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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01-31 (월) 12:2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806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 7.37-44)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풀지 못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다른 것으로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이유는 누구나 인생의 문제들의 가장 근본인 영혼의 갈증을 느끼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 갈증을 풀어보고자 많은 사람들이 점, 술, 도박, 춤, 마약 등에 빠져 들어갑니다. 아니면 sex 나 취미 생활에 푹 빠져서 삽니다. 좀 고상한 사람들은 철학 사상이나 종교에 심취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들로도 영혼의 갈증은 해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인간의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시기 위하여 초청하고 있습니다. 37절에 명절 끝 날이라 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생활한 것을 기념하는 초막절의 마지막 날에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며 의식을 마무리하는 단계로 그 절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실로암 연못에 가서 황금으로 만든 물통에 물을 가득히 떠서 채운 후에 성전의 제단 앞으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았듯이 제사장들이 제단을 일곱 번 돌면서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시 118:25)라고 외치며 모였던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기도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는 물통의 물을 제단에 쏟아 붓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 거기 서서 크게 외쳤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37-38절)! 제사장들이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길러와 하나님의 제단에 부은 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목이 말라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신 것을 상징하는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금 그들을 향하여 내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겠으니 내게로 오라고 외치시는 것입니다. 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사 55:1)고 초청한 물을 줄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겠다는 생수가 무엇입니까? 바로 39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미 4장에서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에게 말씀한 것입니다. 즉 영혼의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누구든지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아 마시라는 뜻입니다. 그럼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육신의 정욕의 갈증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돈에 목말라 하고, 명예에 목말라 하고, 육체적인 사랑, 쾌락에 목말라 하거나, 오래 살고 싶어서 well-being 에 목말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본성에 이끌려 인생을 즐기고 싶어하는 갈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갈증은 이 세상의 무엇으로도 해갈할 수 없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전 5:10)라고 하였습니다. 즉 날마다 돈이나 재물을 많이 갖기 원하는 사람은 온통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여 쌓고 쌓아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욕심을 채우려는 갈증은 끝이 없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도 채워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 누려본 솔로몬 왕의 결론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5:10)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갈증의 뿌리에는 죄의 부패한 본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갈증은 영적인 문제라는 말입니다. 즉 주님이 그 안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그토록 끊임없이 갈증이 생겨난다는 사실입니다.
   낙타는 사막을 여러 날 여행을 해도 갈증 때문에 물을 찾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유는 그 몸 안에 물 주머니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슴과 같은 다른 야생동물들은 항상 물을 찾아 다닙니다. 몸 안에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주머니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야생동물과 같습니다. 몸 안에 생수가 없기 때문에 말입니다.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모시면 이런 갈증이 없어지지만, 주님이 없기에 항상 목말라 합니다. 그래서 욕심대로 쌓고 쌓아도, 끊임없이 즐겨도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37절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라고 할 때에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이 주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누구든지”라는 말입니다. 적어도 영혼의 갈증을 느끼고 알고 있기에 생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의사들이 초청하는 사람들은 병든 사람들입니다. 병이 들었음에도 병들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초청을 해도 의사를 찾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은 자신이 병이 든 줄 알고 고침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괴로워하면서 주님께로 오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한정된 특별한 사람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돈으로도, 명예와 지위로도, 정욕을 채워도 영혼의 갈증이 채워지지 않음을 깨닫고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이 은혜를 받기 시작한 사람들이라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오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귀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 모두가 그렇다면 이 “누구든지”에 포함되어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물론 이 음성을 듣고 주님께 나아오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받아 마셔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활짝 열고 주님을 영접하며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시고 인 치십니다.
