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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5-03-17 (목) 01:1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87    
[3/13/05] 성령의 충만함
성령의 충만함(사도행전 2:1-14)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인치심, 성령 세례를 받은 성도가 이 땅에서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며, 힘있는 생활을 하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자원은 성령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는 물리적인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신으로 된다고 하였습니다(슥 4:6).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성령 충만을 오해합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체험했던 첫 ‘성령의 충만함’(4절)은 과연 어떤 것이었으며, 오늘날도 변함없이 성도들의 심령 속에 역사하는 ‘성령의 충만함’이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이 택한 제자들을 불러 부활을 이 확실함을 보이시면서 40일 동안 친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시며 음식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늘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수님과 더 이상 교제를 나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승천하신 지 10일이 지난, 즉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오순절 절기를 맞았을 때에, 세례 요한이 이미 증거했고(눅 3:16), 주님께서 친히 이 땅에 계실 때에 말씀하신(눅 11:13;12:12; 행 1:4-5) 성령이 임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령 세례가 임하였는데, 충만하게 임하였습니다.
오순절은 맥추절, 혹은 칠칠절로도 불리우는 절기로 보리나 밀 추수를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는 날이었습니다. 바로 그날 초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1절). 지난 주일에도 보았듯이 마가의 다락방으로 여겨지는 곳에서 성령을 받기 위하여,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혼자 있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일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절대로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꾸 모여야 합니다. 그래야 능력을 받습니다.
그렇게 한 곳에 모여 있을 때 “홀현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4절) 하였습니다. 즉 이 날의 성령 강림은 우선 두 가지 사인(표징)이,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바람 같은 소리’나 ‘불 같은 혀들이 갈라지는 것’으로 비유된 것은 구약의 하나님께서 친히 현현하신, 역사하신 경우에 나타났던 사건들이었습니다(창 15:17; 출 3:2; 13:21-22; 19:16-19; 신 4:11-12, 33, 36 등). 말하자면 이런 사인은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심이 초자연적인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음과, 성령의 임하심을 성도들이 명백히 깨달을 수 있는 현상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 곳에 모인 제자들에게 참으로 성경 말씀에서 예언되어지고, 증거된 보혜사 성령이 실제로 임하게 됨을 보여준 증거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그 바람이나 불 자체가 성령이 아니었고, 그것은 지금 성령이 그들 가운데 임재하였음을 명백하게 알려주는 표징, 사인(sign)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진짜 성령은 오직 그들의 심령 속에 임한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 양자의 영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표징과 함께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충만함을 받았다고 하는 의미는 성령이 그들의 심령 속에 가득차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저 성령을 받은 정도가 아니고, 온전히 성령의 지배를 받고, 성령의 주장에 따르는 상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분명이 아셔야 할 것은 샤머니즘의 무당들처럼, 혹은 다른 종교에서의 신비한 체험처럼 입신이라던가 무슨 환각적 상태에 몰입한 것을 성령 충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불교에서처럼 내 심령이 도를 닦거나 큰 깨달음을 얻어서 발전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지극히 이성적이면서도 뜨거움을 느끼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심령 가운데 자리를 잡고 완전히 나를 주장하며 역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내 생각대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생각대로 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하신 것처럼, 마치 술에 취하면 술 기운에 의하여 생각지도 않던 행동을 하며, 말을 하고, 노래하듯이,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에 이끌려 평소에 가질 수 없었던 믿음의 용기도 생기고, 내 고집과 주장을 버리고,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 같이 말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하였습니다. 제가 제일 안타까운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어떤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이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진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면 은사를 사용하면서도 이런 예수님의 인격이 드러나야 하는데, 이런 열매는 보기가 어렵고 그저 교만한 모습으로 보여진다면 그것은 가짜가 아닌가 말입니다. 적어도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면 말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 그처럼 제자들의 심령이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을 때에 제일 처음으로 나타난 역사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한 것이었습니다(4절). 즉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셨으며, 그 때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바로 “다른 방언”(different languages)이었습니다. 즉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아니라, 분명히 의미가 통하는 언어, 다시 말해 여러 종류의 외국어(foreign language)였습니다. 그것은 5절 이하에 기록된 내용을 볼 때에 더욱 분명해 집니다.