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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11-28 (월) 10:1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534    
주님의 기도(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대부분 신자들은 주님의 기도라고 하면 흔히 ‘주기도문’으로 불리는 마태복음 6:9-13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진짜 주님의 기도는 요한복음 17장입니다. 어떤 분들은 주님의 대제사장적인 기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기도의 내용을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두고 이 세상을 떠나기 앞서 어느 다락방에서 근심과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위로 하시고 격려하시기 위하여 13장에서부터 16장까지 길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시며 사랑을 표현하셨고, 첫 성찬식을 제정하셨으며, 천국의 영광을 이야기하시고, 무엇보다 자신이 떠나면 성령님이 오셔서 그들을 도와 주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격려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라는 기도에 대하여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서 붙어 있기만 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시면서,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지만 담대하라고, 자신이 세상을 이겼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1절). 아마도 큰 소리로 부르짖는 기도였기에 사도 요한이 다 들을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시며(1-5절), 그 다음은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으며(6-19절), 마지막으로 장차 세워질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20-26절).

오늘은 예수님께서 처음 하신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 평소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던 간절한 바램이, 가장 큰 소원이었기에 맨 처음으로 드린 기도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지난 3여 년 동안도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사셨듯이,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절하)고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먼저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은 이제 십자가 죽음이 임박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그 때를 인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그 계획을 신학적인 용어로 ‘하나님의 작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사”(갈 4:4)라고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영화롭게 한다’는 말씀을 두 번 하셨습니다. 한번은 아버지가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뜻입니다. 헬라어 원어에 의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드러내고 그 분에게 합당한 경배와 찬양을 돌리는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이 누군지 바로 알게 해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바로 알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릅니다. 예수님이 누군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님께서 가장 원했던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과 인자하심을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놀라운 성품들로 인하여 찬송과 경배를 돌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모든 일들을 다 성취하심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죽음으로써 하나님 사랑을, 하나님의 용서를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며 엄청난 죄를 범하여 진노를 받아 마땅히 죽어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오래 참으시고 그 진노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 퍼부으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용서하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바로 알고 믿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일, 즉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했던 일이 2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에게 시키신 일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 받은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생명입니다. 하지만 그냥 안 죽는 생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 죽는 생명은 지옥에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과 평안이 영원토록 계속되는, 살만한 가치가 있는 생명을 영원토록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영생이 어디서 옵니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3절)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깊게 말씀을 보셔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저 천국 가서 사는 삶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여기 ‘안다’의 헬라어 원어의 뜻은 그냥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피상적으로 막연히 아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여기 안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의 귀가 열리고 영의 눈이 뜨고 난 후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믿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 위하여 그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다는 것을 믿는 순간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노력으로는, 내 힘으로는 도저히 내 자신의 죄와 정욕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항복할 때에 자비로우신 ‘아바 아버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무섭지 않고, 심판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사랑스러운 아버지로 친밀하게 다가오시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기 전에 옳다고 믿었던 것이 틀렸음을 느끼게 되고, 전에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은 거짓과 속임수에 가득찬, 사탄 마귀들이 역사하는 세상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방향과 목적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의 빛 가운데서 허락하시는 은혜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기쁨과 평안을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미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참되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압니까? 믿습니까? 믿으면 믿을수록 하나님을 더 많이 알게 됩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믿으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생, 곧 자신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 곧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으면 영생이요 믿지 않으면 영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지금 믿지 않는 자들을 즉각 심판하셔서 지옥에 가게 하지 않으십니까? 그것은 우리 인간들에게 기회를 더 주어서 그들 스스로 충분히 생각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개개인을 존중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짐승처럼 다루지 않으십니다. 억지로 믿게 하지 않으십니다.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 다루십니다.
그러므로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믿지 못하시는 분이 계시면 지체하지 말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들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용서 받지 못하고, 누리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영안이 열리고, 영의 귀가 열려서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어서 이 놀라운 영생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 멘!!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5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세전에 가졌던 영화’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결코 세상의 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십자가였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죄를 이기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셔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었습니다. 1절에서도 말씀하셨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화롭게 되려면 먼저 예수님께서 영화롭게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앞에 놓고 영광이라고 해석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고통스럽지만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난 3여 년 동안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시고 많은 기적과 놀라운 일들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이제 최후의 결전인 십자가가 앞에 놓여 있는데, 이 일도 승리하실 줄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순종하시고 감당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내가 그들을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 43:7)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를 만드신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다가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에 예수님처럼 끝까지 순종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자신이, 가정이, 자녀들이, 직장 생활이, 사업이, 건강이, 시간이, 물질이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도구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면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목숨을 건다고 하면 여러분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부흥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믿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000여 년 기독교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영원한 표어인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을 보십시오. 개혁주의자들의 표어였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명령입니다.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나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아니라면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면 우리 각자에게 허락하신 십자가를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뚜렷한 목표가 없으면 고난의 십자가가 걸림돌이요, 불평거리요, 시험거리인 것입니다. 그저 하루 빨리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만 있다고 한다면 그저 고통스럽기만 한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 드렸지만 아무리 기도해도 없어지지 않는 십자가라면 어떤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주님처럼 달게 지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허락하신 십자가라는 진리를 깨달으면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것입니다. 오히려 그 십자가가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기도의 제목들입니까? 만약 여태까지 그렇게 기도하지 못했다면 오늘부터 기도를 바꾸시기 바랍니다. 물론 마음부터 바꾸셔야, 그런 기도를 드리게 되겠지요. 우리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면 당연히 기도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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