고통을 참으시며 아무 말씀하지 않으시던 예수님께서는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십니다. 첫 번째는 자기를 못박게 하였던 사람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과 형을 집행하면서 그저 예수님의 남은 옷을 취하여 나누어 가지려는 군병들을 생각하며(23-24절)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두 번째는 같이 처형당하는 행악자 가운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한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4:43) 고 하셨고, 셋째는 오늘 본문 26-27절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와 "네 어머니라"고 하셨고, 넷째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하셨고, 다섯째는 자기 자신의 고통을 "내가 목마르다"(요 19:28)고 표현하셨고, 여섯째로는 자신의 독백처럼 "다 이루었다"(요 19:30) 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다 완성되었음을 공포하셨고, 마지막으로 다시 아버지 하나님을 향하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마 23:46) 고 하셨습니다.
장장 6시간 동안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극심한 고통과 씨름하시다가 결국 운명하셨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하필이면 이런 저주스럽고 참혹한 십자가 죽음을 당하셔야 했을까요?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히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즉 많은 율법을 범하여 율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우리를, 아니 도저히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음을 아시고 그 저주로부터 건져내기 위하여 대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제 새벽에도 말씀드렸듯이 십자가의 형벌이 그렇게 처참하고 잔인할수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커다란 저주의, 진노의 대상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십자가 사건은 이 세상 구속 역사의 열쇠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에,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죄 사함을 위한 구속제물로, 유월절에 피를 흘리고 죽는 그 한 마리의 어린 양으로 죽으셨습니다. 아무리 인간들이 예수님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해서 희생양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사랑의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피흘림으로 인하여 모든 믿는 자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이미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고 하셨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어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 세상에 과연 누가 나를 대신해서 손과 발에 못이 찔리며 저주의 십자가 죽음을 당한다는 말입니까? 오직 죄 없으신 우리 주 예수님만이 그렇게 죽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십자가를 생각할 때 지옥이 있는 것을 믿게 됩니다. 지옥이 없다면 예수님이 그렇게 죽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지옥의 모든 고통을 다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의 저주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죄에 대한 승리와 기쁨을 가져다 주기 위하여 당하신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은 죄로 말미암은 모든 우울증과 귀신들림과 마음의 상처와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다 치료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았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2-3) 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외로우십니까?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고난과 고통의 삶의 연속입니까?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과 그 보혈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늘나라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와 찬양을 드리십시오.
자기가 죽어야 하는데 대신 예수님이 죽고 풀려나 살아난 바라바를 기억합니까? 누구 때문에 목숨을 건졌나요?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그 사람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만약 그가 주님의 은혜를 깨달아 변화를 받고 살았다면 그의 남은 삶이 기독교 역사 속에 한 줄이라도 기록되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십자가는 생각 속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십자가가 사로잡아야 할 것은 우리의 실제적인 삶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일도 필요하지만, 흐르는 눈물을 씻고 강인함으로 내게 주어진 고난과 시련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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