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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4:4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621    
[12/4/05] 하나님의 친구
하나님의 친구 (행 7:1-8)
수년 전에 ‘친구’라는 영화가 한국에서 크게 흥행에 성공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 비데오를 구해서 본 적이 있습니다만, 친구를 위하여 목숨도 버리는 진한 사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준 것으로 압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노래 중에서 연인들의 사랑을 노래한 다음으로 많이 불려지는 노래의 주제가 친구에 관한 노래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참된 우정을 사모합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좋은 친구는 인생에 있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석과도 같습니다. 아니 내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친구가 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좋은 친구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친구 관계는 서로 마음이 맞고 만나면 무엇이든지 나눌 수 있기에 즐겁고, 만날 때마다 선한 일을 하는 관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요나단이 그러했고, 중풍병자를 메고 지붕을 뚫고 예수님께로 내렸던 네 친구가 그러했으며, 엘리야와 엘리사도 비록 선후배,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친구 관계였습니다. 역사도 증명하지만,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좋은 친구 때문에 삶이 윤택해지고, 새로운 삶을 누리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친구는 사람의 얼굴을 빛나게 합니다(잠 27:17). 여러분들에게 이런 좋은 친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그 관계를, 그 만남을 잘 가꾸어 가셔야 합니다. 즉 좋은 친구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어떤 친구 관계보다 가장 좋은 친구 관계는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러한 한 사람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사 41:8) 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벗, 친구였던 아브라함입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산헤드린 공의회에 성전과 율법을 비판한다는 죄목으로 고소를 당하였을 때에, 그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변론하는 긴 설교를 하던 중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하는 가운데(2절-50절), 그들이 존경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를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었느냐? 율법이 있기 전에 있었던 너희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었느냐는 것입니다. 왜 성경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라고 합니까?

한 마디로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슨 말씀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자신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말씀하셔도 믿고 행하였습니다. 그 보여준 행실에 대한 예를 스데반이 다시 설명을 합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이 있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2절하-4절) 하였습니다. 세계 4대 문명발상지 중 한 군데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은 온 친척들과 살고 있었습니다. 당대 부러울 것이 없는 부자로, 많은 우상들을 섬기는 곳에서 그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장사꾼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편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그런 환경을 떠나기를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전에 가보지 못한 험난한 길을 가라고 하시니,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아무 말 하지 않고 아버지를 설득하여 짐을 꾸리고 떠났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거의 다 왔다 싶을 때에 하란이라는 곳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아버지 데라를 장사 지내도록 하고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에 도착하면 거기서 금방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5-6절)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하였지만, 자식이 생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 앞으로 자식을 줄텐데 그 자식의 후손들이 진정한 이 땅의 소유자들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수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기에 아내의 말에 비록 잠시 믿음이 흔들려 첩 하갈의 몸에서 서자 이스마엘을 갖지만, 하나님께서 서자(庶子)가 아닌 친자(親子)를 주시겠다고 다시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비록 나이 많아 늙어 죽을 날이 가까웠지만, 이번에는 그 약속을 확실히 믿습니다. 정말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 100세에 아들 이삭을 받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8-22)! 정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란 바로 이렇게 바랄 수 없는 때에 바라는 것이요, 전혀 불가능해 보일 때에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분으로 정말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리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 귀한 아들 이삭이 청소년으로 자랐을 때에 하나님께서 제물로 바치라고 하였을 때에도 아무 말없이 모리아 산에 도달하여 정말 그 아들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에 좋은 일들을 주실 때에는 잘 믿습니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공부도 잘 하고, 직장에서도 진급이 되고, 사업체도 번창하고, 아픈 몸도 낫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들으면 신나고, 하나님 정말 멋진 분이라고 고백하며 찬송이 저절로 커지며 얼굴 빛이 환하여 집니다. 그러나 튼튼하던 몸이 갑자기 약해지며 병이 들고, 가정에도 문제가 생기게 되고, 잘 되던 사업체도 어려움을 만나게 되고,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가 되고 하면, 갑자기 온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고,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신 것 같아 실망하고 좌절하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이런 태도를 불신앙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백세에 받은 아들, 약속으로 받았다고 생각했던 친자식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였을 때에 기꺼이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아마 우리 같으면 ‘하나님, 지금 잘못 말씀하신 것이지요. 설마 우리 하나님이 그런 분이실까? 제가 잘못 들었겠지요. 언제 하나님께서 사람을 제물로 받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것은 우상신들이나 요구하는 것인데요’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각은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아마 주신 이삭을 10여년, 20년 가까이 키워오면서 함께 보내었던 시간들에 감사하면서, 이삭을 데려가시면 또 자식을 주셔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자손의 축복을 하늘의 별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미리 준비하신 양을 대신 번제물로 드리라고 하면서 이삭에게 손 대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테스트에 아브라함은 합격한 것이지요. 이렇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던지, 무엇을 말씀하시던지 그저 믿고 따라갔던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하나님의 벗, 친구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삭 후에 아곱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수장들을 낳아 70여명이 애굽으로 이주하여, 이삭의 후손들이 400년을 다른 땅,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괴로움을 당하였지만(7-8절), 결국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할 때에는 이백만이 넘는 그 자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나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15절)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종이면 주인이 자신의 일을 다 말하지 않지만, 친구이면 비밀이 없이 다 털어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계시한 말씀들을 다 터놓고 우리에게 알게 하셔서, 그 마음을 알도록 깊은 교제를, 사랑을 나누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러한 주님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따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친구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 큰 사랑을 깨달아 알며, 경험했다면 주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하면서 그 말씀을 따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주님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다 털어놓고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도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고전 13:7) 하였습니다. 상대방을 믿을 수 있어야 다 털어놓고 이야기할 것 아닙니까? 순전히 믿으세요. 하나님을 순수하게 믿으세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세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 치르도록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에 그대로 순종하셔서 그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님을 보내시면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 28:20). 참된 친구가 아닙니까? 늘 같이 옆에 있어주는, 동행해 주는 친구가 참된 친구이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와 친구 관계를 맺기 원하시는데 우리가 멀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까?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대화하지 못하고, 교제하지 못하여서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버릴 수는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9)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친구라면,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우리 주님이 우리의 친구라면 이 세상에서 그 무엇이 부럽겠습니까? 다윗 왕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삼하 7:9) 하였습니다. 아니 대통령의 친구만 되어도 목에 힘주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친구이면 얼마나 존귀한 자입니까? 적어도 우리는 그런 자긍심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일 뿐 아니라(요 1:12),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목숨까지 주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친구입니다. 늘 외로울 때 함께 해 주는 친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참된 친구로 지내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불렀듯이 우리를 향하여 ‘나의 친구’라고 부르기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처럼 온전히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시는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이성과 달라도,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믿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참된 친구가 되기로 헌신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된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듯이, 하나님과 모든 일에 대화를 나누셔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하나님을 알려고 하셔야 합니다. 아가페 사랑은 올바른 지식을 기초로 합니다. 무작정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정이 깊어지려면 자주 교제를 갖고 대화와 나눔이 있어야 하며, 서로를 잘 알려고 하며, 잘 들어주고 하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친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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