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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11-27 (일) 03:4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441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 (갈 6:11-18)



드디어 갈라디아서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하여 바울은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11절)고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나 데살로니가교회 등에 보내는 서신은 손수 자신이 써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등은 자신이 말하면 대신 글을 써주는 더디오(Tertius)가 있었습니다(롬 16:22). 이유는 안질로 인하여 눈이 좋지 않아져서 그렇게 했다고 성경학자들을 생각합니다. 아마 갈라디아서도 오늘 본문 전까지는 더디오나 혹은 다른 사람이 대신 기록해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갈라디아교회에 보내는 편지 결론은 본인이 직접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고 합니다. 오늘날도 글을 쓸 때 강조하는 것을 굵게 혹은 크게 쓰듯이, 당시 글 쓰는 사람들이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이 글자를 크게 쓰는 것이었습니다.

1장부터 여태껏 갈라디아 교회 안의 유대주의자들이 복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도 지켜야 한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들에게 복음으로 필요충분하다는 진리를 역설하였습니다. 결론에서도 그것을 강조합니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과 율법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겉 모양으로 나타내는 종교이냐 속사람의 변화하는 신앙이냐, 인간의 노력이냐 하나님의 능력이냐, 자기 중심이냐 그리스도 중심이냐 등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 뿐이라”(12절)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속사람이 변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 복음의 초점인데, 그들은 겉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모양을 내는 종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적용을 시키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겉으로 표시를 내는, 소위 폼을 잡고 사는 위선적인 종교인들은 정말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할례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이 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모세를 통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전해준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라고 하였으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거하여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라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렘 9:25-26)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 설교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마 6:1).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속사람이 변하면, 성령으로 인하여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겉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겸손하고 인자한 모습이, 온유하고 부드러운 모습이, 말과 행실이 덕을 끼치는 모습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잘 믿는 척할 필요가, 폼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이 그렇게 육체의 모양을 내려는 이유가,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려는 이유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받는 핍박을 면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12절).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고전 1:23). 유대인들은 실제로 정치적인 왕으로 메시아를 원했지,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를 지는 메시아는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던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바울처럼 진실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는 자들을 엄청 핍박했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핍박을 면하기 위하여 할례를 주장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즉 고난 받는 것이 싫어서 육체의 모양을 내려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13절) 였습니다. 자신들도 율법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으면서 할례 받은 자체를 자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을 모든 것 다해 사랑하며,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계명은 지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위선적인 모습입니까? 오늘날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전도사, 무슨 임원 등 이런 겉 모양을 자랑하면서 실제로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면 똑같은 지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섬기라고 주신 직분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육체의 모양으로 자랑하라고 하면 자랑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 3:5-6)고 하였지만 이어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7-9절)고 하였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14절)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니 세상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자신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세상을 십자가에 못박으니 이제는 세상과는 전혀 관계 없는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악의 배후세력인 사탄, 마귀와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도 없고, 세상 것 자랑할 것도 없으니 얼마든지 세상의 유혹을 이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열등감도, 우월감도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한다면 이 세상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유혹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육체의 자랑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15절)고 한 것입니다. 이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갈 5:6)고 한 말씀을 반복한 것입니다. 속사람이 변화를 받은, 성령의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의를 받은 새로운 사람이 되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전부라는 말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친히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이제는 믿음으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평강과 긍휼을 약속하셨습니다.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찌어다”(16절) 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 규례는 복음으로만 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사는 새로운 삶의 규례를 뜻하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평강(peace)과 긍휼(mercy)을 베푸십니다. 사실 그런 분들은 하나님의 평강과 긍휼을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찌어다 아멘”(17-18절) 이라고 하면서 갈라디아서를 끝내고 있습니다. 여태껏 복음의 진리를 설명했으니 이제 후로는 더 이상 유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합니다. 괴롭힐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교인들이 흔들리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서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는 말은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때문에 받은 육체적인 고난을 말합니다(고후 11:23-27). 이 흔적(mark, sti,gma)이라는 단어는 당시 노예나 짐승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주인이 찍는 낙인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고난을 받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2절 말씀 기억하시나요? 육체의 모양을 내려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핍박 받는 것을 면하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대조가 되지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변화를 받아 새 사람이 된 성도들에게는 예수의 흔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고난을 받은 표시가 있다는 말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군인이 조국을 위하여 싸우다가 부상을 입어 상이용사가 되었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자랑할 것입니다. 무슨 훈장보다 확실한 증거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의 군병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가 부상을 입어 상처가 생겼다면 그것이 바로 자랑스러운 흔적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할례는 세례 혹은 십자가의 상징이요,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타나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를 사함받아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각오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참 하나님이자 사람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을 때에 하나님의 의가 전가되며, 성령으로 인치시며 구원하시고, 그의 자녀를 삼으시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속사람이 변한 것입니다. 전인격이 변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의원이신 예수님을 만나 ‘죄’라는 병을 완전히 고쳤습니다. 더 이상 병원 신세를 질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수술할 필요도, 약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된 절름발이 병자를 고쳐주시고,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것처럼(요 5:1-11), 완전히 건강해 졌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용하던 자리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사랑하며, 자랑하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만을 붙들고 삽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십자가 안에서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우리로 하여금 세상 정욕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허락하신 은혜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모양을, 겉 모습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육체에 자랑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자랑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십자가만을 사랑하고 살기에 고난이, 핍박이 있어서 몸에 흔적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긍휼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셨습니까? 속사람이 바뀌셨습니까? 그렇다면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은 다 허탄한 것입니다.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자랑하면 허무한 인생이 됩니다. 우리는 비록 세상에 살지만 세상 것들과는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공중권세를 잡고 이 세상을 악하게 사용하는 사탄, 마귀와 관계가 전혀 없습니다. 이미 세상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다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그저 십자가만을 붙들고 사십시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십자가 군병들로서 잘 싸워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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