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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4-11 (토) 01:29
분 류 특별설교
ㆍ조회: 990    
예수님의 장례 (요 19:31-42)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여섯째 날
드디어 예수님께서 운명하셨습니다. 극치의 고통도 끝났고, 확실히 죽으셨습니다. 본문 31절 이하에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 지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도 구약성경에 예언된 말씀의 성취입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신 날이 금요일, 유대인들의 안식일 전날 즉, 유월절 예비일이었는데 그들은 유월절이 되기 전에 시신을 장사 지내야 유월절을 온전히 지킬 수 있었습니다(31절).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 양쪽에 있던 죄수들이었습니다. 군병들이 살펴보니 그 두 사람은 아직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를 꺾어 빨리 죽게 했습니다(31-32절).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33절). 이 사실도 출애굽기 12장 46절, 민수기 9장 12절, 그리고 시편 34:20절에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꺾지 못하게 한 예언의 말씀의 성취이며, 또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34절)는 말씀도 스가랴 선지자가 메시아를 찌를 자들이 그를 바라본다고 예언한 말씀의 성취입니다(슥 12:10).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님을 찌른 죄인이 예수님을 볼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예언의 말씀들이 성취된 것이라고 36-37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입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임을 또다시 증명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그냥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할 당시에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자와 같은 이단들이 믿는 자들을 많이 미혹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육체의 몸을 가진 것이 아니고 가상적인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고 가상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도 우리와 똑 같은 육체를 입고 있었으며, 피와 물을 쏟으시고 확실히 죽으셨었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35절)! 요한 자신이 증인이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숨을 거두신 후에 숨어있던 제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장례를 치릅니다(38절 이하). 이 두 사람은 그 동안 자신이 주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산헤드린 공의회원들로서 드러내고 주님을 따르다간 출회를 당할 것 같아 소극적으로 믿었지만(요 12:42), 막상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을 쳤지만, 이 두 사람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요청하여 허락을 받고,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고(38절), 비싼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서 아무도 장사하지 않은 새 무덤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39절)고 하였습니다. 백 근 정도면 약 32kg, 70lb 나 되는 엄청난 양의 향품을 가져온 것입니다. 아마 이 두 사람은 사전에 미리 협의하고 준비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시간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서둘러서 모든 것을 준비한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아리마대 요셉 때문에 예수님의 시신은 부자가 들어갈 새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이것도 또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600여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사 53:9)라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사람들을 두려워했지만, 실제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주님을 보고는 더 이상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는 믿음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나는 죽어도 좋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숨길 수 없다. 내 안의 믿음을 감출 수 만은 없다. 나는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님을 믿는다’라는, 순교를 각오한 믿음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의 의원들에게 발견되면 무슨 일이 그들에게 닥칠지 모르는 것이었지만, 참된 주님의 제자로서의 모습으로,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세워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는 언제나 앞장서서 일을 잘하는 제자가 중요한지 알지만, 때로는 숨어있는 소극적인 제자들이 자기 역할 할 때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늘 앞에 나서는 사람만 잘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과 잘 사귀지도 못하고, 앞에 나서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는 분들 가운데 막상 어려움이 생겼을 때에 용감하게 나서서 자기의 몫을 감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얼마든지 우리의 동역자일 수 있습니다.
또한 새 무덤이 중요한 이유는 유대인들의 무덤은 대부분 가족 무덤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시체를 안치합니다. 그래서 그런 무덤에서 예수님이 부활했다면 혼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 무덤에 예수님 시신 하나만 있었기에 혼동될 수가 없었습니다. 확실히 주님 시신이 부활한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어디에 계셨을까’하는 의문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도했다고 했으니까(벧전 3:19) 지옥에 가서 거기에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사실 바울도 시편 68:18과 사사기 5:12, 시편 63:9절 등을 인용하면서 “그가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함은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엡 4:8-9)라고 하였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지옥의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그 영혼들을 전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말에는 빠져있지만, 영어로 번역된 사도신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 지옥에 갔다가 부활했다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고난주간의 마지막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제 그렇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그 밤에 장사 지낸 바 되었습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 모든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죄의 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우선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각자에게 지워주신 십자가를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 가신 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 생명으로 이 세상에 살게 하시는 그 목적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남은 인생을 믿는 자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 제자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어떤 위험과 손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Charles Spurgeon 이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내 몸에 흐르는 피 중 단 한 방울이라도 주님을 위해 흘리기 싫은 피가 있다면 출혈시켜 주시고, 찢기기 싫은 살이 있다면 도려내어 주십시오.’ 만약 우리가 동일한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감격스러워하는 반응이 우리에게 없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반성하고 회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집에 갇혀 있는 시간이 신앙의 내공을 쌓는 시간으로 생각하시고 말씀 묵상과 기도로, 좋은 책을 읽으면서 훈련을 받으십시오. 준비를 잘 하십시오. 코로나바이러스가 끝나는 시간이 오면 다시 열심히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걸어가신 길을 따라, 아니 우리의 앞서간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걸어간 그 길을 가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하고, 그 목표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하는 동역자가 생깁니다.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도 목표가 분명했고, 그 목표를 위하여 애쓰고 살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동역자로 함께 그 목표에 동참했고 일을 감당했습니다. 뚜렷한 목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희생은 동역자를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동역자들과 함께 우리의 남은 인생을 한번 불태워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치 18세기 중반 남미의 오지에 파송된 선교사 가브리엘 예수회 신부의 True Story 를 1986년 영화로 만든 The Mission 을 보면서, 우리도 가브리엘처럼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며, 순수하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주위 사람들의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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