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017,727
오늘방문 : 747
어제방문 : 2757
전체글등록 : 3,841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4-08-17 (화) 09:3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701    
[8/15/04] 사망을 이기게 하심
사망을 이기게 하심 (야고보서 1:14-15)
오늘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복음, 하나님 사랑, 십자가, 구원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믿음 생활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요약한다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죄 지으면 사망이다’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망,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영적 사망까지 뜻하는 것입니다. 육체적 죽음 이후의 심판을 받는 사망, 이것을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서는 둘째 사망이라고 표현하고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후에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먹을 수 있으나 선악과 만큼은 먹지 말도록 명하셨습니다.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뱀(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심에 그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그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정녕 죽는다고 하신 말씀대로 불순종하는 바람에 죽고 말았습니다. 즉시 그 자리에서 즉시 죽지 않았으나, 목숨은 붙어있으나 죽은 자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을 피하여 숨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경이 말하는 사망은 분리, 관계 단절입니다. 김 동호 목사님께서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꿀이 흔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귀한 것이었습니다. 한 어머니께서 시장에 가시면서 꿀단지를 찬장 위에 올려놓고 아들에게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기침이 심하셔서 약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 아들은 그 꿀이 먹고 싶어 어머니가 시장에 간 사이에 그만 의자를 딛고 올라가 꿀단지의 꿀을 떠 먹었습니다. 먹은 자리가 표시가 나지 않아 괜찮지만, 불안하게 먹는 바람에 그만 의자에서 내려오다가 잘못 건드려 꿀단지를 깨버렸습니다. 깨어버린 것이 죄가 아니라, 어머니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 죄이지요. 이 아들이 어머니 오기를 기다릴까요? 그렇게 사랑하는 어머니이지만 오지 않았으면 할 것입니다. 인간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을 멀리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며, 축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런데 죄의 특징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생명이 끊어지는 것이며, 축복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사망과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너무 좋았습니다.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누리며 하나님과 사이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죄 지은 후에 하나님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사실이 범죄하기 전과 후에 나타난, 달라진 첫번째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만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고 부부 사이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즉 죄는 사람과의 관계도 단절 시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죄 짓기 전에는 두 사람 사이가 너무 좋았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가리켜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이라”(창 2:23)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네가 곧 나다. 완전히 하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천지 만물을 다 같이 소유한다. 그런데 죄 짓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고 물으니 아담은 답하기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3인칭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됨이 깨어진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바벨탑 사건을 아십니까? 노아의 후손들이 열국 백성들이 되어 나뉘어 졌는데, 당시만 해도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교만하여져서 하나님과 같이 높게 되어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지지 말자며 바벨탑을 쌓겠다고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내린 심판이 언어를 혼잡하게 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죄의 삯, 사망입니다. 어제까지 말이 통하던 사람들이 서로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말은 곧 마음의 표현입니다. 마음을 나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람 사이의 단절입니다. 교만으로 인한, 욕심으로 인한 죄로 말미암음입니다. 이렇게 죄는 사람 사이도 갈라 놓습니다.
사망의 또 다른 의미는 수치, 부끄러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 짓기 전에는 옷이 없었습니다. 옷이 없어도, 발가벗었어도 서로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 수치, 창피함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물을 희생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셔야 했습니다.
또한 사망은 고통을 의미합니다. 하와에게는 해산의 고통을, 아담에게는 땀을 흘리게 되어야 함을, 아니 결국 다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창 3:16,19).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어떤 모양으로든지 고통을 겪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 6:23). 그러므로 죄를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망, 죽음만 기다릴 뿐입니다. 영원한 형벌이 기다릴 뿐입니다. 가난해도 괜찮고, 무식해도 괜찮습니다. 어떤 일에 실패해도, 키 작아도, 아이를 못 낳아도, 못 생겨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가지고는 못 갑니다.

