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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8-11-25 (화) 09:1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39    
[11/23/08] 감사의 열매를
감사의 열매를 (벧전 1:24-25)
개척자 정신으로 시작된 미국의 역사는 실제로 개혁주의자들인 청교도(Puritans)들의 눈물의 감사로 시작되었습니다. 항해술이 취약했던 1620년 메리 여왕의 핍박을 피하여 영국에서 화란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성경적 신앙의 자유를 찾아 May Flower 라는 180톤의 작은 배를 타고 신대륙, 이 미국 땅으로 이민 와서 메사추세츠 주의 Plymouth 에 도착하여 정착을 했습니다. 146명이 함께 출발 했지만 긴 여행 중에 폭풍의 위험과 극심한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1620년 성탄절 다음날 12월 26일, 117일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Plymouth 에 도착하였을 때는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도착하기도 전에 44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었으며 살아남은 사람은 102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에 도착한 그들은 그 해 겨울을 지내는 동안에 혹한(酷寒)과,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의 기근(饑饉), 환경의 변화에 따른 풍토병(風土病), 원주민 인디안들의 습격(襲擊), 야생동물의 공격 등 수없이 많은 재난(災難)들로 이듬해 1621년 봄을 맞이하였을 때에는 겨우 50여명이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 해 열심히 농사를 지어 가을에 처음 얻은 수확물을 놓고 감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곡식과 과일들을 가지고, 처음에 그들에게 친절을 베푼 원주민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축제를 벌이며 하나님께 진심어린 감사의 열매를 드리며 예배를 드리고, 감사,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해 함께 나누어 먹으며, 서로에게 감사한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첫 감사절을 지나고 2년 후 1623년에 매사추세츠 주지사 William Bradford 는 추수감사절을 제정하여 모든 청교도들이 지킬 것을 다음과 같이 공포하였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금년에 풍부한 수확을 주셨습니다.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 밀, 콩, 호박과 여러 채소를 심게 해주셨고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숲에서는 사냥을 하고 바다에서는 생선과 조개들을 넉넉히 거둘 수 있게 축복하셨습니다. 또 야만인의 습격에서 보호해주시고 여러 질병에서 지켜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순례자들에게 선포합니다. 주후 1623년 11월 29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모여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이 모든 축복을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릴 것을 선포합니다.’
이렇게 시작한 추수감사절은 점차 미국 전지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789년 미국 초대 대통령 George Washington 이 11월 26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하고 온 국민이 이 날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3대 대통령인 Thomas Jefferson 은 추수감사절이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배 아래에 있던 기간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중지시켰다가, 16대 대통령인 Abraham Lincoln 이 1861년에 다시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국가적인 공휴일로 제정하며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습니다. ‘나는 우리의 경건한 조상,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 감사의 씨로 뿌린 신앙의 유산을 우리 후손들이 잘 계승하도록 이 날을 국가 축제일로 선포합니다.’
그 후 역대 대통령들이 추수감사절에 ‘감사 메시지’를 발표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습니다. 요즈음처럼 미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만났던 1900년대 초 26대 대통령 Theodore Roosevelt 는 ‘우리보다 훨씬 험하고 고생스러운 시대에 초라한 경제력을 가졌던 우리 조상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훨씬 편하고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위기는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32대 대통령은 Franklin Roosevelt 는 ‘이 가을의 하루를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생명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을 감사하는 것은 우리 미국인의 지혜와 경건이 드러난 전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청교도들이 처음 감사의 열매로 예배를 드렸던 것은 풍성한 수확과 행복한 환경에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옥수수와 감자 몇 개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때에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입니다. 넘쳐나서 드린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또다시 벌써 올해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이제 2008년도 한 달 남짓 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진노랑, 진빨강, 진갈색 등의 낙엽도 거의 다 떨어져 버리며 길가에 수북이 쌓이며, 쌀쌀한 바람이 우리의 옷깃을 스치는 때입니다. 오늘 본문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 1:24)라고 하였듯이, 꽃이 떨어지고 가지의 잎들도 떨어지기에 낙엽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은 모든 인간의 육체, 인생의 영광을 풀, 풀의 꽃과 같다고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치라 하셔서 이사야는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사 40:6-7)라고 한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사실 꽃은 창조주 하나님의 멋진 창조의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이란 꽃도 하나님 창조의 걸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꽃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데 향기가 좋지 못한 꽃이 있는가 하면, 비록 아름답지는 못하지만 실로 그윽한 향기를 내는 꽃도 있습니다. 어떤 꽃은 전혀 향기가 나지도 않습니다. 정말 꽃인 인생도 외관상으로는 아름다워 보여 호감을 주는데, 심술궂은 성품, 다듬어지지 않은 기질 때문에 향기가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외관상으로는 아름답지 못하나 선한 성품, 다듬어진 기질 때문에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향기를 내기도 합니다. 아무 향기를 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여튼 꽃의 절정은 그 꽃이 만개하며 만발할 때입니다. 인생의 여정 중에서 최고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절정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럼에도 그 아름다운 꽃들의 수명은 짧기 그지 없습니다.