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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8-05-26 (월) 08:4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08    
[5/25/08] 위기를 만날 때
위기를 만날 때 (사도행전 20:1-12)
‘열길 물 속은 알 수 있어도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참으로 모를 것이 사람 속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위기를 닥쳤을 때에 ‘어떻게 반응하는 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상황이 좋을 때, 편안할 때는 잘 모릅니다. 일이 터졌을 때에, 폭풍이 불어 닥칠 때 나타납니다. 즉 정말 신앙이 있는 사람은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 다르게 반응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에 살펴본 19장 후반부에서 데메드리오를 비롯한 아데미(다이애나) 여신의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일으킨 소동으로 인하여 바울과 동역자들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방 관원인 에베소 서기장이 군중들을 설득하고, 흩어지게 하였습니다. 그 후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면하고 작별한 후에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1절). 마게도냐는 소아시아 반도 맞은 편 지역으로 아시아에서 에게해를 지나 유럽대륙으로 건너면 만나는 반도로 당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의 도시가 있는 곳입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에서 자신이 복음을 전했던 이 지역들을 찾아 다니며, 여러 말로 제자들을 격려하였습니다(2절). 그리고 나서 헬라(그리이스)로 가서 석달을 머물렀습니다. 헬라는 고린도와 아테네 등이 있는 아가야 지역을 뜻합니다. 아마 그곳에 있는 가이오의 집에서 석달 있으면서 로마서를 기록했을 것으로 봅니다(롬 16:23). 바울은 거기서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가려고 했으나 유대인들의 공모(음모)로 인하여 다시 마게도냐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3절). 이로 말미암아 바울은 다시금 마게도냐의 여러 성도들과 교제를 하였고, 그 중 몇 사람이 바울과 동행하게 되었었는데 그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4절). 그 유명한 바울에게는 이렇게 동역자들이 곳곳 마다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배를 타고 드로아에 도착하여 먼저 도착한 동역자들과 재회하며 일주일을 머물게 됩니다(6절). 일주일 동안 드로아에서의 사역에서 사도 누가는 안식 후 첫날, 즉 주일 저녁 집회에서 있었던 한 사건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떡을 떼기 위하여 모였다고 했습니다(7절). 이 말은 성찬을 비롯한 예배를 말합니다. 이 예배 시간에 설교를 좀 길게 밤중까지 하게 되었는데, 유두고라는 청년(young man)이 창에 걸터 앉아서 설교를 듣다가 깊이 졸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설교가 길어지다 보니까 졸음을 못 이겨서 삼층 누각에서 떨어져 죽고 맙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직업은 의사입니다. 유두고가 삼층에서 떨어져서 졸도하여 잠시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숨을 거두고 죽은 것입니다.
사람이 육신적으로 너무 피곤하면 졸 수 밖에 없습니다. 날씨도 덥고, 사람들이 가득찬 방에 사람들의 열기와 후끈했을 것이며, 당시 에어컨도 없는데, 등불을 많이 켰다고 하니 산소가 부족하여 피곤한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설교라 해도 졸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제 설교가 그렇게 길지가 않은데도 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민 생활에 육신이 너무 피곤하여 그러려니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만, 그래도 아침이고, 에어컨도 있고 해서 조는 사람이 너무하다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아예 처음부터 조는 분들이 계십니다. 습관적으로 말입니다. 그런 분들은 참으로 걱정입니다. 떨어져 죽을까봐 말입니다. 영적으로 말입니다.
여러분! 그 때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상상을 해 보십시오. 바울이 얼마나 당황을 하였겠습니까? 집회 도중에 사람이 졸다가 아래층으로 떨어져서 죽었습니다. 위기가 닥쳤습니다.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도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도도,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평신도도 이렇게 갑자기 위기를 만났을 때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참 신앙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위기를 만날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세 경우로 나타납니다.
첫째 반응은, 비난하는 경우입니다. 죽은 유두고를 비난합니다. 아니 그렇게 피곤하면 집에 있지 왜 집회에 와서 졸다가 온 교회를 어렵게 하느냐 비난합니다. 오늘날의 말로 이야기하지면, ‘정말 한심하다. 그렇게 졸리면 바닥에 앉아서 졸지 왜 창가에 앉아서 졸았느냐. 그리고 안내 위원들은 무엇했느냐. 좀 살펴보지. 거기 앉도록 하지 말고 아래에 앉도록 하지’ 비난합니다. 바울을 향해서도, ‘아무리 은혜로운 말씀이라도 그렇지. 웬 설교를 그렇게 오랫동안 해서 이런 일이 생기게 했느냐? 너무 밋밋하게 설교해서 그가 졸지 않았느냐’는 둥 비난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비난이 현재 당한 위기를 해결해 주느냐는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더 서로 상처만 깊게 할 뿐입니다.
