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2,459,334
오늘방문 : 12
어제방문 : 26
전체글등록 : 3,078
오늘글등록 : 1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2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4-01 (일) 05:40
분 류 특별설교
ㆍ조회: 178    
극도의 목마름에도 불구하고(요 19:28)
정사기념예배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적이 분명했기에 대중의 인기에도, 사적인 감정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목표가 있었기에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 “다 이루었다”(30절)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선 “내가 목마르다”라고 하신 말씀은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시 22:15)라고 메시아의 고통에 관한 예언을 성취하시는 말씀이며, “목 마르다”라는 주님의 음성에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그 입에 대셨다는 29절 말씀은 “저희가 쓸개로 나의 식물을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시 69:12)라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한 것입니다.
29절에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고 합니다. 헌데 마태복음에서는 “골고다 즉 해골이라는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셨더라”(마 27:33-34)고 하였고,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막 15:22-23)고 한 것을 보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심히 목마른 가운데 그들이 주는 신 포도주를 입가에 대셨을 뿐 마시기를 거절하신 것입니다. 여기 신 포도주는 쓸개와 몰약을 탄 포도주였습니다. 당시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마취제로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신 포도주로 십자가의 고통을 못 느끼게 되는 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당하시는 십자가의 형벌은 우리 죄인들을 향하여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다 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취제로 고통을 회피해서는 안 되는 고난이었습니다.
심하게 목이 탈 때에 받는 고통을 죽음의 고통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런 정도의 고통을 당해본 일이 없지만 당해보신 분들은 지금 십자가 상에서 목이 타는 주님의 고통을 조금 이해할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에 물이 없어 목이 타고, 입 천장이 들러붙게 되자 하나님께서 그 동안 보여주신 기적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어 원망까지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십자가 상의 주님처럼 피를 쏟으면서 생기는 갈증은 자기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물을 마시고 싶어할 만큼의 극도의 목마름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 위의 주님의 고통은 진짜 실제로 당하는 고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사람의 몸을 입으신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내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빌 2:5-8)고 한 것입니다. 스스로 자원하여 낮고 낮은 인간이 되셨던 것입니다. 주님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여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관심은 온통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 그 뜻을 이루는 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공생애 초기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부터 나타났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죄 씻음의 표인 세례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죄인들과 하나됨을 알리시려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자신에게는 필요가 없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는 필요한 일이었기에 기꺼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랬더니 하늘의 문이 열리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5)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던 것이며,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머물렀던 것입니다(요 1:32).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온통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갈망으로 가득할 것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면 세상의 즐거움, 안목의 정욕, 육체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이생의 자랑에 온통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 자꾸 내 생활에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좀 가만히 계셔요. 내가 알아서 섬겨 드릴 테니까 잠자코 계세요. 그리고 그 이상 제게 무엇을 기대하지 마세요. 지금도 제 나름대로는 힘껏 섬겨드리고 있는 거에요’하면서, 마치 노부모에게 마지못해, 억지로 매달 용돈 얼마 보내드리는 것처럼 신앙생활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 예수님은 자신의 삶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극도의 목마름을 통해서라도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모습에서 예수님의 순종을, 특별한 헌신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려고 하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뜻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우리의 관심이 온통 하나님 나라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사흘 후에 있을 부활의 영광이 있기 전에 이런 극도의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서의 우리 믿음 생활이 유유자적(悠悠自適)이, 낭만적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훗날의 영광을 맛보기 전에 이 땅에서 우리가 실제로 당하는 고통이 있고, 고독이 있고, 쓰라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만나는 사탄, 마귀들의 어떤 도전에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 전쟁을 겁내지 말고 싸워야 합니다. 영광스러운 날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유혹을 거절해야 합니다. 고난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풍조는 성공, 무엇이든 잘되는 것에 있습니다.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 풍조가 교회 안에도 들어와서 성도들이 고난보다는, 거룩한 삶보다는 성공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저 아프지 않고, 돈 잘 벌고, 명예를 얻고,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려고 합니다. 너무나 자기 중심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8세기 영국의 개혁주의 목사였던 Augustus Toplady 는 ‘만세반석 열리니(Rock of Ages)’라는 찬송에서 십자가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
내게 효험 되어서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공을 세우나 은혜 갚지 못하네
쉬임없이 힘쓰고 눈물 근심 많으나
구속못할 죄인을 예수 홀로 속하네

빈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 주소서

살아생전 숨쉬고 죽어 세상 떠나서
거룩하신 주 앞에 끝날 심판 당할 때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극도의 목마름의 고통 가운데서도 참으시고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면서 숨을 거두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가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든 고통을 참으신 원인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이 아가페 사랑은 매우 강합니다. 이 사랑이 없는 사람은 고통을 당할 때 비명을 지를 수 있지만, 이 사랑이 있는 사람은 고통을 당해도 비명을 지르지 않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 “내가 목마르다”라는 주님의 외침은 그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표현입니다. 이 사랑을 입었는데, 이 사랑을 받고 사는데, 또 무엇을 더 원하십니까? 그저 감사, 감사합시다!
그리고 이제는 이 사랑에 온전히 사로잡혀 이 사랑을 나누고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오늘 생각해야 할 십자가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십자가가 아니라, 이 십자가의 사랑이 실제로 우리의 삶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처럼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헌신하여,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이 사랑을 나타내고 사시기 바랍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940 주일설교 하나님 아버지의 징계(히 12:4-11) 한태일 목사 2018-09-03 321
939 수요설교 환란 가운데서도 든든히(데살전 3:1-13) 한태일 목사 2018-08-30 303
938 주일설교 믿음으로 끝까지 경주하는 자(히 12:1-3) 한태일 목사 2018-08-27 314
937 주일설교 세상이 감당못하는 담대한 믿음(히 11:29-40) 한태일 목사 2018-08-13 309
936 주일설교 믿음으로 결정하고 행함(히 11:23-28) 한태일 목사 2018-08-06 312
935 수요설교 자랑의 면류관이 너희가 아니냐(데살전 2:13-20) 한태일 목사 2018-08-03 194
934 주일설교 믿음으로 유종의 미를(히 11:20-22) 한태일 목사 2018-07-30 185
933 주일설교 영적인 부모로서(데살전 2:7-12) 한태일 목사 2018-07-19 119
932 주일설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히 11:17-19) 한태일 목사 2018-07-16 126
931 수요설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데살전 2:1-6) 한태일 목사 2018-07-12 107
930 주일설교 더 좋은 본향을 사모하며 믿음을 따라 죽었으니(히 11:11-16) 한태일 목사 2018-07-09 120
929 수요설교 여호와의 군대장관(수 5:10-15) 한태일 목사 2018-07-06 109
928 주일설교 믿음으로 나갔고 바랐음이니라(히 11:8-10) 한태일 목사 2018-07-02 136
927 수요설교 모든 믿는 자의 본(데살전 1:4-10) 한태일 목사 2018-06-28 85
926 주일설교 믿음의 증거(히 11:7) 한태일 목사 2018-06-25 95
925 수요설교 기도 외에는 (막 9:23-29) 한태일 목사 2018-06-21 90
1234567891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