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져 버린다고 하는 것은 잠깐 동안의 아름다움이었음을 알려줍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의 우리 인생도 유한하며, 한밤의 경점 같은 짧은 인생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인간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수많은 형형색색의 꽃들은 침묵의 언어, 사랑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과 감사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이 꽃이, 나뭇잎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어쩌면 낙엽 같은 인생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유명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가을’이라는 시에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아스라한 곳에서 내려오는 양/ 먼 하늘나라 정원이 시든 양/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집니다/ 그리하여 밤이 되면 무거운 대지가 온 별들로부터/ 정적 속에 떨어집니다/ 그대여 보시라 다른 것들은 . . . / 만상이 떨어지는 것을 . . . / 하지만 어느 한 분이 있어 이 떨어지는 낙엽을 무한히 다정한 손으로 어루만져 주십니다’
이 시를 설명하면서 릴케는, ‘비록 한 잎의 낙엽일지라도 떨어지면서 우주의 최대법칙의 하나로서 충만한 뜻을 지니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낙엽의 가을 후에 남겨지는 열매를 두고 한 말이 됩니다. 새로운 미래, 소망을 내다보고 한 말입니다. 진정 우주를 사색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들며, 낙엽이 떨어질 때 그 아름다움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상 꽃이 꽃으로만 있으면 열매를 구경할 수 없습니다. 떨어지는 꽃, 낙엽 속에서 새로운 꽃, 없어지지 않는 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열매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본문 앞 23절에서 언급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생명의 씨,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씨가 우리 속에 떨어져 중생함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다면, 그 씨가 터져서 자라고 싹이 나서 꽃을 피우는 것은 회개와 성숙한 믿음으로서 성화의 과정 속에 주위에 빛과 향기를 나타내는 것이며, 꽃이 떨어진 후에 열매를 내는 것은 진정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제물이요, 주께서 영화롭게 하시는 그 때와 연결되는 조짐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25절에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고 하신 것이 아닐까요? 땅에 떨어져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씨가 열매 속에 다시 가득차 있으니까 말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문맥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우리 영혼이 순결하여 거짓이 없이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는 명령을 하신(22-23절) 후에 주신 말씀입니다. 항상 살아있는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있다면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인생의 가을이 있습니다. 아니 겨울이 옵니다. 그러나 우리 심령에는 “영생의 씨,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에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겉 사람의 후패”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겉 사람은 썩어질 육체요, 가벼운 것이요, 보이는 것이요, 잠깐 동안의 것이요, 무너질 장막 같은 것이요, 벗겨지고 말 성질의 것들이기 때문입니다(고후 4:17-5:4). 그러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요, 영광의 것이요, 무거운 것이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신령한 몸이요, 성령의 보증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고후 4:17-5:5). 즉 우리에게 낙엽 인생의 과정이 있어도 낙심할 수 없습니다. 속 사람이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또 말하기를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7-10)고 하였습니다. 즉 인생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열매입니다. 후손들에게 남기는 것도 열매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주님을 만날 때, 심판대 앞에서도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열매입니다.
이 감사의 계절에 어떤 열매를 드리실 수 있습니까? 우리의 지난 날들을 되돌아 보며, 어떤 열매로 하나님께 드리며 살아왔는지, 살아가는지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마 7:15-17)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열매라는 헬라어 원어는 ‘행동’, ‘결과’’유익’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을 소유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선한 열매, 행위의 결과입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열매입니다.
성경에서는 회개의 열매(마 3:8), 전도의 열매(롬 1:13, 10:15), 성령의 열매(갈 5:22-23), 빛의 열매(엡 5:9), 의의 열매(빌 1:11), 봉사의 열매(빌 4:16-17), 평강의 열매(히 12:11), 그리고 감사와 찬미의 열매(히 13:15) 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특히 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감사의 열매를 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여태껏 도움을 받아왔고, 지금도 도움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통하여 도움을,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면 감사해야 할 분들이 많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제일 먼저 우리의 감사의 열매를 받으셔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신 부모님으로부터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기까지 알게 모르게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신 분들을 생각하면 감사해야 할 분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됩니다. 영적인 부모들과 스승, 형제 자매들을 비롯하여 남편과 아내, 심지어 자녀들에게도 감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직장 동료들에게도, 상사에게도, 아래 직원들에게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함께 주를 섬기는 성도님들에게도 감사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옛 청교도들처럼 비록 풍성한 수확이나 좋은 여건이 아니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또한 우리가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대상들을 찾아 감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영적인 열매들, 감사와 찬미의 열매만 남는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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