그러면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오늘 본문이 현재와 앞으로 우리가 죄를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욕심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였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도 욕심을 이기지 못하여 시험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욕심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김 동호 목사님은 욕심은 가치관과 연관있기 때문에 가치관을 바꾸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가치를 모르면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더 높은 것에 훨씬 더 큰 가치가 있음을 깨달으면 됩니다. 그러면 하찮은 가치를 버릴 수 있습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면 이 땅의 것보다 하늘의 것이 훨씬 더 큰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되면 이 세상 것에 욕심을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힘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버리게 됩니다. 거룩한 것에,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에, 선한 일에 욕심을 낸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까?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마 5:8). 어떻게 하면 마음이 청결해 집니까? 거듭나야 합니다.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말입니다(요 3:5).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치심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났다고 해서 금방 세상 모든 욕심이 없어지고 하늘의 것, 거룩한 것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말씀과 성령의 부으심, 충만하심을 간구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욕심에 이끌려 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에 지은 죄와 현재에도 죄를 이기지 못하게 되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용서가 해결합니다. 그러한 모든 죄를 용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용서는 사랑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한번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가 자신에게 죄를 범하였을 경우 일곱번까지 용서하면 됩니까(마 18:21) 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 대답이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였습니다. 490번 이상 하라는 말입니다. 무한한 용서를 가르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범죄한 자를 그렇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자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어쩌면 그렇게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 .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39) 입니다. 즉 얼만큼 사랑하느냐가 얼만큼 용서하는가를 결정합니다. 여기서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만큼 사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분신을 우리를 위하여, 죄인들을 위하여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거저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말합니다. 노력해서 받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것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향한 사랑을 훨씬 뛰어넘는 사랑입니다. 자기 자식이 아픔이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는 부모의 심정이 어떠합니까?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인인 우리들을 위하여 자신의 외아들을 그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며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용서 못하실 죄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한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모든 진노를 그 십자가에 다 쏟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진리를 믿는 자는 죄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망을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사람과의 관계를, 수치심을, 고통을 다 해결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습니까? 궁극적인 승리를 바라보고 그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결과를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박 찬진 강도사님께서 지지난 수요일에 ‘우리 성도들의 인생은 재방송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습니다. 결과를 다 아는 내용을 보는, 지나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니 험한 일을 만나도 인내하고 소망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앎이로라”(롬 5:3-4)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우 여러분! 아직도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을 지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가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자아가 자리잡은 중심에 예수님을 모십시오. 사망을 이기는 길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399 주일설교 믿어지는 것이 기적입니다(요 12:37-50) 한태일 목사 2011-08-02 1563
398 주일설교 빛의 아들들이 되었으니(요 12:27-36) 한태일 목사 2011-07-25 1633
397 주일설교 주님을 섬기려면(요12:17-26) 관리자 2011-07-23 1681
396 주일설교 잘못된 믿음(요한복음 12:12-16) 관리자 2011-07-23 1554
395 수요설교 마귀의 능력을 초월하시는 예수님(마 8:28-34) 한태일 목사 2011-07-07 1642
394 주일설교 은혜를 받았다면(요 12:1-11) 한태일 목사 2011-07-07 1573
393 주일설교 부활과 생명(4) -많은 유대인들이 믿었으나- (요 11:45-57) 한태일 목사 2011-06-27 1657
392 수요설교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 모범(신 12:1-7) 한태일 목사 2011-06-23 1681
391 주일설교 아버지들에게 감사(잠 13:1) 한태일 목사 2011-06-20 1753
390 주일설교 부활과 생명(3) -돌을 옮겨 놓으라- (요 11:38-44) 한태일 목사 2011-06-13 1590
389 수요설교 선택은 우리에게(신 11:18-25) 한태일 목사 2011-06-10 1600
388 주일설교 부활과 생명(2) - 말씀을 네가 믿느냐- (요 11:17-37) 한태일 목사 2011-06-06 1555
387 수요설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면(신 11:8-17) 한태일 목사 2011-06-02 1693
386 주일설교 부활과 생명(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요 11:1-16)- 한태일 목사 2011-05-30 1621
385 주일설교 주님의 참된 양들은(요 10:22-42) 한태일 목사 2011-05-23 1718
384 수요설교 믿는 자들의 자원(신 11:1-7) 한태일 목사 2011-05-19 1801
1,,,6162636465666768697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