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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4:1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25    
[6/5/05]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사도행전 4:5-12)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종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을 향한 그런 마음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자리에 다른 우상을 놓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도 전도여행 중에 아덴(아테네)에 들렀을 때에 그곳의 사람들이 여러 신들을 섬기는 것을 보고,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행 17:22하) 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이 세상에는 신(神, god)도 많거니와 주(主)도 많습니다. 어느 민족이든지 종교를 갖고 자기들 나름대로 신을 섬깁니다. 우리 나라 민족을 비롯하여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해와 달을 섬기는 민족이 많습니다. 인도에는 신들이 얼마나 많은지 수만 수천 종류가 된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는 코끼리, 소, 코브라, 원숭이, 큰 쥐 등이 있는가 하면 이상한 벌레까지 자기들의 신이라고 하여 죽이지도 못합니다.
그런 무수한 신을 만들기도 하고, 피조물들을 신으로 여기고 하면서 인생의 고난과 갈등에 대한 위로와 해결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 안에서 마음의 평안과 많은 재물의 축복, 건강의 축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신들이 참 신입니까? 그리고 뭇 사람들이 말하듯이 어느 종교나 다 마찬가지 입니까? 아무 신이나 정성다해 믿으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까? 특히 죄 문제가, 죄의식이 해결됩니까? 오늘 본문을 비롯하여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도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부활을 전한다고 하여 제사장들, 성전 맡은 자, 사두개인들이 싫어하여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행 4:1-3). 그 이튿날에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예하여 공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5-6절). 그리고는 일전에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쳐준 일에 대하여 심문합니다. 7절에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였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여 그 당시 내로라 하는 권세있고 당당한 종교인들 앞에서 담대하게 답변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잠간 배우고 지나갈 것은 역시 성령 충만의 증거는 복음을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예수님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지혜나 지식, 과거의 경험 등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힘과 용기로 그들을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 성령의 충만, 성령의 인도하심,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힘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고, 주를 섬기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성령 충만의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9-10절) 하였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그 이름으로 병자를 구원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불구자를 고쳤다고 하면서, 바로 너희들도 잘 아는 나사렛 예수로서 목수의 아들로서 태어났지만, 성령으로 태어났기에 죄 없이 살았고, 약한 자와 병든 자를 고치시며 선한 일을 하셨지만, 너희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상 유래 없는 엉터리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셔서 구원의 주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버린 바가 되어 마치 건축자가 집을 짓다가 쓸모 없는 것으로 여겨 버린 돌처럼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집 모퉁이 머릿돌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11절). 즉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집의 기둥이 되는 돌이 받쳐 주지를 않으니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우리의 가정과 교회, 사회나 나라까지 제대로 설 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머릿돌과 같으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서 참된 삶이 시작되고,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찾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하나님께서)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12절)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신으로도 하나님께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 즉 ‘어떤 종교를 통해서든 하나님께 가기는 마찬가지이니 다 똑같다’ 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확실하게 틀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이 그 길이요, 그 생명이요, 그 진리라는 것입니다(요 14:7). 죄인이 의인이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죄로 타락한 인생을, 그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밖에는 없다는 말입니다(롬 6:23).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많은 세상 사람들이 다른 방법으로, 다른 이름을 의지하고 구원에 이르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선행으로 말입니다. 착하게 살면 구원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얼마나 착하게 살아야 합니까? 사실 인간이 죄인이기에 늘 착하게 살 능력이 없습니다. 종종 잘못을 범하기도 하며, 착한 일을 못할 때도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면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살아야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도덕적인 삶이 되겠습니까? 또 겉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 같지만, 속은 그렇지 못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속 사람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욕심을 넘어서는 것이 쉽습니까? 아무도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 욕심을 완전히 절제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만든 종교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원시 종교는 자연의 위력 앞에, 천재지변 앞에 무서워하고,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두려워한 나머지 피조물을 신으로 삼고 그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위로를 받기 위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세상에 사람이 만든 종교는 무수합니다. 하늘을 믿는 것을 비롯하여 해와 달, 땅과 바다를 믿으며, 나무와 풀, 바위와 산, 짐승들과 모든 생물, 어떤 사람까지 신으로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신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가운데 여러분들이 잘 아는 유교는 아무리 공부해 보아도 죽음에 관하여는 대답이 없습니다. 불교는 윤회사상과 업보사상으로 운명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지게 할 뿐입니다. 도를 닦으며 공을 엄청나게 쌓아야 합니다. 이슬람교도 의식적인 기도생활, 금욕적인 금식, 고행적인 순례, 알라의 이름으로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는 전쟁에 임하여야 구원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힌두교에서는 살아있는 사람 중에 ‘구루’라고 하는 사람들을 신으로 섬기며, 사람들은 그들의 지나간 자리에 입맞춤을 하면서 축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는 다 사람들이 만들었기에 사람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이런 것을 몽땅 다 믿는다 하여도, 아니 이 외에 사이비 종교나 이단을 다 믿는다 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공을 아무리 쌓아도 구원에 이르지를 못합니다. 이런 종교를 시작한 교주와 창시자들도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다 죽고 말았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글귀하나 발견할 수 없습니다. 죽었다가 살았다는 신이나 교주는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십자가의 예수님,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신자들 사이에서도 구원에 대하여, 기독교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치 다른 종교나 이단들과 똑같이 생각하면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죄 사함을 입고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율법을, 말씀을 지켜야 죄 사함을 입고 구원에 이른다고 믿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잘못 알고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 율법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도 그것을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롬 4:3)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하였는데, 그 이유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기”(약 2:10)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해서, 말씀대로 살아서, 주를 위하여 일을 많이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 스스로 불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나의 죄 때문임을 믿고, 부활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저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지키지 않아도 되네요? 그렇습니까? 아니지요. 정말 구원 받은 사람은 그 은혜를 알기에 말씀을 지키려고 애를 쓰지요. 말씀을 지켜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기에 말씀을 지키며, 주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약 2:17). 말씀을 지키는 모습이 구원 받은 사람의 열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어떤 이들은 보수적이고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우리를 가리켜 너무 배타적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우리들이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하여 독선이다 하며 욕하는 사람들과 기독교의 탈을 쓴 자유주의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오늘 본문에서처럼 부활의 증인들인 사도들이 그렇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 얻을 수 없다’ ‘다른 이름으로는 죄 사함의 권세가 없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 천하에 다른 구원 얻을만한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 라는 것입니다. 다 똑 같은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천주교에서도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아니라도, 그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으로도, 열두 사도의 이름으로도, 교황의 권세로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죄 사함의 구원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얼마나 비성경적인 가르침입니까? 정말 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도 성전 미문에서 고침을 받았던 앉은뱅이처럼 하나님의 눈에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었기에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고침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죄 사함을 받을 줄 믿습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불러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줄 믿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예수 그리스도)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하였습니다.
만약 혹시 오늘 여기 앉으신 분들 가운데서 아직도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시고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사흘 만에 살아나신 구세주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제부터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사십시오. 지금도 문 밖에 서서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가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저 진실로 마음에 모셔 들이십시오. 그 순간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영생하는 것입니다. 지금 죽어도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아 멘!
아니 이미 그 이름을 믿고 사시는 여러분들! 늘 그 이름을 사랑하며, 의지하고 사십시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돌보심을 받고 사는 은혜까지 입었느니, 주를 위하여 말씀을 순종하며 삽시다. 주의 일을 감당하십시다. 그리고 이 놀라운 이름을 이웃에게 전합니다. 다른 민족과 나라에 전합시다. 죽는 날까지 그 이름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사십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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