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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4:4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626    
[11/13/05] 순교자들의 피로
순교자들의 피로 (요한계시록 6:9-11)
제가 에베소서 강해 설교를 하면서 에콰도르 선교사 Jim Elliott 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시카고의 기독교 대학인 Wheaton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재원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갓 결혼을 한 후, 1956년 1울 8일 28세 약관의 나이로 네 명의 동료와 함께 에콰도르 아마존 유역의 아우카 부족에 선교하러 가서 복음을 전하려 하다가 창에 찔려 네 사람 모두 살해되어 강에 버려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가장 악명이 높고 접근하기 어려운 부족으로 소문난 아우카 부족은 수백년 동안 외부인들을 죽여왔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도 그들은 그 속으로 간 것입니다. 당시 ‘라이프’ 잡지는 이 비참한 사건을 장장 10페이지에 달아는 기사를 다루면서 “What an unnecessary waste!’ 라고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세상적 가치로 보면 당연한 말입니다. 촉망 받던 인재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갔던 선교지에서 복음을 제대로 전해보지도 못한 채 죽은 것입니다. 인생의 꽃도 피워보지 못한 20대의 청춘에 갓 결혼한 남편이 죽었는데, Jim 의 아내 Elizabeth 는 기자들에게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말씀을 삼가해 주세요. 낭비라니요? 내 남편의 죽음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온 생애를 이것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 시간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자기의 책임을 잘 감당하고 생의 목표를 달성하고 죽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Jim 이 대학 때에 쓴 일기는 그 아내의 말을 충분히 입증합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유명한 말,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what he cannot lose!’ 이 또한 증명합니다.
그런데 남편을 따라 아내 Elizabeth 도 남편이 죽은 후 간호사 훈련을 받고, 1년 뒤에 남편을 죽인 아우카 부족의 마을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 부족은 외부에서 찾아온 남자는 죽여도 여자는 죽이지 않는 풍습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5년 동안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섬기다가 떠날 때에 파티를 열어준 추장에게, ‘나는 당신들이 6년 전에 죽였던 그 남자의 아내입니다. 남편이 가지고 있었던 당신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나는 이곳을 찾아온 것입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지난 8월에 평양과기대 건설 이야기를 영상으로 본 바 있습니다. 그 때 공사를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 자리가 1866년 평양 대동강을 따라 성경을 전하다가 순교한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기념 교회가 있던 자리로서 그 종탑이 발견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선교 역사를 말할 때에 1880년대의 언더우드나 아펜셀러, 알랜 선교사들을 말합니다만, 그 20년 전에 이미 토마스 선교사나 매킨타쉬, 로스 선교사들이 씨앗을 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이야기를 읽다가 은혜를 받았는데, 그가 24살의 젊은 나이에 선교로 부르심을 받아 영국에서 결혼을 하고 아내와 함께 먼저 중국에서 일을 하다가, 그 땅에서 아내를 잃고 말았습니다. 며칠간 출장을 다녀오니 임신한 아내가 유산을 한 채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일로 슬퍼하며 방황하면서 그를 파송한 윌리암슨 선교부 국장에게 첫 선교 보고서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내가 영국을 떠날 때에는 여기서 처음 쓰는 편지가 이런 것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 Caroline 이 지난 달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이상 . . .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겠습니다.’(1864년 4월 5일) 참으로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안락한 영국 땅을 떠나 머나먼 오지로 온 것인데, 태아와 아내의 죽음을 대하면서 극심한 절망 가운데서 선교사직을 그만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조선 땅에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를 당한다는 소식을 어떻게 전해 듣고는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를 전파하면 곧 죽음이라고 전해지는 땅, 조선에서 선교를 결심하게 된 것이 어쩌면 아내의 죽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김 우현 감독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는 아내를 잃은 지 2년 후에 조선 땅에서 순교하고 맙니다. 그리고 40년 후인 1907년에 평양 장대현 교회를 중심으로 큰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부흥의 불길이 일제 시대를 거쳐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복음 때문에 순교를 당하게 되었고, 계속해서 6. 25 동란을 거치면서 공산당의 손에 또 다시 많은 신앙인들이 순교를 하게 되면서 우리 한국 교회는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장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 성장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도 크게 축복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비록 위정자들을 잘못으로 IMF 와 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늘날 미국 다음으로 온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의, 순교자들의 피를,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금년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먼저 피를 흘리며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다 준 그들에게 감사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를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앞으로 되어질 종말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셔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아시아 지방의 7교회를 위로하고 붙들어주시는 말씀입니다. 물론 묵시적 형식을 띠고 있어서 많은 상징과 비유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6장에 나오는 일곱 인 재앙은 예수님 재림 직전에 나타날 7년 대 환란을 말합니다. 1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봉해진 책의 인(印)을 하나씩 떼실 때에 나타나는 말세적인 대 환란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처음 네 개의 인을 뗄 때에는 말을 탄 사람이 하나씩 나옵니다. 처음에는 흰말, 두 번째는 붉은 말, 세 번째는 검은 말, 네 번째는 청황색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의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섯번째는 천상에서 순교자들의 탄원이 있고, 여섯번째는 이 세상 모든 자연의 대 변혁이 있으면서 큰 심판이 임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마지막 일곱번째 인을 뗄 때에는 일곱 나팔의 재앙이 나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통제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신데, 마지막 최후의 대 심판을 말합니다.
이 인을 떼는 대 심판의 예고 가운데 한 장면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다가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하나님께 의로운 심판을 호소하는 모습이 다섯 번째 인을 떼는 오늘 본문입니다. 자신들의 피를 신원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심판이 다 되어가고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피흘리기까지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가 언제입니까? 아무리 진리의 말씀을 전해도 더 이상 말씀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입니다. 그 때는 역사가 더 이상 진행되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세상 역사는 구속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을 아직 심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직도 회개하고 돌아올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순교자들의 탄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입니까? 11절에 아직 순교자의 수가 덜 찼기 때문에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언뜻 들으면 하나님께서 순교자의 수를 미리 정해놓고 그들이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순교자의 수가 덜 찼다는 말은 아직 교회에 대한 박해가 끝나지 않았고, 영적 싸움이 계속 될 것이라는 다른 표현입니다.
교회는(성도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싸움을 끝내고 쉬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죄가 있고, 악한 사탄의 활동이 있는 이상 교회는 싸움을 끝낼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수가 차기까지’라고 하신 것을 보면 핍박의 한계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무한히 핍박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어느 한계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의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오늘도 싸우라고 하십니다.
그 일례들을 이제 보실 것입니다. 이 기철 혼혈인(이태리계 백인 군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 조 은령 감독(뉴욕대 영화과를 졸업하고, ‘스케이트’라는 단편 영화로 유명한 칸 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김 선일 형제(매우 겁이 많고 소심한 친구가 이라크 선교 비전을 가지고 일하다가 죽은), 김 상렬 형제(서울 사랑의 교회 순장 김 종준 이대 교수의 아들로 19살에 태국에 단기선교를 갔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그리고 한 재성 선교사(카자흐스탄에서 강도들에게 아내 김 진희 선교사를 잃은)의 모습을 김 우현 감독이 담았습니다.
우리 나라를 위하여 순교한 외국 사람들의 은혜에 갚으면서 이제는 세계 선교에 앞장서서 일하는 우리의 선교사들이 오늘도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하여, 진리의 말씀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희생하면 반드시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본을 보여주셨고, 순교자들의 피가 증거하고 있고,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뿌려놓은 열매를 보면서 깨닫지 않습니까?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의 신앙을 본받아 한 알의 밀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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