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2,458,304
오늘방문 : 16
어제방문 : 65
전체글등록 : 3,067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2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3-07 (수) 01:5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34    
[3/4/07] 복음은 . . .
복음은 . . . (사도행전 13:13-41)
우리가 전해 듣고 믿게 된 복음은, 아니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무슨 뜬 구름 잡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뿌리가 깊은 내용이며, 세계 역사 가운데 사실(fact)에 근거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필요한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말씀하신 것처럼 참으로 진리(truth)이십니다(요 14:6).

최초의 선교팀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마가 요한은 제 1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면서 안디옥을 떠나 실루기아라는 항구도시에서 배를 타고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 섬으로 들어가서, 그 섬의 수도인 살라미와 바보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13:4-12). 복음의 첫 열매로 기록된 그 섬의 총독 서기오 바울이 악령에 사로잡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애쓰는 박수 무당이 사도 바울에 의하여 꾸짖음을 받고 눈이 멀게 되는 것을 보며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 구브로에서의 사역을 마친 선교팀은 바보에서 다시 배를 타고 갈라디아 지방으로 가기로 하여 밤빌리아 지방 버가를 거쳐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14절). 그런데 마가 요한이 밤빌리아에서 선교 여행을 중단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지난 번 설교 때에도 말씀드렸듯이 마치 단기선교팀의 일원처럼 잠시 함께 선교를 하다가 마가가 도중하차 하자 바울은 그에게 상당히 실망을 하고, 나중에 제 2차 전도여행에는 그를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바나바와 헤어지게 됩니다.
훌륭한 믿음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아들이었으며(행 12:12), 바나바의 생질이기도 했던(골 4:10) 마가가 왜 도중하차 했을까?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신학자들이 추측해서 말하기를 향수병 때문이 아니냐, 혹은 선교팀의 리더가 바나바에서 바울로 넘어갔기 때문이 아니냐, 아니면 밤빌리아에서 선교를 하지 않고 고산지대이며 산적들이 많은 험악한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갔기 때문이 아닐까, 등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중도하차 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는 바울과 바나바처럼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헌신한 사명자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에 의해, 삼촌의 열정적인 봉사와 섬김의 모습을 보면서 따라갔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어려움이 다가왔을 때 그만 포기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그런 분들이 있지요. 사명의식이 없는 채로 얼떨결에 일을 맡게 되어 하다가 무슨 어려움이 있으면 그만 두시는 분들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마가가 후에 이 때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 확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새로운 일군이 되어 사도 바울도 인정하는 인물로 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임종을 앞두고 디모데가 보고 싶어서 그에게 편지를 보낼 때에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도 마가와 같이 과거에 한번 실패의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를 받아 확실한 믿음의 사람, 사명 의식, 목적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되어 주님의 나라에 유익하여 하나님께 인정 받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하여 먼저 회당에 들어가 함께 예배를 드리다가, 성령께서 역사하여 회당장을 통하여 바울이 말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15절). 그 때 바울이 거기 모인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설교를 합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그 주제는 23절에 밝히고 있듯이 물론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다윗)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23절)!
사도행전 7장에 기록된,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 외친 스데반의 설교와 내용이 비슷합니다. 설교의 서론(17-23절)에서 그가 외치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밑도 끝도 없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뿌리가 있으신 분이라는 그 역사를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족장시대로부터 시작합니다(17절). 그리고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한 사건과 광야 시대를 거쳐,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된 일, 그리고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일, 그 다윗의 후손에서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역사를 말하는 바울의 초점은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17절, 21절, 23절, 30절, 33절, 34절). 하나님께서 택하셨고,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셨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 인도해 내셨고,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참으셨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셔서 기업으로 주셨고,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리셨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셨고,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체,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22절에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신 것처럼,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섭리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세계 역사 중심축에 실재하시는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BC 와 AD로 역사를 갈라놓으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아브라함을 보내셨고, 야곱을 보내셨고, 모세를 보내셨고, 여호수아를 보냈으며, 다윗을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이 다윗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그 바로 이전에 세례 요한을 보내셔서 그 길을 준비시키셨다는 것입니다(24-26절). 이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회개와 세례를 전파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으로 끝이 났고,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역사의 뒤로 그는 물러났습니다.

