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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5-03-29 (화) 06:0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02    
[3/27/05] 부활의 기적이 우리의 삶에도
부활의 기적이 우리의 삶에도(마 28:1-10)
다시금 우리는 부활절을 맞습니다. 진실한 신자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부활주일이면 교회를 찾습니다. 그런데 2000여년 전에도 그러했지만 오늘날도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무덤이 비어있다고 전해들은 그 당시 대제사장들과 유대 장로들이 로마 군병들에게 뇌물을 주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했다고 시켰던 것처럼, 오늘날도 누가 그 시체를 도둑질하였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마 28:11-15) . 그렇다면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고,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병정들이 그것을 찾기 위하여 애를 썼을 것인데 어느 누구도 찾았다는 기록을 남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는 증인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한 두 사람의 기록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이 기적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예언한 그대로(마 16:21, 요 2:19, 21) 살아나셨으니, 더욱 인간의 이성을 초월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으니 가능했던 사실(Fact)입니다. 꾸며낸 이야기(Fiction)이 아닙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전할 때에 이 주님의 부활을 강하게 증거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신 그 대속의 죽음만 위대한 진리가 아니고, 더 큰 진리이자 기독교의 핵심은 이 부활에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4절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라고,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는 모든 것이 헛된 일이라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유는 죄의 권세가 우리를 이기기 때문입니다. 그 권세 아래에서 종노릇 할 수 밖에 없지요. 또, 주님의 부활은 훗날에 있을 성도들의 부활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로마서 6장 5절과 8절에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게 됩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부활의 기적이 실제로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도 나타나는지.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기적을 체험하고 살아가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생생하게 우리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불치의 병이 나았다든가, 환상을 보았다든지 어떤 신비한 체험 보다도 실제적인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지는 기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정말 피곤하고 힘든 이민생활 가운데서도 그 얼굴에 피곤한 모습을 찾을 수가 없이 기쁘고 즐겁게 살면서, 어디서 그러한 힘이 나오는지 주님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는 삶, 혹은 몸이 병들어 아프지만 그 고통을 참아내면서 오히려 남에게 위로하는 삶, 누명을 쓰고도 아무 말없이 담담히 인내하는 삶, 어떤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였는데도 화를 내거나 복수할 마음은 사라지고 오히려 그러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더 사랑하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섬기는 삶, 내게 계속 손해를 끼치면서 못살게 구는 사람까지도 오히려 용서하며 선으로 악을 갚는 삶, 충분히 미워할만한데도 사랑하는 삶, 부딪히는 일마다 잘 풀리지가 않아서 당연히 불평과 불만으로 입에서 욕이 나오거나 짜증어린 신경질이 나와야 할 텐데도 오히려 허락하신 것을 감사하면서 만족하는 삶, 양쪽에서 욕을 먹으면서도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화해시켜 보려고 애쓰는 삶,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였는데도 오히려 나를 이긴 그 사람을 진실로 축복해주는 삶, 세상에서 보다 낳은, 혹은 높은 위치에서 남들이 인정해주고, 높여주기에 당연히 자기를 자랑하면서 자기 명예를 뽐낼 만한데도 전혀 그러한 기색하지 않고 오히려 겸손을 보여주는 삶, 정말 유혹에 빠질만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순결을 지키는 삶,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내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는 삶 등이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삶의 기적들이 아닙니까. 보통사람들 같으면, 불신자들 같으면 인간이기에 당연히 그러할 수 있는데 하면서 자신을 합리화 시키며 적당히 한세상 살자고 하겠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살아계셔서 그 사람을 주장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도들이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저는 분명히 부활의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들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 중에서 8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을 주의깊게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몇몇 여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볼 때에도 끝까지 남았었고, 돌아가신 후에도 안식일이 지난 다음에 맨 먼저 무덤을 보려고 왔던 것입니다(1절). 정말 예수님을 사랑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 여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고하기를 장사 지내었던 예수님은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으니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가서 고하라고 하신 후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갈릴리로 가셔서 거기서 부활하신 모습을 나타내 보이실 것이라고 일러줍니다(5-7절). 그러자 그 여자들은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으니 당연히 무서웠지만, 한편 사랑하는 주님이 살아나심을 기뻐하면서 제자들을 향하여 달음박질 하는데 예수님께서 저희들을 만나신 것입니다. 들려주시는 말씀에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립니다.  
