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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11-05 (월) 22:4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33    
[11/4/07]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사도행전 16:19-3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사고방식과 행동이 믿지 않는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성도(聖徒, 거룩한 무리)라 부르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거룩하다는 의미는 구별되다,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살아갑니까?

지난 주일에 점 치는 귀신들린 여종이 사도 바울에 의하여 그 귀신이 떠나고 자유함을 입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물리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능력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들을 물리치고,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악령들을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종은 일평생 묶인 귀신으로부터 풀려나 좋았지만, 그 여종이 점치는 것으로 인하여 돈을 벌었던 주인들은 분노했습니다. 자기들 이익의 소망이 끊어져 돈을 못 벌게 생겼으니까요(19절). 그래서 바울과 실라를 잡아가지고 관원에게 끌어 가서 누명을 씌웁니다. 복음 전하는 것을 가리켜, 이 유대인들이 빌립보 성에 와서 심히 요란하게 하고(20절),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21절)고 말입니다.
이렇게 무리들이 일제히 고소하자,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심하게 매를 칩니다(22절). 그들의 인격을 짓누르는 그러한 수치와 모욕을 받을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습니다. 23-24절에 보면 많이 때린 후에 간수를 시켜 깊은 옥에 가두고 발에 쇠고랑을 채웁니다. 악령은 그들로 하여금 분노하고 불평하며 원망하게 하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이런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일, 선한 일, 주님의 일을 하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고난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과 실라는 귀신들린 여종을 치유해 주었다는 이유로 수치와 모욕을 당할 뿐 아니라 심한 육체적 고통 가운데서도 한 마디 변명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충분히 자신들을 변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누명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바울은 로마 시민권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하지 않고 다 당하고 맙니다. 바보라서 그렇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 세상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0:22). 아니 악한 영이 우리를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담대하십시오. 이 세상을 이기신, 악한 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2하-33)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선한 일, 주의 일 하다가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변명하고 싸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6-18)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영광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악한 영이 주장하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 영광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너무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심한 고통 중에 발에는 쇠고랑이 채워졌고, 깊은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의 모습을 보십시오. “밤중쯤 되어 바울가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25절)고 하였습니다. 누명을 쓰고, 옷을 찢겨 거의 벌거벗김을 당하고 심한 매를 많이 맞고 깊은 옥에 갇힌 그들은 한 밤중에 일어나 함께 기도하고 찬양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환경에 있었다면 기도하고 찬양하였겠습니까? 아니면 그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원망하고 속상하여 절망하였겠습니까?
이런 심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주님의 일 때문에, 선한 일 하다가 오히려 누명을 쓰고, 핍박을 받을 때에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 원망하고, 사람들과 싸우고, 낙심하면서 될대로 되라 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하신다면 악한 영에게 지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그럴 때에 바울과 실라처럼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기서 기도는 풀려달라고, 살게 해달라고 하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신실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초대교회 성도들이 함께 불렀던 찬송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둘이 함께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미, 찬양은 곧 감사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주님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을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또한 찬양은 헌신의 표시입니다. 고난을 당하더라도 남은 힘까지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들의 찬양과 기도를 옥에 갇혀 있던 죄수들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그들에게 감동이 되었겠습니까? 아니 그토록 매도 많이 맞고 해서 아플텐데 기도하며, 노래를 부르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 죄수들도 감동을 받고 나중에 기적적으로 옥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어려운 환경을 초월하여 그렇게 하나님을 선포하고 기도하며 찬양할 때에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듣고 성령이 역사하여 감동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들은 그 고통 속에서도 그렇게 하나님을 높이는 기도와 찬양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복음 때문에, 주의 일 때문에 핍박이, 어려움이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까? 악령이 자꾸 무엇으로 묶으려고 합니까? 바로 그 시간 아니라도 잠시 후에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기도하세요.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되심을 선포하세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세요. 하나님께서 듣습니다. 기적을 베푸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께서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양을 들으시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큰 지진이 나서 옥문이 다 열리고, 두 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쇠고랑까지 다 벗어졌습니다(26절).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겪는 어려움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되심을 고백하며, 간절히 드리는 기도와 찬양을 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기적을 베푸십니다. 당연하지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들이 자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큰 기적을 체험한 후의 어떻게 했습니까? 보통 사람들 같으면 당장 옥에서 나가 자유를 누리며, 사람들에게 간증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했다가는 그 옥을 지키고 있던 간수가 죽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죄수가 감옥에서 도망치게 되면 감옥을 지키던 간수를 사형에 처했습니다(예- 행 12:19). 그래서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27절) 한 것입니다. 이를 알고 바울이 소리질러 그 간수에게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28절) 한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또 하나 배울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발에 채워졌던 쇠고랑이 풀려서 당연히 자유를 찾아 나갈 수 있었지만, 바울과 옥에 있던 사람들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간수를 생각한 것입니다. 나만 괜찮으면 되지 하는 생각은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함께 갇힌 죄수들까지 설득을 했었을 줄로 생각됩니다. 한 사람도 도망가지 않았으니까요.
우리 믿는 사람들은 늘 믿지 않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내 유익을, 내 권리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사랑이지요.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돌보는 마음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사랑의 결과가 사람을 살리는 영혼 구원에 까지 이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간수는 자신을 배려하여 감옥에서 도망가지 않은 바울과 실라 앞에 무서워 떨며 무릎을 꿇었습니다(29절).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을 거기서 데리고 나가 묻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30절)? 이미 성령님께서 그 간수도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송 소리를 들을 때부터 역사하셨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미 그 이전에 귀신들린 여종이 소리 지르는 것을 듣기도 하였고, 그 여종을 고쳤다는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에 대하여 물었겠지요. 아마 이 때에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왜 그렇게 누명을 쓰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하셨는지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린 기적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이 간수와 그 가족을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복음 증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나 바울과 실라는 왜 그렇게 심한 고통을 받아야 했는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31절)고 말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습니다(32절). 그러자 간수는 그들이 매맞은 부위들을 씻기고, 자기와 온 집 권속이 다 세례를 받게 합니다(33절). 자주장사 루디아와 그 온 집 권속들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사명을 가지고 온 집안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도록 인도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입니다. 무척 힘들더라도 참고 인내하면서 전도합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영혼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할렐루야!
그러자 루디아처럼 이 간수도 자기 집에서 그들에게 음식을 차려주고 크게 기뻐합니다. 이유는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34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사랑을 받고, 기쁨을 전해주며, 함께 한 하나님을 믿기에 기뻐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 주님을 위하여 다가오는 고난을 기꺼이 받으셔야 합니다. 피하지 마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일 때문에, 주의 일 때문에, 선한 일 때문에 어려움이, 핍박이 오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런 환경과 악한 상황을 뛰어넘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영들에게 묶이지 않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에게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선포하며 기도합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인생은 실패로 끝나게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신 분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합니다. 나를 위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하여 기적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배려합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돌보게 됩니다. 내 유익을, 내 권리를 포기합니다. 이유는 그 사람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주의 사랑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잊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아야 한다는 사명을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살면서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하고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주인으로서 결국 우리를 악령에 사로잡혀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공한 인생으로 끝마치게 하실 줄을 확실히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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