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33,439
오늘방문 : 6000
어제방문 : 10789
전체글등록 : 3,866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2-19 (일) 04:3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572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요일 3:4-9)
역사적으로 참된 성도는 성경이 가르쳐주는 대로 믿음의 기본적인 기준(standard)을 명백하게 갖고 있습니다. 정말 구원을 받은 믿음이라면 꼭 이런 표시는 있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입으로 믿는다고 고백을 해도 가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이것을 가지고 자신의 믿음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계속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지을 때가 있는데 무슨 말씀입니까? 헬라어 원어를 살펴보면 그 뜻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죄를 짓는다’, 혹은 ‘범죄한다’는 동사의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헬라어에서 현재형은 영어의 현재진행형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그 뜻은 계속 죄 가운데 거한다, ‘continue in sin’ 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참된 성도는 지속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계속해서 죄 가운데 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때때로 연약하여 죄를 범하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믿는 자들도 때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끊임없이 죄를 짓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도(way)가 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고 하였고,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1, 14)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기에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삶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죄, 마귀가 아니라 의,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 되었기에 계속해서 죄 가운데 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종으로 사는 사람들은 타락한 양심으로 성경이 말하는 죄를 지어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습니다. 죄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천국 소망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2:28-3:3).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이 소망이 확실하기에 의를 행하며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소망은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경험한 자의 것이며, 주님 재림하시면 영광의 주님의 몸과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본문에 이 소망을 가진 참된 성도,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론에 언급했듯이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고의적으로 죄 가운데서 행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들을 설명합니다. 첫째로,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4절)고 하였습니다. 즉 죄는 하나님의 법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 죄(sin)을 정의하는 헬라어 단어는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과녁을 miss 하다’의 a`marti,a 와 ‘의가 없다’는 뜻의 avdiki,a 입니다. 즉, 하나님의 법에 맞추지 못하는 것이 죄요, 불의가 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죄를 불법(lawlessness)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의 법을 지키지 않으려는 태도가 죄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선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습관적으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합니다. 말씀이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데살전 2:13).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9-10)라고 고백한 다윗처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도와 규례를 사모합니다.

믿는 자들이 죄 가운데 거하지 못하는 둘째 이유는, 죄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아무 소용이 없게, 무색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예수님)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5-6절)고 하였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하여 졌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는 그 큰 은혜를 깨닫기에 죄를 짓지 않게, 죄 가운데 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의 죄를 단번에 없애 주셔서, 믿기 전에는 죄 가운데 거하다가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의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 범죄한다면, 죄 가운데 거한다면 예수님을 보지도 못한 자며, 알지도 못한 자라는 것입니다. 진실로 믿어서 새로 태어난 자라면 그럴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바울도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고, 하나님의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서 의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죄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믿기 이전의 모습처럼 죄 가운데서 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자들 안에 죄성이 남아 있기에 조심하라고 합니다. 요한은 이어서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7-8절)고 합니다. 새 사람이 되었지만 사탄 마귀가 옛 삶으로 돌아가게 미혹할 수 있으니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 의를 행하는 자는 주님의 의로우심 같이 의롭다고 합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자는, 죄 가운데 거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라고 합니다. 마귀는 애초에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루시퍼를 말합니다(사 14:12-14; 겔 28:12-17). 그 이후로 마귀는 악한 영들로 사람들을 자기에게 속하게 합니다. 죄를 짓게 하고, 그 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마치 마피아의 돈을 받은 많은 공무원들이 감옥에 갔는데, 마피아들은 그들에게 뇌물을 주고 그것을 미끼 삼아 약점을 잡고 자기들 부하처럼 이용했습니다. 자기들 말을 듣지 않으면 협박을 하거나 테러를 가하는 것입니다. 일단 뇌물을 받은 사람은 마피아에 코를 꿰인 것이기 때문에 꼼짝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사탄 마귀는 이런 식으로 인간의 죄, 곧 약점을 물고 늘어지면서 정죄합니다. 뿐만 아니라 습관적으로 죄가 몸에 배이게 합니다. 