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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5-03-22 (화) 05:0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29    
[3/20/05] 십자가 고난의 의미
십자가 고난의 의미(엡 2:11-18)
    오늘은 세계 곳곳에서 종려주일(Palm Sunday)로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고 호산나 찬송을 부르던 주일입니다. 자신들을 육신적으로 해방시켜줄 왕으로 오해하고 기뻐했던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던 군중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삼년간 곁에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깨달았던 제자들에게까지 버림을 당하고 모욕과 멸시를 받으며, 해골이라 하는 골고다 골짜기에서 당시의 가장 처참한 죽음인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6시간 동안 못 박힌 손과 발에 몸체를 의지하고 피와 물을 다 쏟으신 후에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이 고난의 십자가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밑도 끝도 없는 피상적인 이해가 우리 신앙생활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게 함을 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사도 바울이 선택받은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저들의 과거 형편과 현재의 상태가 얼마나 대조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변화를 받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임을 말씀하십니다. 11-13절에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애초에 저들은 영적으로 이스라엘(유대인)의 축복에서 벗어나 있던 이방인이요, 사회적으로도 저들과 어울릴 수 없는 고립된 삶을 살았고, 그리스도가 없는 삶을 살았으며, 세상살이에서 전혀 소망이 없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도 모르던,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 옛 사람,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교회 밖에 있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고, 교회 안에서 새 사람이 된 모든 자들이 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경배하고 자랑하게 된 것입니다. 이유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가 화평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로 먼저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모든 사람들과 하나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14-16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분열과 미움, 싸움과 분쟁이 왜 생기는 줄 아십니까? 이 세상의 모든 시비와 불행, 슬픔과 고통이 왜 있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특성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들의 육적 교만 때문입니다. 시조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보여준 것처럼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고 싶은 마음, 이웃과의 다툼, 질투, 시기심이 모두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성경이 증명하고 있으며, 세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근본적인 문제를 바라본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9:23-24)고 고백하였습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어려움은 교만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것을 잘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인간은 출신 성분으로 교만이 시작됩니다. 무슨 혈통이나, 어떤 가문이냐, 국적이 어디냐, 어느 민족이냐, 흑인이냐 백인이냐를 자랑합니다. 전라도냐 경상도냐 충청도냐 서울 본토백이냐 이러한 것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장합니다. 당시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고 축복 받은 민족임을 자랑하여 교만에 빠졌던 것입니다. 주님 만나기 전의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 히브리인이 아닌 자들을 무시하며,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난 족보를 자랑하였습니다. 이 미국사회의 인종차별도 마찬가지요, 우리 한국의 지역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부적인 조건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면 하나도 자랑할 것이 없건만 말입니다.
    또 다른 분쟁의 요인은 그 교만으로 말미암은 욕심입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고 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가지려고 애씁니다. 서로 더 가지려고 애쓰는 욕망때문에 필연적으로 분쟁이, 미움이 싹트는 것입니다. 갈등이 생기는 것이지요. 높은 자리를 쟁취하려는 열망, 영웅이 되어 보려는 공명심, 유명해 지려는 야망 등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고용인과 고용주와의 관계에서나, 국가와 국가와의 관계에서나, 아니 심지어 한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나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욕심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교만은 계속해서 더 열심히 벌어라,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라, 일등을 하라 라고 우리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사실 첫 종려주일에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찬양했던 그들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왕으로 찬양한 것입니다. 이제 자신들을 자유케 하고, 원하는 것들을 주실 것을 기대하고, 한 자리 하게 될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식의 교만도 있습니다. 똑같은 일을 저지릅니다. 당시 헬라인들은 그들 스스로가 매우 지적이고 뛰어난 철학자들을 낸 민족임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며 너희가 아는게 무엇이 있느냐는 식으로 지혜를 자랑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헬라인과 야만인, 지혜로운 사람과 무식한 사람을 갈라 놓았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갈등과 억압과 싸움이 생겨났습니다. 거기에 경쟁이 있고 억압과 싸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요. 사회뿐 아니라 가정 속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한 자녀가 다른 아이들 보다 똑똑하게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똑똑한 자녀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그렇지 못한 자녀는 전문대학이나 가던지 아예 대학 진학조차도 못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열등감이 생기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깁니다. 반항심과 복수심이 싹틉니다. 빈정거리고 질투심이 일어납니다. 한편 똑똑한 아이는 교만에 더욱 빠져들어 갑니다. 가정이 분열됩니다. 깨져 버립니다.