26절 이하에 사도 바울은 이어서 복음의 핵심을 전하면서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이 세상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구원 역사, 구속사(救贖史, redemptive history) 인데, 이 구원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가장 위대한 두 사건,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미 예언되어진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구원의 말씀, 예언의 말씀을 그들이 외우고 있으면서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하여 예수를 죽였다고 합니다(27절). 물론 그 일조차도 예언의 성취라고 합니다.  
하여튼 바울은 29-31절에서 복음의 핵심인 네 가지를 말합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1)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2)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에 장사되었다. 3)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4) 많은 증인들이 부활한 그를 보았다. 바울은 그 내용을 증명하기 위하여 세 개의 구약성경 말씀(시 2:7; 사 55:3; 시 16:10)을 33-35절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셔서 예수님을 정말 보내셨고, 죽었다가 부활하게 하심으로 온전히 성취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는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 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고전 15:3-6상)라고 하신 것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졌음을 밝힌 바울은 이제 그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이 듣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결론적으로 설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38-39절)!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얻게 되었고, 우리가 주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심을 진실로 믿는 그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에 있는 바울의 설교를 통하여 다시 한번 하나님의 섭리, 계획, 그 역사가 얼마나 정확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져 갔었고, 현재도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그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이 세상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전해 듣고 믿은 복음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임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오신 예수님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으며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골고다 십자가 형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 외치셨습니다(요 19:30). 이 말은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를 치루셨다는 말입니다. 어제 지은 죄, 오늘 짓는 죄, 내일 지을 죄까지 말입니다. 확실히 믿으십니까?
그리고 예수님은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셨습니다(37절). 우리가 믿고 구세주로 고백하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끝나신 분이 아닙니다. 사망이 주님을 묶어 놓을 수 없었습니다. 생명의 주님, 부활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훗날 부활하게 하십니다. 영원히 살게 하십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두려워 해야 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 것도 없는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 진리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40-41절).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면서도, 죄를 미워하시며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못하여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하박국 1장 5절을 인용하면서,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스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믿지 못할 일이니라 하였으니라 하니라.” 하박국 선지자 당시의 문맥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즉 바벨론의 흉악함을 사용한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하였다는 경고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은 불타버리고 많은 청년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으면 죄 용서함과 의롭다 함을 얻지만, 믿지 않고 거부하면 심판이 올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하였으며,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4-15)고 하였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으신 분이 계십니까? 마음을 열고, 죄인임을 고백하며 요청하십시오.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오늘도 이 부족한 종을 세우셔서 이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사랑의 초청을 거절하지 마시고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미루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과 지옥, 영생과 영벌, 낙원과 불못 중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 진실로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951 주일설교 [12/31/09] 송구영신예배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한태일 목사 2010-01-09 1642
950 주일설교 [12/10/06] 섬기며 사는 삶3 한 태일 목사 2006-12-12 1640
949 주일설교 [5/29/05] 인간 복제까지 할 것인가? 한 태일 목사 2005-05-30 1640
948 주일설교 [11/23/08] 감사의 열매를 한 태일 목사 2008-11-25 1639
947 주일설교 [8/5/07] 율법과 은혜(행 15:1-11) 한 태일 목사 2007-08-08 1636
946 주일설교 [3/4/07] 복음은 . . . 한 태일 목사 2007-03-07 1634
945 주일설교 [10/2/05]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한 태일 목사 2006-08-12 1634
944 주일설교 [11/18/07] 감사하는 신앙 한 태일 목사 2007-11-19 1633
943 주일설교 [1/9/05] 구역 교회 한 태일 목사 2005-01-09 1631
942 주일설교 [3/20/05] 십자가 고난의 의미 한 태일 목사 2005-03-22 1627
941 주일설교 [3/13/05] 성령의 충만함 한 태일 목사 2005-03-17 1627
940 주일설교 [1/30/05] 서로 받아주고 격려하는 모임 한 태일 목사 2005-01-31 1627
939 주일설교 [11/4/07]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한 태일 목사 2007-11-05 1626
938 주일설교 [6/5/05]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한 태일 목사 2006-08-12 1624
937 주일설교 [5/15/05] 유쾌하게 되는 날 한 태일 목사 2005-05-17 1615
936 주일설교 [12/11/05] 큰 복을 받은 사람 한 태일 목사 2006-08-12 1612
1234567891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