모든 죄는 중독성이 있기에 일단 한번 죄를 지으면 그 때부터 마귀가 약간만 충동해도 무조건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죄의 노예가 됩니다. 코에 쇠사슬이 꿰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미혹하여 사람들로 구원받지 못하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셔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고(창 3:15), 지금도 멸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 2:14)라고 하였듯이, 그의 자녀들이 육신을 입고 있기에 예수님도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죽으심으로 마귀를 없이 하셨습니다. 마귀의 세력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죄의 쇠사슬을 끊어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머리를 치셨습니다. 마귀는 지금 꼬리만 남아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죄 가운데 거할 수 없는 셋째 이유는,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9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 났다는 말은 중생, 곧 새로 태어난 것을 말합니다. 한번은 사람이 어떻게 새로 태어나느냐고 니고데모가 질문을 했을 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5-7)고 하셨습니다.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성령의 역사로 우리 마음에 떨어진 것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고 하였고,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딛 3:5-6) 하였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믿기 전의 옛 삶을 청산하고 주님 안의 새 삶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씨”는 본질상 죄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연약하여 죄를 짓게 되면, 아 더 이상은 죄를 지으며, 죄 가운데 거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연약하여 실수로 죄를 짓더라도 금방 회개하며 돌이키게 되어 있습니다. 죄 지은 것을 두려워하며 겁을 내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돌이킵니다. 그 안에 성령님이 계셔서 깨우치기 때문입니다. 마치 상한 음식을 먹으면 토해 내야 속이 시원한 것처럼, 죄를 토하기 전에는 마음에 평강과 기쁨이 없습니다. 그래서 깨닫게 됩니다. 죄를 지으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죄가 오면 거부하고 싸우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것은, 우선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를 완전히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벌을 다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심령을 수술하셨습니다. 말씀의 씨와 성령으로 이식수술을 하셨습니다. 새것으로 다 바꾸셨습니다. 우리의 더러운 피를 예수님의 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겉모양만 옛날 모습이지, 속사람은 완전히 주님의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겉모양도 나중에 주님 재림하시면 주님의 몸으로 바뀌게 됩니다. 9절에 “하나님의 씨”라고 한 이유는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나중에는 놀랍게 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씨가 땅에 떨어지고 나서, 싹이 돋고, 가지가 나고, 잎이 생기고, 꽃이 피며 열매가 무성한 나무로 변하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면 나중에 너무 달라지듯이 말입니다. 씨가 생명력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이 세상에는 오직 두 부류의 사람들만 있습니다. 아직도 마귀에게 속하여 그의 종노릇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께로 나서 의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그런데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 어리석게도 종종 자기들처럼 마음껏 죄를 짓는 것이 좋다고, 자유롭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죄를 마음대로 짓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유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십시오. 정말 누가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 싶어도 마귀의 세력 앞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그들이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죄를 짓지 않을 자유가 정말 참된 자유가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로서 더 이상 죄 가운데 거하지 않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믿는 자들은 지속적으로 죄 가운데서 사는 자들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습관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이유는 1) 죄는 하나님의 법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2)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아무 소용이 없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의 씨, 곧 말씀과 성령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설령 육신의 연약함으로 실수하여 죄를 짓더라도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탄식함으로 죄를 회개합니다. 돌이킵니다. 죄를 싫어하고 싸웁니다. 아니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이 점점 주님을 닮아가게 합니다. 이 진리를 확실히 깨닫고 죄 가운데 거하지 않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21 수요설교 진리를 훼방하면 (벧후 2:1-11) 한태일 목사 2023-06-22 391
1320 주일설교  믿음있는 아버지의 리더십(잠 4:1-9) 관리자 2023-06-21 271
1319 주일설교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엡 4:25-32) 한태일 목사 2023-05-28 455
1318 주일설교 인생 고비마다 옷을 갈아입히시는 하나님(창 41:14 - 16) 관리자 2023-05-22 356
1317 주일설교 믿음있는 어머니의 간구(마 15:21 - 28) 관리자 2023-05-15 300
1316 주일설교 그 아들에 관한 하나님의 증거 (요일 5:6-12) 한태일 목사 2023-05-07 274
1315 주일설교 하나님께로서 난 자 (요한 1서 5:1-5) 관리자 2023-05-02 436
1314 주일설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2) (요일 4:13-21) 한태일 목사 2023-04-23 331
1313 절기설교 부활의 참된 의미 (눅 24:28-35) 한태일 목사 2023-04-09 396
1312 수요설교 고뇌에 가득찬 예수님의 기도 (마 26:36-46) 한태일 목사 2023-04-07 422
1311 주일설교 십자가 고난의 의미 (엡 2:11-18) 한태일 목사 2023-04-02 326
1310 주일설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1) (요일 4:7-12) 한태일 목사 2023-03-26 324
1309 수요설교 말씀의 확신 (벧후 1:12-21) 한태일 목사 2023-03-24 893
1308 주일설교 영을 분별하라 (요일 4:1-6) 한태일 목사 2023-03-19 506
1307 주일설교 신앙양심에 의한 거룩한 열망 (요일 3:19-24) 한태일 목사 2023-03-12 441
1306 주일설교 한과 흥의 정서와 주님의 사랑 (요 8:1-11)(2023.03.05) 관리자 2023-03-09 395
1234567891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