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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07-16 (월) 05:2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61    
하나님의 지혜(고전 1:26-31)
현대 교회들이 교회 부흥이라는 명목 아래 마치 사업을 하듯이 기독교를 상품화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마케팅을 하듯이 기독교를 팝니다. 다른 종교들과 똑같은데 껍데기 포장만 새롭게 해서 새 상품인 듯 선전합니다. 그래서 참된 교회가 다원주의를 배격하고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 기독교만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도라고 주장하면 배타적이라고 하면서 비난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종교가 이 힘든 세상을 사는 데 무엇인가 도움을 주는, 정신적으로 힘을 주는 유익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들은 철저하게 사람을 위하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그저 착하게 살면 되고 뭐 얽매이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의 참된 교회가 죄를 지적하고, 심판을 이야기하며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강조하면 사람을 마치 종교의 노예가 되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생각하기를 종교는 다 같은 것이니까 종교가 사람을 위하는 것이 되어야지, 사람이 종교를 위하는 것이 되면 결국 이단들처럼 종교의 노예로서 이 세상에서는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기독교를 종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종교를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어느 신학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 기독교는 종교(religion)가 아니라 관계(relationship)입니다. 참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그저 껍데기 포장만 바꾸어서 새롭게 되었다고 선전하여 판다고 해서 사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로 사람의 내부를 변화시켜서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 진정으로 새로운 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들의 지혜와 달라 오직 십자가의 도로만 구원을 얻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처럼 기적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헬라인들처럼 사람의 지혜, 지식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십자가의 못 박히셨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18-25).  
   고린도 교회가 사회적으로 학식이 많고 신분이 높은 자들이 많이 있다는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몰려 든다면, 그것은 마치 어떤 종교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하여 포장을 잘 하고 선전을 잘 하는 것과 같기에 본문에서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이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26절)! 즉 하나님께서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했는지 보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부르실 때 학벌을 보고 불렀느냐, 사회적인 신분을 보고 불렀느냐, 무슨 가문이 좋아서 불렀느냐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육체를 따라, 겉 모습을 따라 우리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무식하고 비천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에 소위 말하는 지식층이, 귀족층이, 부한 사람들이 속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자들을 택하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27-28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사람이 얼마나 학벌이 좋고, 문벌이 좋고, 신분이 높아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런 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무식하고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을 택하셔서 세상에서 똑똑하고 지위 있고 부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학벌이 좋고, 문벌이 좋고, 신분이 높은 사람들을 교회 안에서 그대로 인정해 주면서 대우해주면 어떻게 됩니까? 그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그런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려고 할 것입니다. 자신의 사회적인 영향력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할 것이며 교회 안에서 대접해주지 않으면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나 세상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일체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다 포기하고 그저 다 똑 같은 한 교인으로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말씀은 그런 것들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내쫓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 할 수 있으면 한 사람이라도 더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으면 좋을텐데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믿어보려고 온 사람들을 내쫓는 것일까요?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29절)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어떤 자존심이나 사회적인 영향력보다도 죄 문제가 성령의 능력으로 해결되기 원하십니다. 자기가 붙들고 있는 자존심이나 야망을 포기하지 못해서 그 엄청난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미련한 자인지 깨닫게 해주시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위해서는 그 모든 인간적인 것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목적이 현 상태보다 자신이 여러 면에서 좀 나아지기 위하여, 정신적인 유익을 위하여, 혹은 자신 안에 있는 은사나 어떤 가능성을 개발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믿음의 본질과는 다른 것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의 본질은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이 힘을 못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을 다른 죄인들과 똑 같은 위치에 놓고 조금도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교회가 세상과 똑같이 차별을 두고 배운 자, 귀한 자, 부자들이 대우를 받고, 무식한 자, 비천한 자, 가난한 자들이 푸대접을 받게 한다면 이미 하나님의 교회는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무식하고 비천하고 가난한 자들이라도 그들을 귀하게 보고 나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인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30절)고 하였습니다. 너무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어머니의 뱃속에서 육체로 태어나 눈에 보이는 사람의 형상이지만,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영적인 출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최고, 최선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의 영역 안에 있습니다. 비록 육체는 이 세상 나라에 속해있지만, 영혼은 하나님 나라의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이 세상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적용되는 영역입니다. 