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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11-18 (금) 05:58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571    
하나님 백성의 표시(신 14:1-21)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선택한 민족이었습니다. 이방민족들과는 다르게 살아야 했습니다. 특히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할 때뿐만 아니라 40년 광야 생활에서 놀라운 체험들을 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농사도 지을 수가 없었고, 장사도 하지 못하여 돈을 벌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모세의 인도로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가고, 서라는 곳에서는 서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무도 그들 중 굶어 죽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들이 모세가 하는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으로 모든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은혜와 사랑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도라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님 십자가의 보혈로 거룩하게 하신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표시가 무엇인지, 이 세상을 살 때에 구체적인 그들의 삶의 특징이 무엇인지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한 마디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죽은 자에 대한 태도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1-2절). 사람의 종교성이 잘 드러나는 때가 죽은 사람을 장례할 때입니다. 어떤 이들은 곡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염불을 외우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가족이나 친한 사람이 죽으면 세 가지 마음을 갖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죽은 자의 영혼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좋은 곳에 가도록 비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와 죽은 자의 관계를 통하여 죽은 자의 그 무엇이라도 자기 안에 남아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나 천주교에서 염불을 외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가 무엇인가 섭섭하여 죽은 후에 자신들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교에서 죽은 자를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그 옛적 가나안 땅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사람이 죽었을 때 두 가지 의식을 했는데(1절), 하나는 살아있는 가족의 몸을 칼로 베어서 피를 흘리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죽은 자와 산 자가 좀 더 하나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는 눈썹 사이에 있는 이마의 털을 민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야 죽은 자에 대한 예도 되고, 자신들에게 해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죽은 자와 어떤 연관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민이요, 하나님 기업의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2절). 사람이 죽었을 때에 우리 믿는 자들의 장례보다 더 소망과 은혜가 넘치는 장례는 없습니다. 이유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돌아가신 분에게 생명을 주셔서 한평생 살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생명이 이 세상에서 사는 날을 다 마쳤음을 하나님께 엄숙하게 보고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다 살았고,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다른 세상으로 갔습니다. 모든 인간들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는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한평생 가지고 사용하게 하신 육신을 땅에 묻힘으로 반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거나, 제사를 지내거나, 죽은 자를 위하여 산 사람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는 죽음으로서 그의 모든 할 일을 끝낸 것이고, 살아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아직 살아있는 생명을 감사하며 살아있는 동안 이 생명을 가지고 아름답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살아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3-21절). 부모는 그 자녀들이 건강하고 영양이 풍부한 좋은 음식을 먹기 원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좋은 음식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죄를 먹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르침을 주시기 위하여 그들이 먹을 수 없는 짐승을 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왜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먹지 못하게 하셨을까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기 원했습니다.
3-6절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짐승들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구별하셨습니다. 즉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초식성 짐승만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육식성 짐승들은 먹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고기들은 너무 질겨서 먹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옛날 목사님들의 알레고리칼한 상징적인 해석의 설교에서는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이것은 우리 신자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를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세상과 굽이 갈라져야 한다고 하면서 술집이나 기생집, 도박장 등에 가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또, 되새김질하는 짐승처럼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되새김질해야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좀 무리가 되는 해석이지만,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이해를 할만 합니다.
또한 7-8절을 보면 잡식성 짐승도 먹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돼지나 개와 같은 짐승들은 닥치는 대로 먹습니다. 아무 것이나 먹기 때문에 정말 지저분합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실제로 그런 짐승들을 먹었을 경우의 위생을 고려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육식성이나 잡식성 짐승을 먹지 못하게 하면 사람들은 그런 짐승을 키울 생각도 하지 않고, 사냥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먹도록 허락한 짐승들에게만 신경을 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거의 모두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제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고기들 중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셨습니다(9-10절).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물고기를 먹도록 했습니다. 이런 물고기들은 육식이 아니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없는 상어나 낙지 같은 것들은 모두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들입니다.
이 부분도 알레고리칼한 상징적인 해석의 설교를 들으면 우리 신자들이 비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영적인 갑옷을 입어야 하고 맨살로 돌아다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느러미를 가지고 언제나 저 천성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신앙이 되어야지 오징어나 게처럼 뒷걸음질, 옆걸음질 하는 신앙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새에 대하여서도 먹을 수 없는 것을 지정해 주셨습니다(11-20절). 이것도 가만히 살펴보면 육식성, 잡식성 새들은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독수리나 솔개, 매 등은 육식성이고 대단히 공격적입니다. 잡식성인 까마귀 같은 새는 주로 죽은 짐승의 시체를 파먹습니다. 올빼미나 박쥐 등은 육식성이기도 하지만 밤에 움직이는 특성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짐승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다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이 자연세계를 움직이시는데 하나 하나 다 필요합니다. 하지만 먹을 수 있는 것을 구별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짐승이나 물고기, 새 중에서도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21절). 마치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는 잡식성 짐승들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날 율법 시대가 아닌 새 언약의 은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이 모두가 적용이 되지는 않습니다.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구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되었기 때문입니다(행 10:9-16). 다만 참고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유가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지 못하게 하시고, 어떤 것들은 먹게 허락하셨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몸에 좋다고 하면 그 어떤 짐승도, 물고기도, 새도 잡아 먹습니다. 마치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먹을 것을 찾는 잡식성 동물들의 행동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런 모습으로 살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대로 살아야 합니다. 아무 것이나 마구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만 먹어야 합니다. 아무 철학이나 사상을 마구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만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이단 사상은 물론이고, 이교도의 사상, 뉴 에이지 운동이나 자유주의, 신비주의, 실용주의, 번영복음, 고대 수도원 생활에서처럼 도 닦으며 영성을 쌓아야 한다는 emerging 교회 운동 등이 얼마나 파고 들어오는지 모릅니다. 정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 15:11)고 말씀하셨습니다.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생각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마음과 생각에 기록된 사람, 성령이 심령에 인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너는 너의 하나님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2절)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하나님 기업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신랑 예수님의 순결한 신부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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