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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4-22 (월) 12:2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78    
영적은사(3) (고전 12:8-11)


지난 주일에는 영적 은사에도, 직임에도, 그 나타나는 역사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4-7절). 하지만 다 같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은사를 비교해서도 안되고, 차별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은사만 중요하고 내적으로 드러나는 은사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다만 어떤 은사를 받았든 내가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그 은사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 섬기며,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영적 은사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오늘날 교회 시대까지 계속되는 은사들이 있는가 하면, 초대교회들이 세워질 당시 사도시대에만 일시적으로 있었던 은사들이 있습니다. 이 일시적인 은사들은 신구약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사도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참이라고 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기 원합니다.

   첫째, ‘지혜의 말씀’이라는 은사입니다(8절상). 신약 성경에서 지혜(wisdom)라 함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은사를 말합니다(참고- 마 11:19; 13:54, 막 6:2, 눅 7:35, 행 6:10, 약 1:5; 3:13,17; 벧후 3:15 등). 그렇다면 이 은사는 깊은 통찰력으로 깨달은 진리의 말씀을 삶에 잘 적용하는 은사입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잘 하면서, 그들의 삶의 문제들을 말로 잘 해결해주는 은사입니다. 그래서 이 은사를 가진 분들은 상담을 잘 합니다.
   둘째, ‘지식의 말씀’이라는 은사입니다(8절하). 이 은사는 앞에 언급한 지혜의 말씀 은사의 기초가 되는 은사입니다. 즉, ‘지혜의 말씀’ 은사를 선용하려면 반드시 이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 은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예언의 말씀을 잘 해석하고 이해하는 은사입니다. 신약 성경에 이 지식을 말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고후 4:6), “하나님을 아는 것”(고후 10:5),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빌 3:8)을 말합니다. 사도나 선지자, 교사들에게 있어야 하는 은사입니다(28절).
   셋째, ‘믿음’의 은사입니다(9절상).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구원에 이르는 일반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확실한 특별한 믿음을 말합니다. 도저히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넘지 못할 장애가 있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런 믿음은 대부분 기도로 표현이 됩니다. 이런 분들의 기도를 들어보면 믿음의 은사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실제 삶에서 담대함이 보여집니다. 그래서 이런 믿음의 은사를 가진 분들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을 돕게 되고 격려하며 세워줍니다. 믿음이 약한 분들에게 도전이 됩니다. 예를 들면 주기철 목사와 같은 순교자들이 이 믿음의 은사를 가진 분들입니다. 또 Hudson Taylor 와 같은 선교사들이나 고아의 아버지 George Mueller 와 같은 분들에게서 나타났던 은사입니다.
  넷째, ‘병 고치는’ 은사입니다(9절하). 본문에서 처음 나오는 일시적인 은사입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사도들에게(마 10:1), 예수님께서 전도를 위하여 보낸 70인들에게(눅 10:1이하), 그리고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빌립 집사에게(행 8:5-7) 나타났던 은사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이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라진 은사입니다. 물론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병을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셔서 선하신 뜻 안에서 병을 고치십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어떤 성도에게 그런 은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 기록이 끝난 후부터 오늘날까지 아무도 사도시대 당시처럼 병 고치는 은사를 나타내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사에서 3세기 이후 19세기 후반까지 어느 기록에서도 어떤 분이 병 고치는 은사가 있었다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어떤 분들이 이 은사가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가만히 보면 정말 완전히 병을 고치는 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고쳤다는 것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 병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라면 무조건 즉시 나아야 하고, 또 죽기 전까지 그 병이 재발하지 않아야 합니다. 즉 사도시대 이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이 은사를 사용해서 병을 고치면 즉각 효과가 나타났으며, 완전히 나았습니다.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병원이 있을 필요가 없지요. 누구나 다 그 사람에게 가서 고치면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늘날 그렇게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일반은총인 의사를 사용하시고, 약을 사용하십니다. 때로 의사들이 못 고치는 것을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고치십니다. 우리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셔서 말입니다.
   다섯째, ‘능력 행함’의 은사입니다(10절). 이것도 사도 시대에만 있었던 일시적인 은사입니다. 여기 능력을 행한다는 뜻은 기적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의 내용을 확인해 주시는 은사였습니다. 주로 마귀를 대적하며 악한 영들을 기적으로 물리치는 은사였습니다. 예를 들면 무당 엘루마를 바울이 소경으로 만든 일입니다(행 13:8 이하). 이것도 오해하지 마셔야 합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능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악한 영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분에게 이런 은사를 주셔서 그 사람이 늘 기적을 행하는 일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여섯째, ‘예언’의 은사입니다(10절). 저는 개인적으로 이 은사도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있었던 은사라고 믿습니다. 물론 어떤 분은 이 예언을 좀 느슨하게 해석하여 성경의 예언의 말씀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오늘날도 있다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은사라면 처음에 나온 지혜의 말씀의 은사나 지식의 말씀의 은사로 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계시는, 예언은 요한계시록으로 끝이 났기에 오늘날에 누가 예언한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사도 요한을 통하여 계시하시기를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고 하셨습니다.
