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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12-12 (화) 01:4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753    
[12/10/06] 섬기며 사는 삶3
섬기며 사는 삶 III (신명기 15:12-17)
저는 계속해서 ‘섬기는 사는 삶’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두 주일 전에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섬기며 살아야 하는데(빌 2:5), 성경은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는 주님을 섬기다가 고난도 받게 하기 위함이었음을 말하고 있음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빌 1:29). 그리고 지난 주일에는 우리가 섬기며 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은혜이며(레 5:7-10), 그 은혜에 뒤따라 오는 것이 자신의 몸으로 섬기는 헌신임을 말씀드렸고, 섬김의 결과는 섬기는 자의 영적 성장, 성숙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길 수 있다는 자체가 특권이며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섬김의 자세 혹은 태도에 대하여 본문이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지금은 찾아보기 드물지만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종(servant or slave)’이란 남의 집에 몸이 팔려 그 집에서 온갖 일을 해주던 사람을 말합니다. 팔려버린 집 주인에 얽매어 그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아주 비천하고 자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우리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할 때에는 내 자신이 좋던, 싫던 관계없이 주님께서 시키는 일을 충성스럽게 해야 하는 존재를 말합니다. 즉, 스스로 하나님의 종, 혹은 주님의 종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뜻을 완전히 꺾은 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야 할 존재로 스스로 여긴다는 말입니다. 사실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 Lord)라고 고백한다면 여러분은 종이라는 말이 아닙니까? 사실 성경에는 신자를 하나님의 종,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행 16:17, 딛 1:1, 약 1:1, 벧전 2:16 등). 또 동일한 단어의 신약 성경 다른 번역에는 일군, 사역자, 집사 등으로도 불렀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주님의 종으로서의 이 본연의 마음을 잊어버린 채, 자신의 뜻대로 섬기며 살고 있습니까? 내 마음대로 섬기고 있습니까? 내가 싫으면 섬기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종(노예)’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노예의 부류에 속하는 히브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당시 이스라엘 사회 속에 노예제도가 정식으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옛날 많은 나라들과는 달리 특수하게도 이스라엘 사회는 노예라고 하는 신분만 있을 뿐, 노예제도는 없었습니다. 노예라는 신분이 영원히 벗을 수 없는, 영원히 세습이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가 이방 나라들처럼 노예제도라는 것을 통해 계급사회가 되고, 그것을 토대로 노동력을 가지고 소수의 사람들이 잘 살며 나라가 부강해 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빚을 많이 져서 종, 노예가 된다 하더라도, 노예 신분이 영원히 지속되며 세습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바로 ‘안식년’ 혹은 ‘희년’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였습니다. 7년째의 안식년과 49년째의 희년은 노예들에게 해방이 되는, 자유인이 되는 해였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하나님 신앙이 떨어지고,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지 않는 주인들은 하나님의 다른 명령들도 지키지 않듯이 안식년이 되어도 종들을 놓아주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이 규례는 잘 지켜졌고 그 결과 이스라엘 사회에는 노예는 있어도 노예제도는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성경 본문 12-14절은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육년을 너를 섬겼거든 제 칠년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것이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공수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그에게 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안식년인, 제 칠년을 맞이할 때에는 종을 내보내 주는데 단순히 신분만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독립해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보상까지 해 주어 내 보내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사실 그 종이 빚을 갚기 위해 그 동안 일했기 때문에 주인이 그렇게 보상해 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을 자유롭게 하면서 충분한 보상까지 해 주라는 명령에서 인자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향해서도 충성과 헌신을 다하여 섬겨준 종에게 충분한 보상을 베풀도록 명령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자기 좋을 대로의 삶을 포기한 채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고, 자기 자신보다는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섬기며 산 사람들에게 얼마나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종으로 살며 한 인간을 충실하게 섬길 때에도 풍성한 보상을 약속해 주셨거늘, 하물며 구속의 은혜를 힘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종처럼 섬기며 살아갈 때에 얼마나 더 후히 갚아주시겠습니까? 그 상이, 축복이 금생과 내세에 클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매우 특별한 종을 만납니다. 그는 그 집에서 노예로 산 지도 6년이 지났습니다. 7년째, 안식년이 이르자 주인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를 불러 이릅니다. ‘자 이제 노예의 때가 끝났으니 이 재물들을 가지고 떠나라’고 말했습니다. 자유를 주고 독립할 수 있는 재산까지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종은 전혀 뜻 밖의 말을 합니다. “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16절, 출 21:5)! 즉, 이 종은 눈물을 흘리며 그 집을 떠나지 말게 해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주인과 주인의 집을 사랑하기 때문에 비록 율법에 의하여 자유가 주어졌지만, 본인은 다시 종이 되겠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종들은 들뜬 마음으로 내일이면 자유를 찾게 되고 내 개인의 삶을 영위하며 행복하겠지 라고 생각하던 밤, 이 종은 누워서 걱정을 합니다. ‘내일이면 떠나야 하는구나. 이제는 내 집에서 내 가족들과 함께 내 밭을 일구며 살 수 있겠지. 하지만 이렇게 인자하고 자비로운 주인의 집을 떠나는 것이 너무 싫다.’ 밤새 고민하던 종은 결국 결심합니다. ‘그래 비록 율법이 나에게 자유케 되도록 명하였으나 나는 그 자유를 버리겠다. 