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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03-28 (월) 06:1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87    
영적 소경들(요 9:13-34)
영적 소경들 (요한복음 9:13-34)
   우리가 생각하기에 장애는 불행한 것이고, 그 중에 시각장애인은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시각장애인들은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편한 것이 곧 불행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듣는 것입니다. 청각이 발달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모두 말씀으로 옵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 사람이 가장 복된 것입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은 눈으로 보는 것이 없기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 것에 속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확인을 합니다. 그러나 눈으로 보는 것이 다 진실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속고 살 때가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영적 소경이 문제입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길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된 걸인 한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시기를 메시아가 오시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사 35:5). 즉 소경이 눈을 떴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오래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셨고, 이제 본격적인 구원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땅히 볼 것은 보지 못하고, 당연히 깨달아 알아야 할 진리는 깨닫지 못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따지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그들 모두 영적 소경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영적 소경이 되게 하였습니까? 율법주의(legalism)와 교만입니다. 사실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된 것은 엄청나게 기쁘고 축하할 일이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에게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메시아가 오면 나타날 기적 가운데 하나였으니 과연 메시아가 온 것이 아닌가 하고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눈 뜬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에게 갔습니다(13절). 이유는 안식일의 규례를 어겼다는 것입니다(14절). 왜 예수님이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주었느냐는 말입니다. 사실 이 전에도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주신 바 논쟁을 하였었습니다(마 12:9-13, 요 5:9-18).
   오늘 본문에도 15절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이 확인한 사실은 누군가가 이 사람의 눈에 진흙을 발라서 씻게 했는데, 그 일을 안식일에 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을 치료하는 것은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16절 이하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이 일단 생각한 것은 이 사람의 눈이 떠진 것이 아닐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지 못하는 눈에 진흙을 발라 실로암 못에 씻는다고 해서 눈이 떠질 수도 없거니와 더욱이 안식일에 일을 하는 사람에게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의 눈은 떠졌습니다. 기적은 일어났고 지금 이 사람의 눈에는 온 세상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믿는다는 바리새인들은 절대로 이 사람 눈이 떠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부모까지 만나서 참 네 아들이냐, 그가 정말 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느냐 확인하였습니다(18-23절). 그 부모는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을 출교시킬까 겁이 나서 자기 아들이 분명한데,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되었는지는 직접 물어보라고 합니다. 아니 분명히 앞을 못 보던 사람이 예수님께 치료를 받아 버젓이 눈을 뜨고 있는데 바리새인들은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눈이 떠진 그 사람이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25절), 또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30-33절)라고 아무리 외쳐도 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만 여기면서 도저히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줄 수 없다고 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눈을 뜬 그 사람이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그리스도로 시인하니 그를 욕하면서 출교하였습니다(34절). 이유는 바로 그들이 영적으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영적인 소경들이 많이 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보지만 자기 생각에 꽉 차서 일체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율법주의자들처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보다는 율법의 규례들과 형식들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본질보다 형식을 더 중요시 여기고, 내용보다는 외형에, 사랑의 정신보다는 법에 우선을 두고 사람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은 다 율법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일 성수의 본질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높이고 기쁘게 하는 것인데, 혹자는 이것은 해도 되고, 저것은 해도 안 된다는 식으로 조건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비판하고 괴롭힙니다. 정말 주일에 하는 일의 본질이 예수님을 높이고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어떤 규례나 형식을 넘어서야 합니다. 또, 기도의 본질은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고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인데, 몇 시부터 얼마나 기도했느냐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리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의 본질은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데 있지만, 성경을 몇 번이나 읽었으며 얼마나 아느냐, 혹은 제자훈련을 어느 단계까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받았느냐를 가지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다 오늘날의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메시아의 도래를 믿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날을 너무나도 많이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자기들의 기준에 맞는 메시아이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했던 메시아는 자기들처럼 유대교에 열심이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며 식민지였던 유대 나라를 해방시킬 메시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그들의 기준이나 기대와는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눈에 예수님이 아무리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베풀어도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5:14, 눅 6:39). 바로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이 다른 사람을 인도하면 결국 모두 다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여 우리의 건강이나 생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병균들입니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보입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싸워 이기도록 하여 사람들을 고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라고 하는 사람이 병균을, 바이러스를 모른다면서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도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사와는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병균이,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바로 죄입니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오직 사람의 육체적인 생명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죄는 인간의 이성과 감정과 의지, 전인격적으로 생명 전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이 ‘죄’를 모르는 사람은 영적 소경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죄의 배후세력인 사탄, 마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영적 소경인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죄를 사하며, 영혼을 살리며,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주며, 더욱 바르게 살아가게 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살아계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것도 바로 영적 소경입니다.
   사실 모든 인간은 영적 소경으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눈 앞에 있는 것들은 잘 보는데,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즉 죄라든가, 사탄, 하나님의 은혜, 축복 같은 것은 하나도 볼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대신에 고집, 교만으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삽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이 육적인 소경뿐 아니라 더 중요한 이 영적인 소경들을 고쳐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이 영적 소경들이 전부 자기가 잘났다고 하고 자기가 똑똑하고 다 안다고 하면서 모두 멸망의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 길이 틀린 길이라고 소리를 치고 가지 못하게 막으려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다 죽여버리고 자신들의 고집대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영적 소경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진짜 앞을 보지 못하는 육신적인 시각장애인을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서 눈을 뜬 이 사람을 매우 놀라게 한 것은 유대인들이 자기가 눈 뜬 것이 아니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고쳐진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서 절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앞을 보지 못하더라도 못 보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이미 영적 소경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욕심이나 자기 편견에 가득차서 자기 생각과 같은 것 외에는 일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도움도 받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 소경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체적인 시각장애인은 자기 혼자 보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영적인 소경은 다른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즉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주장이 자기의 생각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자기 생각에 억지로 맞추려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잘 안되면 화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죄나 사탄의 시험을 믿지 않는 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믿지 않는 자는 결국 다른 사람들까지 멸망의 구렁텅이로 끌고 가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9절에 예수님께서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 몸의 건강이나 가정의 평안도 중요하고, 먹고 살기 위하여 경제적인 어려움도 당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육체적인 필요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적인 눈이 떠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여 정말 볼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안타까운 불행한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영적인 눈이 다 뜨이신 분들이기를 바랍니다. 정말 보아야 할 것들을 똑똑히 보고, 체험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넓은 길이지만 지옥으로 인도하는 길과 좁은 길이지만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을 똑바로 보고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리가 무엇이고 비진리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일과 마귀의 일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은혜와 율법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과거 영안이 어두울 때의 삶을 접고 앞을 향하여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혹시 전에는 잘 보다가 무엇 때문인지 지금은 잘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 계십니까? 영안이 흐려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많이 안다고 하는 교만 때문에 눈이 흐려지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는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주님의 영광의 자리에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더욱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잘 배우는 것이며 주님을 잘 안다는 증거입니다. 조금 안다고 거만해진다면 그는 벌써 영적인 눈이 흐려진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성경을 너무 많이 알아서 누가 무슨 말씀을 해도 ‘또 그 소리냐 나도 다 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설교를 들으면서도, 성경을 읽으면서도 ‘다 아는 내용인데 뭐’ 하면서 자세히 듣지도, 읽지도 않고 넘어가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만일 여러분 마음 속에 그런 교만이 있다면 이미 영적으로 병들고 있음을 깨닫고 속히 그 교만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영의 눈을 닦고 날마다 성령께서 영의 눈을 20/20로 환하게 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 의 삶으로 멋진 신앙생활을 함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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