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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4:3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760    
[10/2/05]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사도행전 6:8-15)
관심법(觀心法)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지 몰라도, 인생을 조금만 산 사람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하여, 그 속내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얼굴이 우리 마음의 창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마음의 즐거움이 얼굴을 빛나게 한다고 합니다(잠 15:13). 즉 얼굴 표정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딘가 고통과 아픔이 있을 것이며, 환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뻣뻣한 얼굴은 대개 무엇 때문인지 긴장하고 있거나, 불만이 있거나, 교만을 품고 있는 것을 말해주고, 붉으락 푸르락 하는 얼굴은 분노로 가득차서 참기 어려운 원망이나 시기, 질투가 있을 때 나타납니다.
사실 우리 얼굴은 하루에서 몇 번씩 변하는데, 대체로 여러분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사십니까? 좋은 일,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 얼굴이 싱글벙글하는 것이야 당연한데, 좋지 않은 일,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환하고 빛을 내며, 평안이 쓰여지는 표정을 하고 사십니까? 억지로 말고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말입니다. 외부로부터 핍박이 있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긴장이 감도는 시간에도 우리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입니까? 그래야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소금이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그런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유명한 스데반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면서 사도들을 도와 교회의 식탁봉사와 구제 등 궂은 일을 감당했던 일곱 안수집사(혹은 장로)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행 6:5). 어떻게 해서 이 사람은 어려운 순간에도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을까요(15절)?
첫째로, 그는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5절). 7장에서 산헤드린 공회원들 앞에서 한 설교를 보면 그는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를 주장하시며, 매순간 자신의 삶을 주권적으로 다스리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메시아임을 믿었습니다. 부활하셔서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믿었습니다. 자신이 죽더라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으며, 주님을 만나볼 것을 믿었습니다. 영생을 믿었습니다. 성령님을 믿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5절). 믿음이 충만한 것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라면, 성령이 충만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자신을 정결케 하며, 능력을 가져다 주는 성령님의 음성에 순복하였습니다. 셋째로, 그는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8절).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성령님께 순종하였기에 그에게 놀라운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엄청난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심지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그 은혜가 주위에 넘쳐 흘렀습니다. 두려움이나 미움이 그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믿고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까지도 용서하고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자신을 돌로 치는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입니다. 넷째로, 그는 권능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8절). 성령이 충만한 결과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 1:8상) 하신 말씀처럼, 그는 사도도 아닌데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고 합니다. 영적인 능력으로 사탄 마귀들을 물리쳤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이런 기적을 베푼 사람은 사도들과 빌립(행 8:6-7), 바나바(행 15:12) 외에는 스데반 밖에 없습니다.
종합하여 말씀드리면 스데반은 하나님을 향하여는 믿음이 충만하였고, 성령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며, 큰 영적인 권능을 나타낸 사람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그에게 큰 은혜가 임하여 그 은혜와 능력이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스데반에게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였습니다.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 새”(9절) 하였습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인데, 첫째 변론자들 가운데는 우리 말에는 ‘리버디노’라고 번역된 말은 자유당원(Freedmen)을 말하는데, 구레네와 알렉산드리아의 자유당이라고 불리우는 회당에서 온 어떤 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서남지역에서 온 자들로 자유당원이라는 표현은 이들의 성경해석이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변론자들 가운데는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북지역에서 온 자들인데 아마도 앞에 언급한 사람들보다 좀 보수적인 인물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스데반을 공격하였습니다. 두 부류 서로는 성경 해석도 다르고 논쟁도 있었지만, 스데반을 공격할 때에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변론의 내용은 11절과 13-14절을 살펴보면 성전과 모세의 율법에 관하여 논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였기에 하나님을 크게 모독하였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누명을 쓴 것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아마도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율법 가지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라는 주장과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성전이 되심을 선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짓 증인을 세워서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13-14절)고 고소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했지만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 내용을 보아도, 절대로 스데반이 그렇게 성전과 율법을 모독할 사람이 아닙니다. 