여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첫 말씀이 "평안하뇨" 라고 인사를 합니다(9절). ‘안녕하십니까?’ 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저 인사치레로 하신 말씀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유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잠시 후에 예루살렘에서 열 한 사도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도 나타나셔서 그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눅 24:36) 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0절에 "두려워말라" 고 하시면서 천사가 전해준 말과 같이 제자들에게 가서 자신의 부활을 전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돌아가시기 전에 주셨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집, 돈, 명예, 권력이 주는 편안(comfort)은 짧고 피상적이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것은 영혼 깊은 곳에서 인간 본연의 갈급함을 채워주시는 평안(peace)이기에 그 어떤 것에도 근심이나 두려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구약에서 ‘평안(Shalom)’을 말할 때에는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번성케하시고, 보호하심을 바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도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사망 권세를 깨치고 일어나셨으니 이제는 더욱 확실하게 아무 것에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셨으니 그 살아계신 주님께서 내주하시는 성도들도 담대히 이 세상을 이긴다는 뜻입니다. 어떤 고난, 재난을 당하더라도 말입니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말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얼마나 많은 위험과 싸움과 천재지변과 미움이 가득차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깊은 평안을 누리고 살아가는 성도가 있다면, 그 사람은 부활의 기적이 그 삶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볼 때에 전혀 평안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그 성도가 평안하다면 그것이 기적아닙니까? 정말 두려워 떨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담대하게 주어진 일을 감당한다면 그것이 기적이 아닙니까. 부활 승천하셔서 오늘도 살아계신 주님께서 그 성도와 함께 하시며, 그의 삶을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여늬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이 그 삶에 전혀 이러한 부활의 기적이 없다면 그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만 당하시고 다시 사시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저 주일 한번 교회 나아와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은 있어서 자기 잘못은 알기에 잘못한 죄만 고백하고, 다시 교회를 나서면서 전과 똑같이,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산다고 한다면, 변화가 없다면 부활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죽음만 당하신 예수를 믿는 죽은 신앙입니다. 이러한 신앙때문에 전도의 문이 얼마나 막히고 있습니까?
분명히 성도들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오늘도 여러 모양의 기적을 체험하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확실히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오늘도 성도 개개인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십자가의 죽음이 없었다면 부활도 없었겠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들의 자아가 죽기 전에는 부활의 기적을 체험할 수가 없지요. 바로 여기에 많은 신자들이 부활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도는 내가 산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사는 것이 기적을 체험하고 사는 것입니다(갈 2:20).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때에 기적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눅 9:23).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쓴 고통의 잔을 받기 싫으셨던 분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원대로 되어지기 원하였기에 순종하였을 때에 부활을 맛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도 믿는 다고 하였던 것입니다(롬 6:8).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는 부활의 기적이 나타납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무슨 엄청난, 신기한 체험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주 작은 기적들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너무나 중요하고 반드시 있어야 할 실제적인 삶의 기적들입니다. 진실한 신자라면 말입니다. 이 기적의 삶이 주위 사람들에게 빛으로, 소금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아무리 세상이 악하여 지고 타락하여 간다 하더라도,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한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공의를 행하고, 인자와 긍휼을 베풀고, 겸손히 행하며, 사랑하며, 기뻐하며, 오래참으며, 선을 베풀고, 작은 일에도 온 마음을 다하여 충성하며, 자신을 절제하고, 마음과 영혼의 깊은 평안 속에 무슨 일을 만나도 담대하게 살아가는 삶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는 기적의 삶으로 여겨집니다.
오늘까지 생명을 허락하시고, 영생의 길을 걷게하시며, 2005년 부활절을 지키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앞으로 계속되는 예배생활, 신앙생활을 통하여 우리들의 삶 속에 이렇게 크고 작은 수많은 부활의 기적들이 계속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참된 부활의 증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실 일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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