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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2-17 (금) 07:24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344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벧전 5:5-7)
이 세상 성공의 잣대는 돈, 명예, 권력, 쾌락 등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이름이 알려진 사람, 힘과 권세가 있는 사람, 자신의 쾌락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사람 등을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돈이 있고, 명예가 있고, 힘과 권세가 있고,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성공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을 실패한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맺고 있다 하더라도 좋은 관계가 아니면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성공한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공을 할 수 있을까요?

사도 베드로는 5장에 들어와서 교회의 영적지도자들에게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1-4절). 부득이하게, 억지로 양을 먹이고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원함으로, 의지적으로 목회하라고 하였습니다.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즐거운 뜻으로, 열정을 가지고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양들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온유하고 겸손히 섬기면서 인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양 무리들에게 권면합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5절)고 합니다. 여기 “젊은 자들아”는 영적으로 미성숙한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숙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위에 순복하며, 겸손한데 미성숙한 자들은 그렇지 못하기에 말씀합니다.
양 무리들은 우선, 교회 영적 지도자들에게 순복해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교회의 질서를 위해 권위를 주셨습니다. 마치 나라의 위정자들에게 권위를 주시고, 가정에서 남편에게 권위를 주셨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순복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에게 불만을 품지 말고 협력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 지도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을 방해하거나, 비판하며, 중상하는 권리를 양 무리에게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 마귀의 조종을 받으며 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맹종이 아닙니다. 잘못된 일을 요구하면 거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순복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이”라고 5절 서두에 말하였듯이, 영적지도자들처럼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합니다. “동이다”는 옷 입는다는 뜻입니다. 겸손이 성도들의 옷차림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당시 종이나 하인이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앞치마나 수건을 동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하루 전,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던 바로 그 날 저녁에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말입니다(요 13:4-17). 아마 베드로는 그 시간을 기억하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Charles Spurgeon 목사는 ‘겸손은 자기 자신을 올바로 평가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과소평가하며 자기 비하하는 태도가 겸손이 아닙니다. 또한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높이는 것도 당연히 겸손이 아닙니다. 자신을 올바로 평가하여 자신의 장점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신의 약점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도우심을 구하는 태도입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겸손은 뗄레야 뗄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5절 하반절에서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잠 3:34) 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겸손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거만한 자를 비웃으신다는 말씀을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기 중심적이며, 자존심이 강하여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 못합니다. 자기는 약점이, 잘못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자신이 그렇게 교만했던 적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릴 것이라고 하였을 때,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 막 14:27-31; 눅 22:31-34) 라고 하였고, 예수님이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세번 부인할 것이라고 하자 자신만만하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26:35) 라고 했던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늘 자기 자신만, 자신의 의견과 생각만 믿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관심과 영광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교만한 태도를 아주 싫어하십니다. 즉 베드로는 과거에 교만하여 실패했던 마음 아픈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잠언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그런 교만을 대적하며,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6절)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겸손히 주님을 따르며, 영적지도자들에게 순복할 때 우리는 주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 나라 백성을 위하여 주님의 능력이 임하며, 때로 고난을 허락하심으로 낮추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오기 전에 스스로 낮추는 자가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높이십니다. 우리의 남은 여생의 때에 높여 주시거나 혹은 주님 재림의 때에 말입니다. Wayne Grudem 은 ‘이 세상에서든 저 천국에서든 하나님이 가장 좋게 여기시는 때에 겸손한 자들을 미천한 상황에서 들어 올리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최선의 방법으로 높이실 것이다. 아마 더 큰 영적 축복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서, 혹은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는 상을, 영광의 이름으로 높이실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예를 생각해보십시오. 낮고 낮은 어린 목동의 시절에 그는 양들을 치며 비파와 수금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많은 시편을 지어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겸손히 순복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목동으로 선지자 사무엘의 눈에 띄게 되어 미천한 목동의 자리에서 결국 온 나라를 치는 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 아삽은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시 78:70-72)!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자들에게 순복하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것을 믿으며 살 때에 염려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7절)고 하였습니다. 교회를 섬기면서, 인생을 살면서 근심과 걱정이 전혀 없을 수 없기에 그럴 때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합니다. 여기 “맡겨 버리라(throw upon)”는 ‘누군가에게, 혹은 다른 무엇에게 던지다’라는 뜻입니다. 염려를 주님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의지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단 우리의 손을 떠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표현을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라고 하였습니다.
“염려(me,rimna, worry or anxiety)”라는 단어는 ‘나뉘거나 산만해지다’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주님에게 초점을 맞추려는 데서 우리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리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탄 마귀가 주는 생각으로 주님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다른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권고하신다고 합니다. 돌보신다는 뜻입니다. 여기 “권고하다(care for)”라는 동사는 현재 능동 직설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관심이, 사랑이 지속적이며, 불변함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는 적극적으로 겸손히 주님을 신뢰해야 하면서 그저 기도하면 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영적인 삶, 신앙생활을 성공하는 공식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로 순복 + 겸손 – 염려 입니다. 영적지도자들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순복하며 겸손히 섬기되 염려는 주님께 던져 버리면 됩니다.
누구에게 순복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고, 죄성으로 말미암아 자꾸 교만해지려는 것을 자제해야 하고, 던져 버려야 할 염려, 근심과 걱정을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신앙생활에서 성공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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