열심히 일하거나 노력하면 보상이 있지만, 잘못하면 처벌을 받는 곳입니다. 마치 율법과도 같이 하나님의 법을 완벽하게 지키면 보상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과 처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은혜로 지켜주시고 양육시키십니다. 죄가 우리를 망치려고 하면 더 큰 은혜가 우리를 지켜줍니다. 이 세상은 죄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번 무서운 죄에 빠지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의 은혜가 다시는 죄를 짓지 못하도록 강권적으로 역사합니다. 얼마나 신앙양심이 괴로운지 거의 죽음의 문턱에까지 간 것 같습니다. 죄가 얼마나 무섭고 역겨운 것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얼마나 많이 깨닫게 하시는지 아무리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도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말씀 가운데 죄 용서함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사죄의 은총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 심령에 기쁨이 넘치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뿐만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로서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습니까? 30절 하반절에 가장 먼저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문제가 아닐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죄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 때문에, 혹은 자신의 도덕적인 정신적인 연약성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한 자들은 아직 전혀 복음을 모르는 자입니다.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열어주셔서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보기까지 절대로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의로움”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예수를 믿는 우리를 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을 말합니다. 아직 우리 안에 죄성이 있지만,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의인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 성령께서 인치시고 내주하셔서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상태나 느낌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소하는 사탄의 세력들 앞에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공부가 필요합니다. 이 진리를 모르면,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언제나 죄책감을 갖고 죄인처럼 믿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도 늘 죄 용서를 위한 기도나 하고 늘 심판이나 징계의 두려움과 양심의 가책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진리를 확실히 깨닫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라고 하였습니다(롬 5:1). 비록 아직 내 안에 죄성이 있어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며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고통이 반드시 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는 것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거룩함”이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의인이라 선언해 주시면서 거룩한 자로, 성도로 불러주심을 뜻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마치 어린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이 수없이 넘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더 거룩해져 갑니다. 성령님께서 그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로 성장하게 하십니다. 이 과정을 성화(sanctification)라고 합니다. 이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령한 젖이라고 했습니다(벧전 2:2). 또 떡(마 4:4, 고전 3:2) 혹은 단단한 음식이라고 했습니다(히 5:13-14). 어린 아기가 젖을 먹지 않으면 자라지 않습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으면 힘을 낼 수 없습니다. 먹고 건강해야 잘 자라고, 살아갈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게 하시고, 우리의 영적 지각이 자라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자랍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자라지 않으면 그는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몸을 사용하시기 시작합니다. 내 입과 손과 발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몸만 빌려드리고 실제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신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상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 다 하셨는데 칭찬과 상급은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구속함”이 되었습니다. 구속함이란 값을 지불하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우리의 몸까지 완전히 구원하십니다. 영광스러운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이런 은혜를 입은 우리 믿는 자들이 뭇 사람들이 말하는 종교의 노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강제로 밀고 나가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노예 취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격적으로 감화 감동하시며 설득하시지 절대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시지 않으십니다. 바로 사람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가 다른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나의 것을 가져가신다면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붙들고 있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수 백배 수 천배 가치 있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주님이 나의 많은 부분을 가져가시면 좋습니다. 건강이던, 시간이던, 힘이던, 물질이던, 자녀이던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신의 삶을 맡기는 자의 인생을 최고의 인생으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기독교 2000여 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31절) 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외에 자랑할 것이 정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모든 일을 다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는 것들을 차별화하여 자기 만족을 구합니다. 물론 지식적, 신분적, 빈부의 차별이 이 세상 나라에서는 의미 없는 것이 아닙니다. 상당한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웁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의로움으로, 거룩함으로, 구속함으로 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주님께 맡기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나타나게 하십니다. 확실히 믿으시고 그렇게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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