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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5:1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715    
[8/9/06] 치유하시는 예수님
치유하시는 예수님 (사도행전 9:32-43)
아마도 우리 인생살이에서 자주 괴롭히는 것이 병, 육체의 아픔일 것입니다. 사탄 마귀는 자주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건드려서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사역 가운데 많은 부분이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직접 병을 치료해 주시거나, 선지자들을 사용하셔서 치료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하) 하였듯이,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바와 같이 사울이 주님의 은혜로 회심을 하고, 아나니아와 바나바에 의하여 세움을 받고, 다메섹의 제자들에게와,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도 인정을 받은 후에 힘써 주의 이름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고, 그의 고향 다소로 피신하여 간 후에,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고 있던 그 때(행 9:31), 오늘 본문은 다른 한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울을 중심한 이야기를 접고, 사도 베드로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방으로 두루 심방하고 있었습니다(32절). 여러 지역을 심방하는 가운데 두 곳에서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25 마일 떨어진 룻다가 그 한 지역이었는데, 베드로는 거기서 8년 동안 중풍으로 누워있던 애니아라는 사람을 주님의 능력으로 고쳐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34절) 하였습니다. 마치 한 중풍병자를 네 친구가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고침을 받으려 할 때에, 예수님께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막 2:11) 하였을 때에 그 중풍병자가 곧 일어나 상을 가지고 나간 것과 유사한 모습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기적의 초점을 베드로가 아닌 예수님께 맞추게 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성령께서 그렇게 기록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 베드로 자신도 이 일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아닌 예수님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여기 ‘낫게 하시니’는 헬라어 원어에 현재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바로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너를 치유하시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 베드로가 아직 룻다에 있을 때에 근처 지중해 항구도시 욥바에 있는 주의 제자들이 두 사람을 보내 급히 와 달라는 간청으로 욥바에 가게 되었습니다(38절). 다비다(아람어) 혹은 도르가(헬라어)라고 하는 한 여자가 병들어 죽었는데, 그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에 열심을 내어 심히 많이 봉사하던 사람이었는데, 특히 모든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지어주며 극진한 사랑을 베풀었습니다(36절하, 39절). 돕고 섬기는 은사를 사용하여 열심히 봉사하던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오니까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며 슬퍼하는 과부들이 그녀가 살아있을 때에 만들어준 속옷과 겉옷을 내어 보이면서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즉시 장사를 지내는데, 욥바라서 그런지 베드로가 가까이에 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부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즉시 장사를 지내지 않고, 다만 시신을 씻고 다락방에 뉘여 놓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을 다락방에서 나가게 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시신을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40절) 하였더니, 그녀가 눈을 뜨고 일어나 앉는 것이었습니다. 죽었던 자를 살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죽은 자를 세 번 살리셨는데,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실 때(눅 7:15)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막 5:41), 그리고 마르다와 마리아의 동생 나사로를 살리실 때(요 11:43) 모두 베드로가 주님 곁에 있었는데, 마치 예수님처럼 다비다를 살린 것입니다. 이 때에도 역시 초점이 베드로가 아닌 예수님께 맞추기 위하여 성령께서 이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베드로도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살린 것입니다.
