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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10-07-05 (월) 22:5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73    
[7/4/10] 하나님의 선물, 생수
하나님의 선물, 생수 (요한복음 4:1-19)

사람들은 모두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회 속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어떤 사람들과는 벽을 쌓고 삽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상상을 뛰어 넘는 일을 하십니다. 어떤 장벽도 무너뜨리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피하는 한 버림받은 여인을 일부러 찾아오시는 주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도덕적으로 너무 타락해서 모든 사람의 비난을 받으며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한 여인을 찾아 만나주시며, 귀한 하나님의 선물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모습입니다.

   3장에서는 유대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던 니고데모를 만나 주시며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시던 예수님께서, 4장에서는 대조적으로 그 사회에서 가장 천한 신분으로 따돌림을 받던 여인을 만나주시며, 하나님의 선물, 즉 생수를 주시고 계십니다.
   우선 1절을 보시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세례 요한보다 훨씬 더 많이 세례를 주며, 따르는 제자들도 더 많다는, 요한보다 더 능력이 있다는 말을 듣고 둘 사이를 이간질시키려 하는 것을 보시고, 그 자리를 피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에 지장을 주지 않으시려고 유대를 떠나 북쪽 갈릴리 지방에서 사역하기로 하셨습니다.
   얼마 전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주의 일을 하면서 경쟁을 하거나 분쟁을 하는 것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아무리 주의 일이라 할지라도 서로 경쟁하고 질투하고 비판하는 일이 벌어지고, 서로들 자기가 더 유명해지려 하거나, 더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은 분명히 사탄, 마귀들이 시험하는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사이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도 사탄의 역사를 아시고, 그 유대 땅을 떠나 갈릴리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쪽 유대 땅에서 북쪽 갈릴리로 가는 길은 세 가지 경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지중해 연안을 타고 올라가는 길이요, 또 하나는 요단 강을 건너 빙 둘러 가는 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운데 사마리아를 가로질러 올라가는 길입니다. 셋 중에 가로질러 올라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었으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지를 않았기에, 어떤 접촉도 피하려고 했기에 주로 빙 둘러서 갔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는 솔로몬 왕 이후로 남 유다, 북 이스라엘로 분열된 다음, 북왕국의 수도였던 사마리아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망하였을 때 앗수르 왕이 정책적으로 자기 민족 사람들과 많은 잡다한 종족들을 사마리아에 살도록 하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혼혈을 시켰습니다. 그곳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혈통을 지키기 위해 순교할만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살아남기 위하여 이방 사람들과 통혼을 했습니다. 이것을 안 다른 지방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개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9절 하반절에도 사마리아 여인이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인 예수님은 지금 그 사마리아를 통과하려는 것입니다. 4절에 보시면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고 했는데, 이 구절 헬라어 원어를 보아도 예수님께서 반드시 사마리아를 지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무언가 마음에 작정하시고 가시는 것입니다. 다름 아닌 수가성 우물가의 한 이름 없는 여인을 만나 구원하는 일을 마음에 두신 것입니다.
   올라가시다가 피곤하여 한 우물 곁에 앉으셨습니다(6절). 5절을 보면 그 우물은 오래 전에 야곱이 요셉에게 준 우물이라고 했으니까 약 2000년 이상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우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미리 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하여 전날 오후에 예루살렘을 떠나 다음날 정오까지 땀을 흘리며 사막 길을 걸어오신 것입니다. 그 여인이 제 육시, 즉 12시 정오쯤에 물을 길러 나오는 것도 아신 주님께서 그 시간을 맞추시기 위하여 지체하지 않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모든 것이 우연히 되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체험하는 아주 신비로운 부분입니다. 우리는 참 우연한 동기에 의해 예수님을 믿게 된 것 같은데, 실제로는 우리가 전혀 하나님을 모르고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알고 계셨고 때가 되어 주권적인 은혜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자, 드디어 주님께서 그 여자를 만나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7절). 마침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다른 동네에 갔다고 합니다(8절). 그 때 사마리아 여인은 놀라서 되묻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9절) 유대인으로서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걸고 물을 달라 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그렇게 말을 걸고 물을 달라고 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물론 헬라 세계 문화와 그리스 세계 문화에서도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은 당시 인간 사회에 높은 두 장벽을 무너뜨리는 순간입니다.
   그뿐 아니라, 지금 만난 이 여자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한 삶을 사는 여자로서 사람들이 다 싫어하고 만나기를 꺼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18절에서 예수님이 지적하였듯이 남편이 다섯이었고, 지금 같이 사는 남자도 그냥 동거를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창녀나 다름없는 최하류의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여인들은 남편이 죽으면 재혼까지는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을 다섯, 여섯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침이나 저녁에 물을 길러오지 않고, 사람들을 피하여 물 길러오는 사람이 없는 뜨거운 대낮에 물을 길러 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 때도 얼굴을 푹 숙인 채 도둑질하듯 물 길러 다녔을 것입니다. 자신의 추한 삶 때문에 사람들과 담을 쌓고 지냈던 것입니다.
   이런 여인을 일부러 찾아오셔서 만나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셨듯이 가난한 자, 마음이 상한 자, 갇힌 자, 모든 슬픈 자들을 만나주시는 메시아, 예수님이십니다(사 61:1-2).

