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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8-08 (수) 00:0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36    
[8/5/07] 율법과 은혜(행 15:1-11)
성도들 가운데서 구약의 율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지켜야 되는지를 몰라서 혼동하시는 분들을 봅니다. 그래서 이단인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모세의 율법 가운데 어떤 규례를 그대로 따르는 자들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모를 뿐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생활에도 율법주의자들처럼 사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편 오래된 관습, 전통을 고집하며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그 구습, 의미 없는 전통에 얽매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좋은 전통은 이어가야 하지요. 그러나 정말 쓸데없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에 목숨을 거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경에 무지하거나 고집 때문이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비본질적인 것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해석하고 살아야 하는데, 참 그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세계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유명한 안디옥 교회에 그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이방인 고넬료가 회심하고 믿는 사건이 있은 지 십여 년이 지난 즈음에, 지난 주일에 살펴본 것처럼 성령님의 인도로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받은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할례 여부 문제는 접어두고 복음을 전했고 교회들을 개척했습니다. 또한 안디옥에서도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믿고 교인이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 유대 신자들 가운데 이방인이 예수를 믿으려면 모든 유대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1절). 할례라 함은 유대인들이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8일만에 성기 끝을 조금 잘라서 피를 내는 예식을 말하는 율법의 요구였습니다(레 12:3). 그 이전에 아브라함도 하나님과의 언약의 표로 99세에 할례를 받았고(창 17:24), 개종한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은 후에야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출 12:48). 아마 그들의 생각은 ‘기독교도 유대교의 분파로서 하나님의 구원은 구약 시대의 약속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지 갑자기 예수님에게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회심하여 예수를 믿고 교회로 들어온다고 해도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과 할례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어 그 축복을 누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수 믿는 믿음 만으로는 부족하고 언약백성의 표시인 할례를 받고 그 규범인 율법을 지켜야 완전한 구원에 이른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바리새파 출신의 신자들이었다고 합니다(5절). 그래서 이 일로 안디옥 교회 안에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2절). 그러자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사도와 장로들을 보내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듣기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많은 변론이 있었다고 합니다(7절상). 변론이 끝난 후에 사도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씀을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서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7절하-10절).
지금 베드로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믿는 복음이 어떤 복음이라는 것입니까?

첫째는, 우리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자신도 하나님의 강권에 의하여 이방인 고넬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가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그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율법을 몰라도, 할례식을 하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방인이라 함은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라”(엡 2:11-12)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율법이 없이도 이런 이방인을 새롭게 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9절하) 하였습니다.

둘째로, 구원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생기는 믿음에서 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복음을 듣고 고넬료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자가 되었듯이, 누구나 복음을 제대로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고 하였습니다. 만약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율법과 함께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면 그들에게 구원이 임하였겠습니까? 사도들은 복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른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로, 성령이 증거하시는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그 마음에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은 구원의 복음에 대하여 증거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하였고,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구원의 복음은 이렇게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복음입니다. 철학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만 깨닫는 복음도 아니오, 무아경지에 들어가는 도를 닦는 복음도 아니오,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야 구원 받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영접할 때에 성령님이 우리 안에 인치심을 인한 것입니다. “그(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하였습니다.

넷째로, 믿음으로 마음이 깨끗해지는 복음입니다. 우리의 몸이 세상 속에서 더러워지듯이, 우리의 마음도 매일 악한 생각으로 더러워집니다. 그런데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자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된다는 사실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고 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복음을 받아들인 신자들의 마음이 깨끗하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생활 전체를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신뢰하는 믿음 때문에 마음이 깨끗하여진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왜 유대인들의 조상들도 능히 감당하지 못하던 율법을, 잘 지키지도 못하던 율법을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 제자들의 목에 두어 짐이 되게 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느냐고 꾸짖습니다(10절).
그리고는 결론적으로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노라”(11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저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3:10)! 할렐루야!

그러면, 율법은 무엇입니까? 구약 가운데 율법서인 모세오경은 우리에게 필요가 없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히 10:1절상)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대한 그림자라는 말입니다. 신약에서 중요한 것들을 보여주기 위한 그림자로서, 구약에 나오는 율법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완성이 되고, 확실하게 보여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도와 하나님 백성들의 삶의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가 있습니다. 할례식만 생각해 보더라도 앞서 말씀드렸듯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표시로서의 예식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택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그 주신 율법을 받아 하나님 자녀답게 살겠다는 표로 육체에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예식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그 율법의 진정한 내용이 가르치는 것을 깨닫거나 지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할례식을 지적하면서 정말 모든 율법을 다 지킨다면 그들이 행하는 할례가 유익이 되지만, 다른 율법 가운데 한두 개 어기게 되면 결국 할례 받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게 된다고 했습니다(롬 2:25). 그러면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 것이니라”(롬 2:28-29)고 하였습니다. 육신을 찢는 의식보다 마음을 찢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도 말했습니다. “유대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렘 4:4)! 마음을 찢고 새롭게 하여 정말 하나님께 속한 백성답게 행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할례라는 것입니다.
즉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닫게 하는 선생이며, 얼마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가를 가르쳐 주는 선생입니다(갈 3:24). 또한 율법 가운데 십계명과 같이 신약 시대에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도덕법(Moral Law)은 우리가 순종해야 할 도리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시기 위하여 주신 예식법(Ceremonial Law)이나 시민법(Civil Law)은 오늘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앞서 지적하였듯이 모든 율법을 무시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도, 그 뜻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가면서 그 원리적인 것들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그 동안도 자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죄성과 사탄 마귀의 궤계, 그리고 우리 나라의 민족성이나 문화적인 영향, 혹은 오랫동안 내려오는 우상 종교의 영향 때문에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꾸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다 지킬 수도 없으면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애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성도들이건, 신약의 성도들이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설명을 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있기도 전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직 은혜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서 구원 받는 것 아닙니다.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하여 죄 사함을 받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율법은 우리가 얼마나 죄인이며,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한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안디옥 교회에서 일어난 다툼과 변론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의 표시를 하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었던 바리새파 출신의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바리새파 신자들이 있습니다. 율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혀 의미 없는, 형식적인 것에 얽매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체로 그런 분들은 신앙생활보다 종교생활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자기처럼 율법적이지 않으면 마치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다른 사람을 정죄합니다. 마치 예수님 당시의 유대주의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번은 이렇게 꾸짖으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justice)와 인(mercy)과 신(faithfulness)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오늘 본문도 율법을 멍에라고 사도 베드로가 말하였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롭게 되었는데 왜 굳이 멍에를 메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으로 그 은혜 안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더럽고 추한 마음을 찢고 그 놀라운 은혜로 새롭게 되어 그 사랑에 감격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주님 사랑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하여 율법의 가르침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 받았기에, 감사함으로 말씀에 순종하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증거하십니다. 믿음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갈 5:5-6)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줄 알고, 주 안에서는 어떤 차별도 없음을 알고,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려고 합니다(엡 4:3). 믿는 자라면 누구나 다 용납하고 용서합니다. 뜨겁게 사랑하려고 합니다. 유대인이건 헬라인이건, 백인이건 흑인이건, 남녀노소 무론하고, 유식한 자이던 무식한 자이던, 가난한 자이건 부자이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 놀라운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그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올바로 신앙생활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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