즉, 모두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요,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베드로를 다만 그 능력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마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40년 된 앉은뱅이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키자 베드로를 보려고 우르르 몰려든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 하면서, 자신을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나사렛 예수님께 돌려놓던 베드로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모든 일을 주관하고 계시는 주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오늘도 역사하시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오늘도 병을 고치실 수 있으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물론 일반 은총(은혜)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의학을 통하여, 약을 사용하여서도 병을 고치십니다. 그러나 특별 은총(은혜)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성령님의 역사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의사의 손길을 하나님께서 도우셔야 하는 경우입니다. 아무리 의술이 좋은 의사라도 인간인지라 실수하거나 잘못 진단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의사도 못 고치는 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만 고치실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릎 꿇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치유하시는 은혜를 구하셔야 합니다. 안 고쳐주실 때에는 무슨 뜻이 분명히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고쳐주시기를 더욱 원하시는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병 고침을 받고, 죽었다가 살아난 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눈 여겨 보셔야 합니다. 중풍병자 애니아가 고침을 받고 나자,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35절) 하였습니다. 나음을 입은 애니아를 보고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또 병들어 죽었던 다비다가 살아난 것을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42절) 하였습니다. 즉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 결과는 매번 동일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던 자들이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에는 서원을 하셔야 합니다. ‘고쳐주시면 믿지 않는 내 아내를, 내 남편을, 내 부모를, 내 자식을, 내 친구를, 내 이웃을 주께로 인도하겠습니다’라고 하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사와 장로,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사용하신 것처럼 오늘날도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도들의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약 5:14-15)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육체의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적인 병입니다. 영적으로 병들면 육체도 망가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영적으로 중풍병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살아있지만 아무 일에도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남에게 짐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풍병자처럼 자신의 몸 하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누군가가 거들어 주어야 간신히 영적 음식을 받아 먹고 생명만 유지하는 사람, 영적인 중풍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말은 많지만 하는 일이 없고, 생각은 하고 아는 것은 많아도 전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또 마음에 심한 상처로 인하여 영적으로 병든 분도 주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사탄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믿는 자들을 넘어뜨리려고 하기 때문에 별 일이 아닌 것 갖고도 마음에 시험을 주기도 하고, 사람들을 미워하게 합니다.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고, 주위 사람들까지 힘들게 합니다. 괜히 짜증이 나고, 원하지 않는 말을 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치유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셔야 하며, 기도를 부탁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의 많습니다. 아무리 성품이 착해도, 인간적인 선행을 많이 하여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고, 죄 사함을 받지 못했다면 영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릅니다. 하나님에게 떠나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음식을 받아 먹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죄를 죄로 보지 못합니다. 그런 삶은 어딘가 어둡고 아무에게도 유익이 되지를 못합니다. 방황하며, 우왕좌왕하다가 비참하게 끝나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을 위하여 누군가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도 그 영혼을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하여 드리는 중보기도가 중요합니다.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오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도 들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진리의 말씀을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하셨고,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합니다. 관심을 쏟고, 밀알처럼 희생하여야 합니다. 믿지 않는 남편이 있습니까? 누구보다도 믿는 아내가 사랑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까다로운 시어머니에게는 믿는 며느리가 사랑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도 사랑을 쏟으며 손을 내밀어 진리의 길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의 능력을 맛보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주일에도 든든히 서가는 교회를 살펴 보았습니다.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평안하고 주를 경외하며, 성령의 위로가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흥하는 교회는 그러한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교회입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치유가 있는 교회입니다. 육적으로, 영적으로 병들고 죽었던 사람들이 주님의 능력으로 치유함을 입고 건강을 회복하여, 자신의 사명을,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주님을 찾게 되고, 그들도 복음을 만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함을 입는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성경책인 말라기서 4장 2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400년 후에 빛되신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병든 자들을 치료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탄 마귀의 흑암의 권세를 깨치시고 죽음에서까지 부활하신 분입니다. 승천하신 후 성령님을 보내셔서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아프신 곳이 있습니까?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능력의 이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릎 꿇고 기도하십시오.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십시오. 물론 의사도 찾아가시고, 약도 드십시오. 그러나 살아계신 치료의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쳐주실 줄로 믿습니다. 고침을 받은 모습을 보고 분명히 우리 주님께로 돌아올 영혼들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만 영광을 받으시는 일인 줄 믿습니다.
아니 영혼의 질병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심령에 깊은 상처가 아직 치유가 되지 않아서 괴로워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말씀을 붙잡고 기도로 주께 나가십시오. 주위에 영적으로 성숙한 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십시오. 사탄 마귀가 우리 주님이 무서워 도망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 영혼을 애타게 사랑하는 열정으로 흘리는 눈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을 때에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들고 죽은 영혼들을 살려 냅시다. 우리 교회를 찾는 이마다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향기가 널리 퍼져 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치료 받는 영혼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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