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주권을 잃었을 때에 그들의 이민 정책에 의하여 타국으로 쫓겨났었고, 그 후 바벨론의 포로 시대 등을 통하여 유대인들은 수백 년 전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래서 흩어져 있던 각 나라, 민족들의 이름이 9절부터 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디아스포라’ 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과 유대인의 전도를 받고 개종한 이방인들 즉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10절)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모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각 나라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제자들의 입을 통하여 각기 자기 나라의 방언으로 말하게 된 것을 듣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다 갈릴리 사람들이었고(7절), 그런 외국어를 알 수 없었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들 심령에 내재한 성령께서 그들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와 같은 각 나라의 방언을 말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옛날 바벨탑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세상 언어를 흩으셔서(창 11잘) 서로 통하지 않던 사람들의 말이 이제 알아듣게 된 것입니다. 인간들의 교만과 죄악으로 인한 언어들의 혼잡이 일시적으로나마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가 극적으로 역전되는 상황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새 술에 취하였다”(13절)라고 조롱한 것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나라 말이 아닌 외국어였기에 말입니다. 반면 그 말한 내용을 알아들은 사람들은 제자들이 각 방언으로 증거한 내용이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이었다고 분명히 증거하였습니다(11절). 즉 성령께서 각 방언으로 말하게 하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가 효과적으로 급속히 전 세계를 향하여 퍼져 나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각 국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마침 예루살렘에 모였을 때에, 성령께서는 사도들의 입을 통하여 동시통역의 역사를 하심으로써 단숨에 땅 끝까지 향하는 선교의 첫 테이프를 끊으셨던 것입니다. 예수 증인 사역의 세계화의 기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 날 사도들의 전도를 받았던 유대인들과 개종 유대인들은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서 초대교회들을 세웠던 것입니다. 사도들이 한번도 방문하지 못했던 로마 같은 곳에도 바울이 방문하기 전에 이미 교회가 세워져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오순절 날에 믿고 세례를 받았던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10절)들이 그 교회의 창립 멤버가 되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즉시 따라온 최초의 반응은 이처럼 능력있는 복음 전파로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역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들의 입에서는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소리가 담대하게 터져 나오게 됩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고, 언어에 변화가 오고 하나님의 일에 관하여 외치게 됩니다. 내가 틀림없이 체험한 사실에 근거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령이 되는 것이야말로 바로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증거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성령을 받으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신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와 선교 사역에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심령이 뜨거워지는 것이야말로 성령께서 내 심령을 충동시키시며 역사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때 성령의 지배를 받고 나아가는 자는 성령 충만을 받은 자입니다. 영혼의 열매를 거두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을 살게 하는 힘은 무엇입니까? 몸이 약해지고, 병이 들어도, 다른 여러가지 문제로 힘든 것이 있어도 살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 버는 재미입니까? 자식 키우는 재미입니까? 취미생활이 주는 재미입니까? 무엇이 여러분들을 오늘도 열심히 살게 합니까?
아니 예배를 드리게 하며, 찬송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근원이 무엇입니까? 진짜 성령을 받은 성도라면 내주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이 무슨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방 종교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극히 이성적으로 말씀을 깨달으면서, 심령이 뜨거워지고, 내 자신을 성령님께 복종시켜 온전히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내 삶을 주장하는 것이 내 자신이 아니라 성령님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은사와 함께 열매가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모습이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곧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먼저 전도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이렇게 한 곳에 모여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 힘으로 온갖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예루살렘에서부터 다른 민족에게까지 복음을 힘있게 전하게 된 것입니다. 순교를 당하더라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하나님 나라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니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아니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간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어야 합니다. 버릴 죄가 있으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심령을 새롭게 변화시키려 하는 역사에 순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성령께서 베푸시는 거룩한 능력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하게 매달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힘있는 일군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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