둘째 반응은, 자책하는 경우입니다. 스스로든지, 아니면 이런 비난을 받고 ‘나 때문에’ 라고 자책하고, 자학하는 것입니다. 죄책감에 빠지는 것입니다. 바울 같으면, ‘내가 설교를 너무 오래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좀 쳐다보고 설교하면서, 사람들이 졸음을 못 참는 것 같으면 그만 할 것을. 하여튼 마이크만 잡으면 말이 길어져서 문제야. 아니면 사모라도 있었으면 보고 뒤에서 그만 하라고 사인을 주었을텐데. 왜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하면서 죄책감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자책한다고 문제가 해결됩니까? 평안이 찾아옵니까? 위기를 넘길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더 힘들어지고, 주위에 악영향만 미칠 뿐입니다.
셋째 반응은,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하려는 경우입니다. 좀 배우고,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내는 반응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유두고가 노예로서 너무 일을 많이 하여 피곤해서 그랬지. 사람이 가득찬 방안에 열기가 가득찼고, 등불은 많이 켜 있고, 공기도 잘 통하지 않아 탁하여 창문을 열고 창가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설교를 듣다가, 졸음을 못 이겨 떨어져 버렸는데 어떻게 하겠느냐’ 라고 설명하고, 그냥 넘어가자는 사람입니다.
이해는 되지만, 그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바울이나 유두고의 가족이나 온 교인들이 당한 현재의 어려움을 해결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상처와 고통만 남을 뿐입니다.

그러면, 이런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참 신앙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엎드려’ 입니다. 숨이 끊어진 몸 위에 엎드렸다는 뜻은, 바울이 자기 몸을 그 위에 던졌다(threw himself on the young man)는 말입니다. 몸을 던진다는 의미는 첫째로, 그 위기의 상황을 피하지 않고 직면한다는 뜻입니다. 도망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직시한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를 만나면 위에 언급한 세 가지 반응 속에 그냥 도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는 사람은 결코 도피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이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정면돌파를 하려고 합니다. 되어지는 모든 일 뒤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자기 몸을 던집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아무리 어려운 현실이라도 도피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절대주권을 믿고 정면돌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몸을 던진다는 의미는 기도하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이 그 죽은 유두고 몸 위에 자기 몸을 던져 전심으로 기도하며 그 몸을 안았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도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에 그렇게 살렸듯이(왕상 17:20-21), 열왕기하 4장에 보면 나이 많아 늙은 수넴 여인에게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가 일년 후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 그대로 일년 후에 그 여인은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라서 어느날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어머니의 무릎에서 죽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다시 찾아가서 하소연을 합니다. ‘제게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을 때에 저를 속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아들을 주셨지만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 때에 엘리사가 자신의 집 침상에 그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보고, 문을 닫고는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왕하 4:33-34)고 하였습니다. 엘리사 자신이 그 아이의 위에 엎드렸다는 것이 바로 온 몸을 그 아이의 몸에 던진 것입니다. 무엇하면서 던졌습니까?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사람들은 위기를 만났을 때에 몸을 던져 기도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이 하나님 되셔야 한다고 외칩니다. 몸을 던져 기도하니, 자신의 전부를 던져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위기를 만날 때에 몸을 던져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시편들을 살펴 보십시오. 그는 위기를 만날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예를 들면 사울 왕에게 쫓김을 당하며,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에도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이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셨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시 13:1-5)!

물론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몸을 던져 기도한다고 해서 죽은 자들이 다 살아나지 않습니다. 죽을 병이 다 고쳐지지 않습니다. 문제들이 우리가 원하는대로 다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우리가 몸을 던져 위기를 직면하면서, 힘써 기도하면 위로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않게 받았더라” 하였습니다. 여기 중요한 단어가 “위로” 입니다.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몸을 던져 기도하여 살아난 아이를 보고 위로를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몸을 던져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돌파하며 힘써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때문에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위에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참 신앙의 모습을 보고 위로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아! 그런 상황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도망하지 않고 앞을 향하여 몸을 던지며 나가는구나. 아! 그런 상황에서도 몸을 던져 기도하는구나.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신가 보다’ 하면서 위로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응답을 하시는 것을 보게 되면서 말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사람의 됨됨이, 속내는 위기가 닥쳤을 때 진짜 모습이 나타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일이 없을 때, 평온할 때, 좋은 일이 계속될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위기를 만날 때, 큰 문제에 부딪쳤을 때 나타납니다. 진짜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 말입니다.
참 신앙이 있는 성도라면 위기를 만났을 때에 도피하지 않습니다. 도망가지 않습니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고, 그 뜻을 믿고 몸을 던져 정면돌파를 합니다. 책임을 감당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몸을 던져 기도합니다. 온몸으로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를 하십니다. 여러분 주위에 계신 분들에게 위로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위기를 만났습니까? 어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이 발동할 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을 정말 신뢰하며 부딪힐 때입니다. 몸을 던져 기도할 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던 방법으로 응답하실 분입니다. 그렇게 헤쳐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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