그리고 평생 이 사랑하는 나의 주인의 곁에서, 사랑하는 이 집에서 그 분의 종으로 살리라.’ 그래서 다음 날 다른 종들은 떠나가는 데, 이 종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주인 앞에 무릎을 꿇으며 울며 간청합니다. ‘주인님, 제가 이 곳을 떠나 어디에서 주인 같은 은혜로운 분을 만나 사랑을 받고 살 수 있겠습니까? 주인님이 없는 곳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보다, 주인님 곁에서 구속을 받으며 사는 것이 오히려 제게는 행복입니다. 제가 비록 종이었으나, 이 집에 들어온 날부터 지금까지 주인님께서는 한번도 저를 노예로 취급하지 않으시고,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저와 함께 나누시면서 자식처럼 대해 주셨습니다. 주인님, 평생 당신 곁에 머물게 해 주셔서 사랑하는 주인님과 이 집을 섬기게 해 주십시오. 저를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주인도 눈물을 흘리면서 이 종을 끌어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를 받아들인다는 표시로 그 종의 귀를 기둥에 대고 송곳으로 뚫습니다(17절, 출 21:6). 이것은 영원히 그 집의 종이 되는 율법의 규례로, 종은 이것을 볼 때마다 자신은 자유인이었으나 스스로 종 되기를 자청하였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자유로운 신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종이 되기를 자청한 것은 자신의 인생의 행복이 노예 신분에서 해방이 되면서 받는 몇 푼의 물질이 아니고, 사랑하는 주인과의 사이에서 함께 누렸던 사랑의 관계에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는 신분은 종이지만, 사실상 그 주인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바로 복음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공로로 어두움의 자녀에서 한 순간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죄의 올무를 벗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는 간청드렸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주께서 우리를 자유하라 하시나 주님이 없는 곳에는 진정한 자유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이 되어 주님 곁에 머물고 싶사오니, 주여 받아 주시옵소서. 주님만 있으면 우리는 행복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그 증거로 귀를 뚫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난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까?
따라서 일평생 사랑하는 주님과 주님의 집을 섬기는 즐거움으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 같이 더러운 죄를 좋아하는 바퀴벌레 같은 인생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를 육체의 정과 소욕을 따라 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쇠하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생은 나름대로 무엇인가 얻어 보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뒷전으로 미룬 채 분주하게 자기 욕심을 채우는 일에 몰두하는 인생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런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주인의 마음을 상상해 보십시오. 귀 뚫은 종을 볼 때, 주인의 마음이 어떨까요? 그 어떤 불평이나 자랑도 없이, 그저 어떻게 하면 주인을 더 잘 섬길 수 있을까 궁리하며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종을 보며 주인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종을 자신의 친구로, 가족으로 여길 것입니다. 더 이상 종이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님께서 우리를 자녀 혹은 양자를 삼으셨다고도 하고, 친구라고 부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얼마든지 주님에게나 주님의 몸된 교회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산다고 하여 지옥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깊은 사랑을 느낀 분이라면, 그 주님과 교회를 섬기며 가족같이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한 것을 알기에 스스로 종의 자리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을 깊이 의식하고 스스로 섬기기 원하는 종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 마음에 맞게 섬기고자 애를 쓰게 됩니다. 비록 섬기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도 오히려 자신의 인격에 놀라운 변화를 경험합니다. 죄성이 깨어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런데 스스로 자원하는 종의 자세로 섬기지 않는 사람의 경우, 그런 은혜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깨어짐의 은혜를 맛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내어놓고 그 말씀이 자신의 곪은 부분을 수술할 때에 아픔이 있더라도 고침을 받고, 주님의 마음에 합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갈망이, 주님의 뜻을 따르고자 함이 그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자유케 되었습니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죄의 권세가 우리를 누르지 못합니다. 정말 여러분 마음대로 사셔도 됩니다.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셨다고 우리의 발목을 잡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본문의 종처럼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다른 종들은 다른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은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 계획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사실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삶임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자신의 계획을 우리에게 알게 하십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인해, 그의 몸된 교회를 사랑함으로 인해 일평생을 종처럼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실까요? 스스로 자원하여 종이 되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사랑 속에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실제로 종이니 정말 종처럼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만 드러나게 하며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진실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 크신 사랑과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의 단 하나의 소망은 좋으신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처럼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인과 그 집을 사랑하기에 주인을 위하여 그렇게 스스로 종처럼 섬기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 안에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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