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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5-05-17 (화) 02:0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16    
[5/15/05] 유쾌하게 되는 날
유쾌하게 되는 날 (사도행전 3:11-26)
우리는 살아가면서 유쾌하지 못한 날, 불쾌한 날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항상 유쾌한 날의 연속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그렇지 못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날이 오기 전에는 늘 유쾌한 날이 계속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를 불쾌하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죄로 인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육신에 아직 남아있는 죄성 때문입니다. 잠시 이 세상의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 마귀들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하여 그 죄성을 물리치고 살 수 있습니다.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보다는 유쾌하게 살 수 있습니다. 즐겁고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사도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 내용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 거지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베풀고 난 후에, 그가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성전에 들어가는 사건이 발생하자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여기저기서 솔로몬의 행각이라는 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11절). 아마 거기는 정말 그가 나았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확인하려고 오는 사람들, 베드로와 요한이 과연 사람인지 보고 싶은 호기심에서 온 사람들, 자기도 몸이 불편하여 혹시 나을 수 있는지 도움을 받기 위하여 온 사람, 그리고 어쩌면 그들을 시기 질투하며 못마땅하여 꼬투리를 잡아 쫓아버리려고 하는 사람들 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두 사도를 마치 신들(gods)이 사람으로 변하여 내려와서 기적을 행한 것 같이 쳐다보았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설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절하) 외칩니다. 두 사도는 그 기적을 스스로 자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을 주목하지 말라고 합니다. 주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 모습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선한 일을 한 뒤에 그 영광을 자기의 것으로 돌리는 죄를 범합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예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강성하여지자 그 마음이 교만하여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기가 가로채다가 결국 문둥병에 걸려 비참하게 인생을 마칩니다(대하 26:16-21). 또한 헤롯 왕도 사람들이 자기를 너무 추켜주니까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기가 취하다가 벌레가 몸을 먹어 며칠 만에 몸이 썩어서 죽었습니다(행 12:23). 교만은 사실에 대하여 눈을 멀게 하는 악한 것입니다.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교만은 열등감의 또 다른 표출로서 무식한 자의 자기 과시일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본받아 그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로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겸손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베드로는 첫번째 설교에서도 그러하였듯이 두번째 설교에서도 그저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합니다. 그 이름이 능력이 있어서 고침을 받은 것임을 강조합니다. 16절에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고 외칩니다. 즉 자신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온전히 믿었기에 그 이름을 의지하고 기도하여서 기적을 체험하였다는 말입니다. 어떤 이름이기에,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이러한 능력을 나타내신다는 말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13절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너무나 잘 아는 이사야서 52:13-53:12절에 있는 말씀을 의미하시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고난의 종으로 표현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이 성취되어,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철저하게 복종하셨습니다. 자신 스스로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섬기려고 하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마 20:28). 그리고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39상)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종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우리도 종으로 사셔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잘 섬기며,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을 잘 섬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지금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너무 잘 아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십자가의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였음을 강조합니다.

둘째는, 거룩하고 의로운 자라고 합니다. 14절에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하였습니다. 거룩하다는 뜻을 구별되었다는 말이며, 의롭다는 것은 어떤 죄도 모르는 무죄함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은 비록 우리의 죄 때문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세상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뜻을 위한 삶을 사셨으며, 비록 많은 유혹을 받았지만 죄를 모르는 분이었다는 말입니다(히 4:15). 예수님에 대한 이러한 표현도 이사야서에서 메시아를 가리키며 나타낸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제자라고 한다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구별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비록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적이어서는 안됩니다. 세속적이어서는 안됩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그럴 수도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살면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꾸짖을 것입니다. 양심에 거리낄 것입니다. 성도라는 말 자체가 거룩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그리고 의롭게 살려고 힘써야 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힘입어 죄와 싸워야 합니다.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거룩하고 의로운 주님을 의지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셋째는, 생명의 주라고 합니다. 15절에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하였습니다. 여기 생명의 주라는 말은 생명의 근원,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니라”(요일 5:20)고 증거한 것처럼 말입니다. 아니 예수님 스스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7)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베드로는 생명의 주이시니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고, 우리가 다시 사신 주님을 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이 생명의 주 이심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자들은 이미 영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런 메시아, 하나님의 종, 거룩하고 의로운 자, 생명의 주의 이름을 의지하고 기적을 베풀었는데, 이 예수님을 이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넘겨주고, 또 빌라도와 그 부인은 그가 무죄인 것을 깨닫고 놓아주려고 진짜 살인자인 바라바를 내세웠건만 그들이 바라바를 살려주고 주님을 죽였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그들은 얼마나 죄책감에 빠져 버렸겠습니까?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을 위로하기를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 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17-18절)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미 구약 성경에서 예언되어진 메시아에 관한 일로서 성취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들은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고 외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19절상)! 아니면 그 죄책감으로 인하여 평생 후회하는 삶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다 그런 경험을 하였습니다. 죄를 짓고는 마음이 불편하여 못 견디다가 그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여 돌이킨 후에는 그 안도감과 평안함을 누려보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회개하고 돌이키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19절하)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야 될 첫번째 이유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유쾌하게 되는 날의 문자적 해석은 주님 재림의 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날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땅에서도 누리는 평안, 죄로부터의 자유함으로 인한 유쾌함을 누리는 날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은 어쩔 수 없어서 지은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어두움 가운데서 생활하면서 신앙생활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없습니다. 늘 말씀 드리지만 참된 회개는 후회하는 것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돌이키는 것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돌아서야 합니다. 변화된 삶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 때에 주님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두번째 이유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반드시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20절에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였습니다.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치시는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임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대 앞에 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미 구약에서도 이 때를 이미 예언하였다고 신명기서 18잘 15,18-19절을 인용하여 본문 22-23절에 말씀하고 있으며, 24절에는 사무엘 선지자로 말미암아 다윗의 언약을 말씀하시며 그 후손으로 메시아가 오시고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심판을 준비하기 위하여서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세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서 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언약의 자손이 아니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누려야 할 자손들이 아니냐(25절) 하면서,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26절) 하였습니다. 즉 회개하고 죄악을 버려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여러분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오늘 사도 베드로의 두번째 설교에서 나타난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 고난의 종, 섬김의 종, 거룩하고 의로운 자요, 생명의 주이십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믿습니까? 성경에서는 예수를 믿는 자를 가리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합니다. 성도(聖徒, Saint)라고 부릅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입니다. ‘거룩한 자’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종, 고난의 종, 섬김의 종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세상사람들과는 구별된 거룩한, 의로운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이름만 신자인, 기독교인 티만 내는 생활은 곤란합니다. 회개하고 돌이키셔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변화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 앞에 진정으로 유쾌하고 즐거운 날,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축복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남은 생애가 죄악을 버리고 사심으로 말미암아 어두침침하고 불쾌한 날보다는 즐겁고 기쁜 날, 유쾌한 날들이 많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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