   일곱번째, ‘영들 분별함’의 은사입니다(10절). 교회를 지켜주는 중요한 은사가 바로 영들 분별함의 은사입니다. 악한 영들을 분별할 수 있는 은사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와 거짓 교사들이 많았기에 그들의 그릇된 가르침을 분별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요일 4:1). 예를 들면 사도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심령에 거짓의 영이 들어가 있는 것을 알았으며(행 5:1-10), 마술사 시몬의 마음이 악독하고 불의한 영에 얽매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행 8:23). 즉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거짓 영들, 악한 영들을 구별할 수 있는 잣대가 없었기에 반드시 이 은사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기록된 성경이 있기에 말씀을 잘 알고 있으면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은사가 아주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도 말씀을 통달하면서 기도로 사시는 분들 가운데 특별한 영 분별의 은사가 있으셔서 교회를 악한 세력들로부터 지키도록 돕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덟번째, ‘각종 방언’의 은사입니다(10절). 20세기 들어오면서부터 교계에 많은 논란이 있는 은사입니다. 14장 강해에서 보다 더 자세히 설명이 되겠습니다. 여기 ‘각종’ 이라는 원어는 ‘혈통, 민족’을 의미하며, ‘방언(languages)은 언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각종 방언이라 함은 각 민족들의 언어들(foreign languages)를 말합니다. 즉, 바벨탑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여 흩어버리신 후 이 세상 방언에는 종류가 여러 가지 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을 때에 여러 나라(민족), 정확하게 15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깜짝 놀랐던 것이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닌데 자기 나라 말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행 2:5-12).
   오늘날도 선교지에서 그 족속의 방언을 모르는 분이 그 방언으로 복음을 전하고 설교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사실이라면 이 방언의 은사는 끝났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에 사도들을 통하여 이방 나라들에 처음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주신 은사였으니, 오늘날도 선교지에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되었던 방언은 이방 종교에서 신비한 황홀경에 빠져 흥분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 같은 것으로 중얼거리는 것과 비슷한 방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14장에서 보다 자세히 방언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홉번째, ‘방언들 통역함’의 은사입니다. 만약 방언의 은사를 주시면서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 은사는 메시지가 없기 때문에 별 유익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가진 분들 반드시 허락하십니다. 아니면 본인이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14:13).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골방에서 자기와 하나님에게만 하라고 하였습니다(14:28).
   이 외에도 28절에 나타나는 다스리는 은사와 가르치는 은사가 있으며, 섬기는 은사, 권면하고 위로하는 은사, 구제하는 은사, 긍휼을 베푸는 은사 등(롬 12장)이 신약성경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른 영적 은사들이 많이 있겠지만 초대교회들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은사들을 이상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런 여러 은사들이 다 같은 성령, 한 성령의 역사라는 말씀입니다(8, 9절). 또,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11절)고 하였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그 근원이 같다라는 것입니다. 한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은사는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 다양하지만 근원은 한 성령님으로서 그 분의 고유한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비교해서도 안 되고, 남이 있는 은사가 자기가 없다고 열등감에 빠질 이유도 없고, 남이 없는 것이 내게 있다고 자랑하고 교만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자격이나 환경 차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 뜻대로 주시는 것이니 우리가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성령님께서 모든 교인들에게 그런 은사들을 주시면서 온전히 우리 교회를 주장하신다면, 성령 충만한 교회라면 은사가 여러 가지이지만 우리 모두가 하나됨을 이루고, 지켜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교제 가운데 역사하셔서 서로에게 진솔하여 아주 가까워집니다. 한 지체라도 소외되지 않도록 서로 돌보고, 서로 참여합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온전히 우리 교회를 주장하신다면,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라면 드려지는 예배들이 하나님 중심이며 모든 순서에 진심으로 의미가 있어지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찬양이 살아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부르는 찬양과 경배하는 모습처럼 삶이 살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온전히 우리 교회를 주장하신다면 복음을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교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행 1:8). 그래서 만일 어느 한 사람이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회심하여 믿음을 갖게 된다면 교회 전체가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됩니다. 즉 전도가 최우선순위가 되는 것입니다.
   또 성령님께서 온전히 우리 교회를 주장하신다면 서로 뜨겁게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 희생하려고 합니다. 이기적인 사람들이 발을 못 부칩니다. 아니면 그런 사람이 감동을 받고 자기도 이기심을 버리고, 희생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합니다. 서로 복종하려고 합니다. 서로 섬기려고 합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께서 우리 교회에 역사하신다면 각자가 받은 은사대로 직임을 맡아 성실하게 사역을 감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여 일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영적 은사들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어서 고린도교회처럼 문제들을 야기합니다. 올바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잣대로 판단을 하여 어떤 은사는 다른 은사에 비하여 더 좋은 것으로 여기면서, 자기는 있고 다른 사람이 없으면 우쭐거리고 자랑합니다. 아니 더 좋다고 생각하는 은사를 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씁니다.
   하지만 영적 은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 뜻에 따라 각자 여러 모양으로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은사를 받았든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성령 충만하여 섬기면서 살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한 이 땅에서 신령한 복을 허락하십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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