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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4-05 (목) 23:58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144    
새 예루살렘(계 21:9-21)
이제 사도 요한의 마지막 환상이 나옵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그에게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보여주겠다고 합니다(9절). 여기 신부와 그 동안 언급한 바벨론 음녀와 둘을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순결을 지키는 신부와 자신을 아무 남자하고 관계를 갖는 음녀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신부는 다른 남자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어린양, 한 남자에게만 온 마음을 바칩니다. 음녀는 아무 남자에게나 마음을 줍니다. 음녀는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애를 씁니다. 비싼 옷으로, 장식품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신부는 그렇게 치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수수한 차림이라도 괜찮습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오직 한 남자만 바라보면서 정절을 지킵니다. 이 세상에서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잘 참아낸 자들입니다. 조금이라도 거룩하지 못한 부분은 주님 앞에 고백하고 그 보혈로 완전히 깨끗함을 받은 무리들입니다. 바로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고백하는 ‘거룩한 공회’입니다.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그런 모습에 대하여 비방하지 않습니다. 욕하지 않습니다. 인정합니다. 진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입니다. 오히려 위선적으로 겉 치레 하면서 마음과 몸을 더럽히는 모습을 비방합니다. 자신들은 그렇게 살면서도 말입니다.

마지막 환상을 보는 가운데에서 지금 요한은 비록 천사가 인도하지만 성령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10-11절)고 하였습니다. 천사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벨론의 영광과 비교해 보면 이 또한 하늘과 땅 차이가 있습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바벨론은 음란하고 더러운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고귀하고 순결한 영광이었습니다. 이는 나중에 주님 재림하신 후 보여질 우주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지상 교회는 아직 부족한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 성은 전혀 부족함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교회입니다. 벽옥과 수정 같이 맑은 지극히 존귀한 모습입니다.

그러면 새 예루살렘 성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 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12-14절)고 하였습니다. 즉 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려면 동서남북 열두 문을 통해야만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열두 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를 말하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믿는 자들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요 10:7).
그런데 이 성곽의 기초는 열두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즉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교회의 기초는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면 올바른 교회가 아니고 언제든지 무너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의 철학, 사상, 체험 등이 기초가 되어 있다면 큰 문제인 것입니다. 물론 다들 말씀 위에 세운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말씀보다는 사람의 생각이나 체험 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면 바른 교회는 아닙니다. 인본주의인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세상의 지위, 신분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 지위나 신분이 영향을 미치는 교회라면 인본주의인 것입니다.

이어서 우리 주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을 척량하라고 시켜서 천사가 보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치 작은 개인 사업을 하시는 분이 하루 장사를 마친 후 벌은 돈을 계산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듯이 주님도 성전을 척량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즉 우리 주님은 교회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부분이 주님의 뜻에 맞는지 헤아립니다.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15-17절)고 하였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완전히 주사위 모양입니다. 장(길이), 광(너비), 고(높이)가 똑같습니다.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라 함은 약 2,253km(약 1,408miles) 입니다. 성곽 두께가 일백 사십사 규빗이니 약 60m 입니다. 물론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고 함으로 완전한 크기를 말씀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을 초월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마치 엘리야가 아합과 바알 선지자, 아세라 선지자와 대적할 때 엘리야 자신 혼자만 진정한 하나님 백성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자 칠천 명을 숨겨 놓았다고 하셨습니다(왕상 19:18, 롬 11:2-5). 우리 눈에 진정한 성도들이 많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딴 곳에 숨겨 놓고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저 북한 땅의 지하교회 성도들처럼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성과 성곽을 구성하고 있는 보석들을 말하고 있는데, 각종 화려한 보석들로 되어 있습니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정이라 그 열두 문은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18-21절)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보석 전문가가 아니기에 이 모든 종류의 보석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정금이나 진주 정도 외에는 모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마치 구약시대에 제사장이 에봇을 입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 조끼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는 열두 보석이 달려 있었던 것과 유사합니다. 이 보석들이 상징하는 것은 그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야 할 거룩한 성품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모든 보석이 다 똑 같은 색깔을 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 귀한 보석들이지만 각양 다른 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자들입니다. 아버지에게 자녀들이 소중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보배롭고 존귀한 자들로서 거룩한 성품을 드러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색깔을 내야만 합니다. 또 우리는 다 다른 보석들입니다(고전 12장). 모두 같은 보석이 아닙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급하고 어떤 사람은 느긋합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섬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소리 내며 섬깁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롭게 섬깁니다만 어떤 사람은 우직하게 섬깁니다. 성격과 은사가 다르지만 나름대로 보석으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보석들이 조화를 이루어서 찬란한 빛을 발휘하면서 아름다운 화음으로 함께 노래한다면 그것이 바로 참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물론 금이나 은, 보석이 아닌 나무나 풀이나 짚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수많은 작은 가정교회들이 있었는데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우지 않고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워서 불 같은 시험을 견디지 못하여 다 태워져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아 상을 받지 못하고 겨우 구원만 받는 가정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 3:12-15)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보석인지? 금인지, 은인지, 다이아몬드인지? 아니면 나무인지, 풀인지, 짚인지? 정말 다 보석이기를 축원합니다.

끝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길이라고 했습니다. 이 길에서 서로 다니며 교제를 할텐데 아마 우리의 교제가 얼마나 아름답고 정결하고 순수한지를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성도들 사이에 아무 악의 없이 서로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축복하는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의 성도들의 교제가 그렇다면 얼마나 우리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는 것일까요? 우리 마음이 유리 같이 정금길이라면 서로 소중하게 여기며 진실을 말하며 참된 사랑을 하는 교제가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정말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합니다. 그런 아름다운 영광스러운 교회를 꿈꾸어 봅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에 기초한 교회, 주님의 순결한 신부들의 교회, 서로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보석으로서 거룩한 아름다운 빛을 내며 하나를 이루어 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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