이러한 인간의 교만이 가져오는 다툼, 분쟁을 해결할 만한 것이 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공부를 많이 해온 박사가, 돈이 많은 부자가, 권력자가 화해를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물질이 여러분의 가정에 평안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고귀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참된 평화가, 평안이 없습니다. 즉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교만의 해결책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뿐입니다. 십자가가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떠나서 이 세상의 모든 분쟁과 시기, 다툼, 고통을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가 어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합니까?

첫째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줍니다. 물론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숨기려고 합니다. 늘 문제가 생기면 남을 비난합니다. 책임을 회피합니다. 그러나 고난의 십자가는 여러분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가르쳐 주며 인간을 겸손하게 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고 하셨습니다. 즉 십자가는 우리에게 ‘네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네 자신은 언제나 실패자이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완전한 실패자,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기에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그 분의 가르침을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의지대로도 다른 사람을 기쁘게 못하는 자신이 어떻게 그 모든 교훈에 순종하며 살 수 있습니까?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다만 고난의 십자가지신 예수께서만 사람을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교만하였던 사도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그 순간 그는 철저히 낮아졌습니다. 이유는 주님이 참된 만왕의 왕, 절대주권자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분 앞에 얼마나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모든 교만하였던 생각들을 떨쳐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왕의 왕께서 나를 위하여 지신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곤고한 인간임을 자각하게 했습니다. 그를 겸손하게 했습니다.

둘째로, 고난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참된 것을 보여줍니다. 십자가는 어느 한 쪽을 편드는, 편애하는 법이 없습니다. 다 똑같이 취급합니다. 이유는 이 세상 누구나 다 완전한 실패자, 타락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먼저 낮아져야 합니다. 내가 낮아지지 않는 한 십자가는 전혀 쓸모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문제지, 나는 문제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헛된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나 자신의 교만을 꺾어야,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깨닫게 해줍니다. 어떤 민족이든지, 부자든지 가난한 자든지, 무식한 자든지 유식한 자든지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같은 영혼을 지닌 연약한 죄인임을 보여줍니다. 십자가 앞에서 다 동등한 사람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바 된 것을 깨닫게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으로서 다른 이방인들과 같이 실패하여 놓고는 무슨 자랑할 것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가지고서도 지키지도 않으면서 율법을 가진 것이 무슨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자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똑똑하여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 줄을 모르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마음에는 번민과 고통이 가득차 있고, 시기 질투와 미움으로 살아가면서 무슨 자랑할 것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을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빌 3:7-9) 고 고백한 바울처럼 여러분이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으시면 자신은 낙오자요 철저한 죄인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겸손하게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런 자리에 머물러 있게 내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우리 구세주를 바라보십시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요. 만왕의 왕께서 이렇게 타락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시고,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절망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그 분을 바라보면 소망이, 평안이 생깁니다. 오늘 본문 17-18절에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시고, 먼데 있던, 가까이 있던 다른 형제 자매들과도 하나를 이룰 수 있도록 해 주신다는 말씀이십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성도 여러분!
    다시금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맞으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메시아이시면서, 만왕의 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자기 편에 오해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 찬양하던 사람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질렀던 저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외쳤던 주님의 십자가! 그 고난의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 다 죄인이요, 실패자요, 소망이 없는 연약한,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임을 깨닫게 해주셔서 겸손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 십자가로 우리를 교만으로부터 건져 주십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자신을 복종시키신 주님께서 온전한 구원을 이루십니다. 예수님만이 이 세상에서 참된 평안을 얻게 합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를 주십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존재입니까?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복음의 광대함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의 깊이를 인식하며 그 고난을 배우며 동참하기를 원하십니까? 고난의 십자가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느끼고, 그 임재 앞에서 자신의 속됨을 깨달아 깊이 뉘우치게 하는 참회의 능력이 나타나게 합니다. 고난의 십자가의 의미를 진정 깨달은 사람은 겸손해 집니다. 그 고난의 십자가는 교만을 파괴하는, 자아를 죽이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사람은 미움도 질투도 사라지게 됩니다. 다투지를 않습니다. 하나로 연합하게 합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 받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됩니다. 세상 자랑, 세상 사랑에서 십자가 자랑, 십자가 사랑으로 변하게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러한 고난의 십자가 체험이, 고난의 십자가를 일대일로 만나는 인격적 경험이 계속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삶의 진정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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