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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11-22 (화) 00:5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98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고후12:1-10)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에 불신자들이나, 혹은 믿어도 엉터리로 믿는 사람들에게 불행이 닥치면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믿음이 좋은 분들에게 어려운 일이 닥쳐 고난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거나,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의아해 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죄가 있어서 하나님께 벌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죄성을 지닌 인간들은 그 정도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예외 없이 누구나 고난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고난을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 순간까지 없었다면 앞으로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욥 5:7)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는 신실한 주의 종들에게도 고난은 예외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욥도 엄청난 고난을 받았지만,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난 후에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자신이 돌보고 섬겼던 자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였고, 자신이 개척한 교회가 거짓 선지자들로 흔들리며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고, 개인적으로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고후 11:23-28).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육체의 가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많은 고통을 오히려 감사하며 살았음을 오늘 본문이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고난을 하나님의 관점(perspective)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어떤 어려움을 만날 때에 불평과 원망보다 감사의 생각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놀라운 영적 체험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환상과 계시가 많은 사람입니다(1절). 그의 영혼이 천국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2-4절). 본문의 셋째 하늘(2절)이나 낙원(4절)은 천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만약 오늘날 누가 그런 체험을 하고 주님으로부터 많은 환상과 계시를 직접 받는다고 한다면 얼마나 그것들을 자랑하고 다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합니다(5절). 왜냐하면 그에 대하여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기를 원했던 것입니다(6절).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를 하지 않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물론 거짓이 아닌 다 진실한 말들이지만 말입니다. 이유는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기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는지 잘 깨닫고 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7절)고 합니다. 여기서 ‘가시’라고 하는 것은 원어에 의하면 실제로 ‘말뚝’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마다 바울이 이야기하는 육체의 가시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육체적인 질병으로 안질이나 말라리아 열병, 아니면 류마티즘, 혹은 간질병 등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의 질병이 어떤 것이었던 간에 그것이 주기적으로 찾아왔으며, 그 때마다 그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는 무서운 병이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사탄의 사자라고 표현했겠습니까?
   그래서 그가 간절히 어떻게 기도했느냐 하면,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8절) 하였습니다. 바울이 세 번이라고 말하는 것은 한번에 40일 작정을 하고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동안 통틀어 120일을 육체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었습니까?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던 분이었습니다. 자기 설교를 듣고 졸다가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던 유두고를 살린 바울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자신의 육체의 질병은 못 고치고, 하나님께서 고쳐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7절에서 두 번씩이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 질병을 준 것은 자고(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서 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질병 때문에 교만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질병을 바라본 것입니다. 인간의 관점은 질병이 싫은 것입니다. 고통이 불행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다릅니다. 질병이, 고통이 바울을 연단하여 더욱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님 닮는 사람으로 성숙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론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이 세상에 가시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종류가 다를 뿐 각자 다 하나 이상 가시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가시를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시는 무엇입니까? 그 괴로운 가시로 인하여 여러분이 겸손하여져서 더욱 성숙하게 되고 주님을 닮아가게 된다면 오히려 그 가시에 대하여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가시 때문에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 성공하게 되니까 감사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코 가시가 불평의 조건이나 실패의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기도하고 해도 가시가 없어지지 않으면 가시를 없애려고 하지 마십시오. 가시를 바꾸려고 하지 마시고 나를 바꾸어야 합니다. 내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만약 가시 같은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를 이해하려고 하십시오. 그를 긍휼히 여길 마음을 달라고 하십시오. 축복하며, 격려하고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가시를 품을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 주십니다. 내가 달라집니다.
    육체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9절상)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가시가 있는 그대로 내게 감당할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가시 때문에 내가 약하여질 때, 겸손해질 때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가시 때문에 끝까지 교만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따라 가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깨달음 이후로부터 바울의 생각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9절하)! 육체의 가시로 말미암아 연약해진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고 기뻐하면서 오히려 자랑했더니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더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들에게 문제가 무엇입니까? 기도를 자주 안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무작정 고쳐달라고만 하는 기도, 반드시 내가 원하는 대로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한다고 고집하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안 들어주시면 안됩니다’라고 만 부르짖는 것이 정말 문제입니다.
   기도는 그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내 관점, 내 생각은 내려놓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달라고 부르짖는 것이 참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제 생각에는 이렇게 해결해 주시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제 눈에는 그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시면 내려놓지요.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부르짖는 것이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만약 모든 것이 우리 뜻대로 된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만하여 완전히 타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못하도록 육체의 가시들을 주십니다. 모든 것을 우리 뜻대로 되지 않게 하시고 자주 힘들게 하심으로 우리의 실체를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존해야 하는 피조물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만약 우리 중에 우리 혼자 힘으로 주님의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위험한 인물입니다. 이유는 그가 지금 교만한 자리에 있으며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그런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잘 넘어지는 사람인지 아시고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끝까지 주님을 붙들고 그 분께 매달려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니까요. 만약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 개인의 삶에, 우리 가정에 나타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만약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교회에 나타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심령에 부흥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새롭게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 주님의 능력을 체험했기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10절)!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가시에 대한 관점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뀌니 약한 것들을 싫어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기뻐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럴 때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해짐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감사할 제목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감사할 생각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관점으로만 모든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모든 것이 풍부해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전혀 감사할 제목이 없는 것 같은 분들이 감사하는 것을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관점을 바꾸면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지 선하신 뜻 안에서 바꾸실 것입니다. 내 믿음을 강하게 하시든지, 날 더욱 겸손하게 하셔서 주님의 인격이 드러나게 하실 것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할 대상을 감사할 대상으로 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일이 잘 되거나, 세상적으로 성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환경이 감사의 조건이 아닙니다. 내가 감사함으로 환경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주어진 열악한 환경을 변화시킬 능력을 받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서 일이 잘 되는 것입니다. 감사의 생각 때문에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부딪히는 여러 일들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가 너무 중요합니다. 세상적인 관점,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평과 짜증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인생이 불행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면 오히려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육체의 가시를, 약점을, 약한 부분을 남겨 놓습니다. 그 부분이 자기를 끊임없이 겸손하게 만들고, 그것 때문에 주님을 늘 의지하게 되어 그 약한 부분을 자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즉 우리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이 나중에는 자랑거리가 되고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관점을 바꾸게 하셔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절대로 모든 것을 다 주시기 않습니다. 은혜를 주어도 어느 정도 남겨놓고 주시고, 나머지는 아무리 기도해도 주시지 않습니다. 이유는 그래야 끝까지 주님께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고난의 풍랑을 만나게도 합니다. 그 풍랑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헤쳐 나가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에 우리가 더욱 성숙하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더 주님을 닮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관점을 바꾸십시오. 모든 일을 내 모든 형편을 다 아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십시오. 그러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우리의 고통은, 우리의 약한 부분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형편에서도 감사하게 됩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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