   그런데 이 한번 회심의 경험으로는 부족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 성령의 사람이 된 그 자리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마치 강물이 철철 흘러 넘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곳에 고여있는 죽은 물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38절 말씀처럼 성령님이 자신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듯이 흘러 넘치는 은혜는 체험하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아마도 요한은 에스겔의 환상(겔 47장)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기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에스겔이 환상 중에 성전을 보니까 성전 문 지방에서부터 물이 조금씩 흐르는데 이것이 점점 많아져서 처음에는 발목까지 오다가 그 다음에는 무릎까지 오고, 그 다음에는 허리까지 오다가 나중에는 가슴까지 차 올라 헤엄을 쳐야 하는 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일시적인 해갈이 아니라 다시는 목말라하거나 다시는 죄로 인하여 고통스럽지 않도록 내 뱃속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강물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의 삶에서 많은 열매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믿고 성령을 받은 것으로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강물처럼 흐르는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면서 사는 복을 누려야 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런 축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을까요? 먼저는 여러분이 성령을 모시고 살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한 후 자신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만족감이 있는지 말입니다. 찾을 것을 찾았을 때의 느낌, 추구하던 것이 충족이 된 사람처럼 평안하고 기쁜 감정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면 이미 성령을 받았기에 생수의 강이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그 강물이 철철 넘치시는 삶이 되려면 우선 내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고 계심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39절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후 부활의 영광을 받으시고 난 후 오순절에 임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님의 역사는 일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교회 시대에서는 믿는 모든 자들이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강물처럼 내 안에서 흘러 넘치게 하려면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셔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계시기 때문에 때때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탄식하시고, 교훈하시고, 책망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교훈하시고, 책망하시고, 바르게 하시고, 의로 교육하십니다(딤후 3:16). 때로 무엇인가를 요구하시고, 권면도 하십니다. 이럴 때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성령을 받지 못해서 성령이 강물처럼 흐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그 음성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흐르지 못하고 고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성령께서 슬퍼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영혼이 불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령의 불꽃이 완전히 꺼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강물이 흘러 넘치기를 사모하셔야 합니다. 즉 성령의 충만을 간구하셔야 합니다. 성령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경에서 성령을 샘솟듯 솟아 흘러 넘치는 강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역동적(dynamic)이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안주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말씀을 사랑합니다. 늘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원합니다. 내 모든 감정, 내 모든 지성, 내 모든 의지 구석 구석마다 전인격적으로 역사합니다. 사모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은혜가 넘칩니다.
   그런데 이런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만약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역사하신다면 첫째로, 우리의 병들고 망가진 속 사람이 깨끗이 치료가 됩니다. 그래서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충만하게 공급되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것들이 좀 부족해도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셋째로, 영혼이 더욱 풍성해져서 나의 말이나 생각, 나의 행동이라는 것에 의미가 없어지고 오직 성령에 의하여 떠밀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무슨 일을 많이 하여 육신적으로는 피곤할른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독수리가 하늘을 향해 날아가듯 합니다. 얼마나 멋진 삶입니까? 그런 축복을 누리고 살기를 바랍니다. 아 멘!
   그런데 40절 이하에 예수님의 이런 놀라운 초청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오히려 이런 초청이 논란의 원인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이 선지자다, 그리스도다, 아니다 하면서 말입니다. 그 때나 오늘이나 예수님의 초청에 어떤 사람들은 믿음으로 반응하고, 어떤 사람들은 주저하며,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나 복음을 전한 사람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초청을 거절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부인합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놀라운 초청을 거절하고 살아갑니까?

   하지만 여기에 모인 대부분 여러분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으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강물처럼 흘러 철철 넘치도록 사모하셔야 합니다. 이 세상 살면서 자꾸 피곤하다고 느끼고, 실증을 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면서 살아갑니까? 성령이 역사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강물처럼 흐르지를 않고 고여 있어서 그렇습니다. 흐르게 하십시오. 살아 능력으로 역사하게끔 하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의 삶에서 그렇게 성령님이 철철 흐르는 강물처럼 역사한다면 반드시 주위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습니다. 강물이 넘쳐 문 지방에서 온 성전으로, 아니 세상으로 철철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온 교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꺼져가던 성령의 불꽃에 불을 짚여 옆에까지 활활 번지게 합니다. 주위에 있는 이웃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성령의 역사를 간절히 구하십시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며 내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내려 놓으십시오. 양보하십시오. 순종하십시오.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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