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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11-14 (월) 07:0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62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요 16:25-33)
지난 주일에는 우리가 환란을 당하더라도 잠시 후면 끝이 온다는 소망을 붙들고 오히려 주님 주시는 기쁨으로 이겨나가자고 했습니다. 우리dml 세상 사는 목적, 그 의미가 분명하다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있다면 얼마든지 이겨나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가 환란 가운데서도 그렇게 담대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몇 시간 앞 둔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마지막 교훈의 결론입니다. 마지막 33절을 보시면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님은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세상을 이기셨다고 합니다. 강한 의지를 나타내 보이십니다. 사탄을, 세상을 확실하게 이기실 것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이런 주님을 믿는다면, 주님 사랑을 확신하면서 주님을 사랑한다면 제자들도, 우리들도 비록 이 세상에서 때로 환란을 당하지만 반드시 세상을 이길 수 있으니 “담대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단어의 헬라어 원어의 의미는 ‘마음을 굳세게 하라(take heart), 용기를 가져라(take courage)’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제 제자들을 떠나게 되면 그들이 근심하게 되고, 환란을 만나게 될텐데 그들에게 꼭 있어야 할 믿음과 사랑 두 가지를 더 말씀하십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16절부터 24절까지는 소망을 말씀하셨고요.
우선 25절에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고 하셨습니다. ‘비사’란 비유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주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비유를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분명하게 말씀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때가 왔기에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28절)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사도 하지 아니하시니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서 나오심을 우리가 믿삽나이다”(30절)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31절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이 이제야 믿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죄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고,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온 세상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신다는 이 믿음이 있어야, 지난 주일 앞의 문맥에서 살펴본 대로 잠시 후에 이루어질 소망을 가지고 환란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하시게 됩니다.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27절)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이 우리의 죄 때문에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불신의 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순간 그 담이 허물어 졌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랑이 거침없이 우리에게 부어졌고, 그 큰 은혜가 부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 27절에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고 하신 것은 누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아! 하나님께서 정말로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는구나’라고 자신이 직접 인격적으로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체험적으로 그 사랑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무슨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큰 사랑이 환란을 이기게 합니다. 이 사랑이 세상의 모든 악한 것과 시험을 능히 이기고도 남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확신을 가지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담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7-39)고 말씀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께로 다시 간다고 하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니(30절), 주님께서는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32절)고 하셨습니다.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은 하지만 제자들이 얼마나 연약한 자들입니까? 그들은 잠시 후에 예수님께서 붙잡히고 심문을 당하시며 고난을 받게 될 때에 모두 주님을 버리고 다 도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석 제자였던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 이렇게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제자들이 세상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또 다시 부르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강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을 믿음으로, 죄 용서함을 받고, 성령님의 역사로 강해지고 담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제자들이 다 주님을 떠나도 예수님은 혼자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항상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수난 속에서도 잘 이겨내신 우리 주님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있으면 우리의 감정이나 기분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시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이 비결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려고, 33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때 다른 것 붙잡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으면 믿음이 더해지고, 하나님 사랑을 확신하면서 모든 환란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과 사랑으로 악을 이기고, 사탄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33절상)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 안에서 어떤 환란과 시험이 와도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을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입니다. 26절을 보시면,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는 말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환란을 당하는 날 아니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님을 보내주시는 그 날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는 말이 아니니”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 중간에 아무도 필요 없게 되어서 직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천주교의 가르침처럼 그 중간에 마리아의 기도나, 성자의 기도, 혹은 신부의 기도가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그 중간에 끼지를 않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직접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나 성령님은 옆에서 도우실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를 갈라놓았던 휘장이 찢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직접 기도해야 합니다. 환란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기도에서 나옵니다. 믿음이 더해지고, 사랑이 더해지고, 소망이 더해지는 것도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죄악을 대적하는 힘도 기도할 때에 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마귀를 묶어 놓습니다. 기도하면 성령께서 문제를 풀어주십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바울가 실라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기도하면서, 곡조 붙은 기도인 찬송을 하니 옥문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아니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많은 환란을 당하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마귀가 득세하고, 죄악이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담대하라고 명하십니다. 이유는 주님께서 세상을 이미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기에 우리도 주님 안에서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 힘과 용기를 주님께서 주십니다. 우리 힘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복잡한 우리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에 굳게 서면 승리하게 됩니다. 죄 용서의 확신을 가지고, 그 큰 사랑의 확신을 가지고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 소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승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을 위하여, 자신이 감당할 십자가를 위하여 기도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락방에서 권면하신 말씀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곧 만날 큰 환란 속에 담대히 세상을 이기려면 꼭 필요한 것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로 인한 기쁨과 평안을 제자들이 소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고 하였습니다. 앞서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다 그렇게 세상을 이겼습니다. 이 세상을 평탄하게 산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모세도, 다윗도, 이사야도, 예레미야도, 바울과 12제자들도 다 이 세상에서 환란을, 고난을 겪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런 사람들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죽음으로 사실 승리의 면류관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어떤 어려움을 만났을 때, 결정적인 순간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까? 믿는 사람답게 담대히 대처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믿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만난 환란으로 인하여, 아니면 어떤 두려움으로 인하여, 혹은 외로움으로 인하여 여러분의 심령에 기쁨이 없습니까? 평안이 없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확실히 믿으십시오. 그 사랑을 확신하십시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분명히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 기쁨과 평안으로 이 세상을 담대히 이기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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