성전도 인정하고, 율법도 인정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이 죽은 다음에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을 예언하신 그대로 살아난 것처럼, 이제 정말 메시아가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니 그를 믿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을 지혜롭고 논리정연하게 변론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10절) 거짓증인을 세워서 강제로 붙잡아 놓고 산헤드린 공회의 앞에 재판을 받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거센 모함과 공작 앞에서도 스데반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 공회원들도 모두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15절하)고 하였습니다. 그저 보통 사람 같으면 말도 안되는 고소에 대하여 흥분하면서 변명하고 할텐데,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고 오히려 평온하고 고요하되 담대히 빛나는 얼굴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성경이 표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래 우리의 얼굴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의 범죄 이후에 땀을 흘리면서 고생하고 무거운 짐에 눌려 찌그러질 수 밖에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죄 때문에 아름다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수 밖에 없었던 인생이었습니다. 환경이 어려우면 어두운 얼굴이 되고, 좋아지면 잠시 밝아지는 얼굴이었다가 또다시 어두운 구름이 끼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얼굴인데, 어떻게 천사와 같이 빛나는 얼굴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렸듯이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믿음과 성령과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빛을 반사한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런 얼굴 모습은 또 한 군데 있습니다. 구약의 모세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을 금식하고 하나님을 대면하고 십계명을 받고 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 광체가 났다고 하였습니다(출 34:29). 자신은 몰랐지만 백성들은 그를 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그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 놀라운 빛을 반사하여 사람들에게 비췬 것입니다.
주님이 빛이시오, 모세나 스데반은 그 빛을 반사하는 거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 1:9)라고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한번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는데, 그들 앞에서 갑자기 모습이 변하여 그 얼굴이 빛나는 해와 같이 되셨습니다(마 17:2). 그래서 그 산을 변화산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참 빛이심을 증명해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빛을 받아 반사하는 거울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반사하며 삽니까? 우리를 통하여 어떤 것들이 보여지고 있습니까?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그나마 양심이 살아있기에 범죄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어둡습니다. 부정직한 얼굴에 밝은 빛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의 얼굴도 결코 환하게 빛나지 않습니다. 세상 걱정과 근심에 가득한 사람의 얼굴은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나, 소망이 없는 사람은 빛나는 천사의 얼굴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얼굴은 어떤 모습입니까? 종종 거울을 쳐다보십시오. 거짓 증인들을 앞세우고 자기를 죽이려는 상황에서도 스데반의 얼굴은 뜻밖에도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어떻게 그 무서운 핍박과 위협, 죽음의 문턱에서도 그렇게 담대하고 평온하며 얼굴이 환할 수 있습니까?
생명의 근원이신,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할 때 그렇게 우리의 얼굴도 빛날 수 있습니다. 믿음과 성령과 은혜가 충만할 때 죽음도 두려움이 없기에, 아니 죽음 너머에 있는 더 아름다운 천국 소망이 확실하기에 그렇게 우리의 얼굴도 빛날 수 있습니다. 병들지 않고 고통이 없으며, 눈물과 상처와 아픔이 없는 아름다움 아버지 집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기에 우리의 얼굴이 빛나게 됩니다. 세상이 결코 빼앗을 수 없는 평안이 있기에, 주님이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기에 우리의 얼굴이 빛나게 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언제나 우리를 안위하는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의 얼굴이 빛나게 됩니다.
스데반이 특별한 사람이었기에 그에게만 있어지는 영광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들은 스데반보다 더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 66권을 다 소유하고 있어서 더 많은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로 잠시 얼굴이 어두움이 스쳐 지나가기는 하여도 금방 천사의 얼굴처럼 밝은 빛을 낼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누구의 얼굴을 닮았습니까? 자식이 부모의 얼굴을 닮듯이, 스데반이 예수님의 얼굴을 닮아 빛을 내었듯이, 영적 자녀들인 우리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닮게 됩니다. 빛을 발하게 됩니다.
누가 우리의 생각과 생활을 사로잡아 주장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를 가장 깊이 사모하며 그리워 합니까? 우리의 마음을 가득채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 예수님 사랑입니까?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까?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사랑의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가득채우며, 늘 사모하며 눈과 눈을 대고 만날 그 날, 화려하고 아름다운 천국을 소망합시다. 그렇게 사시면 우리의 얼굴이 늘 천사의 얼굴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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