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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10-10-13 (수) 00:0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98    
[10/10/10]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요한복음 6:30-40)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Savior)로, 주(Lord)로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행 2:36). 또한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깁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이 믿음만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믿음이 어떻게 생깁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보면 믿음이 생기고 확실히 믿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오히려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생깁니다(롬 10:17). 오늘 본문의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바로 하루 전에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으라고 하니까(29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하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0절)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또 예수님에게 표적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광야 생활 40년 동안 수없이 많은 기적들을 체험하고도 그들은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믿지 않던 출애굽 1세대는 다 죽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본문의 유대인들도 여태껏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많이 보여주었건만 더 많은 표적을 보면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증거를 보여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새로운 표적을 요구하면서 그들은 옛날에 모세가 광야에서 자기들 조상에게 만나를 주어 40년을 먹고 살게 하여 유대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으니까, 당신도 우리의 메시아가 되려면 지금 그런 떡을 주어 배불리 먹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요구합니다(31절). 얼마나 잘못된 메시아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말입니다. 그들은 메시아, 그리스도가 오면 로마의 압제에서 자유를 주고 일하지 않아도 평생 배부르게 먹고 건강하게 잘 사는 낙원이 그 땅에 도래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32절부터 예수님의 설교가 시작됩니다. 또 진실로 진실로 두 번을 반복하시면서 강조합니다. 우선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첫째, 광야에서 그들의 조상에게 만나를 준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였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니라”(출 16:4절상)고 하였습니다. 둘째, 만나는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원히 살게 하는 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나는 육체를 만족시키는 떡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준 만나와는 달리 참 떡은 온 세상을 위하는 떡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33절)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그런 육체를 만족시키는 떡에만 마음을 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절)라고 합니다. 아직도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고 하셨습니다. 즉 자신을 참 떡, 하나님의 떡으로 말씀하시면서, “생명의 떡”이라고 하십니다. 왜 생명의 떡이라고 하였습니까? 헬라어 원어에 생명을 가리키는 단어는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bivo" 이며, 다른 하나는 zwhv 입니다. bivo" 는 육체의 목숨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의 몸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하여 살아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육체의 목숨을 유지하려면 밥을 계속 먹어야 합니다.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먹는 밥과 물은 곧 육체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려면 꼭 있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군중들이나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이 육신의 목숨이 전부인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소중히 여기는 바람에 우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석가모니든, 마호메트든, 문선명이든, 예수님이든 상관없이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배부르게 살게만 해준다고 하면 하나님으로 믿고 살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육체의 목숨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육체의 목숨에는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에게는 누구나 육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혼의 사망이라는 것은 둘째 사망으로서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 받으며 고통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계 21:8). 그러므로 영적인 생명을 의미하는zwhv 가 너무 중요합니다.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그와 화목하게 지내는 것 자체가 zwhv 입니다. 즉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생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이 생명의 떡, 빵이라고 하십니다. 우리 정서에 맞게 좀 쉽게 표현하면 생명의 밥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표현하신 데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밥이 육신의 생명에 필수적이듯이, 예수님도 우리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이라는 뜻입니다. 밥은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음식이 아닙니다. 사람이 생존하는 데에 필수적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분이 아닙니다. 누구나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 밥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기를 싫어하거나 생선이나 야채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싫어하는 그런 것은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밥(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즉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의 필요를 차별 없이 채워주고 구원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밥은 매일 먹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과의 교제도 매일 끊이지 않고 이루어져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한 마디로 요약해서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날마다 반드시 교제를 해야 할 영적인 양식이 되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못한 분들은 이 영적 양식의 결핍으로 영적 사망, 둘째 사망 선고를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또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고 사시는 분들이라도 매일 예수님과 교제를 하지 않고 지낸다면 영적 양식의 영양실조로 겨우 연명하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살았으나 죽은 자와 별 다를 바가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오는 자, 믿는 자에게는 생명의 떡을, 생수를 주셔서 결코 주리지도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도 않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35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떡을 먹으면, 생수를 마시면 우리의 영안이 열립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되찾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정으로 영혼에 만족이 있고,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이 우리 마음에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아직 이 생명의 떡을 먹지 않고, 생수를 마시지 않으신 분들이 혹시 이 자리에 계십니까? 지금 이 순간 생명의 떡을 먹고, 생수를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로 마음에 모시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하셨습니다. 아 멘!

    예수님의 이런 설교를 듣고도 당시 유대 군중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듯이 말입니다.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37-40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개혁주의 장로교인들의 아주 중요한 교리를 설명하십니다. 바로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믿게 하신 자들은 끝까지 책임지시고 구원하신다는 말입니다. 결코 내어쫓지 않는다는 말씀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사람 편에서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영원히 보존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구원에 이르도록 한다는 말씀입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비록 연약하여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그 죄 때문에 심판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죄 때문에 영원한 멸망의, 영원토록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지옥에 보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을 아무도 빼앗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믿은 후에 막 죄짓고 살아도 천국에 갈 것이니 그렇게 살아도 되겠네요?’라고 물으시는 분이 있다면,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를 믿어, 성령을 받고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막 죄짓고 살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계속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죄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회개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됩니다. 어쩌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정말 믿는 자라면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즉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는 그 성도의 회개와 믿음이라는 것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교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믿지 않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언젠가는 돌아오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이 싫어하는 괴로운 방법을 써서라도 돌아오게 하십니다.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구원을 받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지 않으려고 도망을 가더라도 하나님 손에 붙들려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그러면 전도할 필요가 없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우리는 누가 택자인 줄 모르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그리고 택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아서 고통 당하는 시간들을 생각하면 속히 전도해야지요.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39절 하반절과 40절 하반절에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 영혼이 즉각 천국에 가서 주님 곁에 있으나 우리 육체는 땅에 묻히게 되는데,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우리 육체가 다시 부활하여 영혼과 합치는 날이 옵니다. 그래서 영원토록 주님과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면 날마다 해도 싫증이 안 나는, 아니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은 일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천국에서는 언제나, 말할 수 없이 좋고 행복하기 때문에 늘 벅찬 감격으로 우리를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때에 우리가 생각하기를 내가 얼마나 복을 많이 받았기에 이런 천국에 올 수 있었나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옆에 계신 성령님께서 ‘하나님께서 너를 선택하시고 무작정 사랑하셔서 네가 믿지 않으려고 도망 다녔을지라도 그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게 하셨기 때문에 여기에 들어온 것이야’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저질렀어도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참으로 부끄럽고 황송해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렇게 큰 복을 받았습니다. 이보다 좋은 복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 은혜를 마음에 간직하고 매일 감사하고 살면 아무리 이 세상의 짐이 무거워도 찬송할 수 있습니다. 이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고 찬송해도 지금 이 세상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훗날 천국에서 느낄 황홀한 감정과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그 은혜를 찬송하는 힘으로 인생의 어려운 장애도 능히 뛰어 넘을 수가 있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확실히 아네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확실히 아네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확실히 아네
    주 언제 강림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확실히 아네  

    우리의 고달픈 인생살이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이런 찬송이 늘 우리의 입술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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