   이 여인으로서는 놀랄 수 밖에 없지요. 사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과 은혜를 가지고 찾아오지만 사람들은 편견과, 교만 등 스스로 쌓은 장벽으로 막고 있습니다. 선물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되묻는 질문에 주님께서 답하시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선물을 가지고 왔음을 밝히시면서 이 여인의 관심을 자신의 과거에서 지금 자기 앞에서 말을 붙이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하나님의 선물과 자기 앞에서 서있는 예수님에게 초점을 돌리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선물을 가지고 온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더면 선물을, 생수를 달라고 했을 것이고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종종 생수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렘 2:13; 17:13; 시 36:9). 즉 생수는 생명의 물입니다. 일단 마시면 영원토록 삽니다. 곧 예수님 자신, 또한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생수를 줄 것이라고 하니까 11절에 ‘주님, 당신은 물 길을 두레박도, 그릇도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이 우물은 상당히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을 수 있겠느냐’고 되묻습니다. 이 여자가 아는 최고의 우물은 바로 이 야곱의 우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눈 앞에 있는 어떤 분이 이 우물물보다 더 좋은 생수(living water)를 준다고 하니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큰 사람, 능력있는 사람이냐고 12절에 묻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물과 자신이 주는 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3-14절)고 하셨습니다. 사실 물도 중요합니다. 사람의 육체적 갈증을 해소시켜 줍니다. 문제는 아무리 좋은 샘물도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갈증은 해소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참된 만족, 영원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이유는 우리 영혼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때를 씻어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물인 생수는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것이며, 우리 안의 죄를 씻어주는 것이며, 죄가 끼친 모든 독을 치료해 줍니다. 아마 이 사마리아 여인이 과거에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도 어느 남자와 동거하는 이유도 그 많은 남자들이 자신의 영혼과 육체의 만족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이 남자, 저 남자 기웃거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켜줄, 우리의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켜줄, 우리 영혼의 더러운 때를 씻겨줄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세상 권력을 다 쥐고 있어도, 남들이 높여 받드는 지위, 명예가 있어도, 아무리 취미 생활에 심취하여도, 수 많은 남자, 혹은 여자와 관계를 맺어도 인간의 영혼은 만족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물인, 생수를 받아 마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죄 사함의 은혜와 영혼 깊은 곳에 주님께서 주시는 만족과 기쁨과 평안이, 시원함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술을 마시고, 줄 담배를 피우며, 심지어 마약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영혼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술을 마셔도, 담배를 피워도, 마약을 해도 일시적일 뿐이지 더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그런 현실을 도피하여 극단적인 자살을 택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죄 용서함을 받고 성령을 받으면 영혼이 살아납니다. 새로워집니다. 새로운 인생이 됩니다. 영혼의 만족을 느낍니다. 이유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만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내 영혼을 보배롭게,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존귀하고 가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생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이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도 그런 물을 주어서 목마르지 않게 하고, 물도 다시는 길어오지 않게 해달라고 하니(15절), 예수님께서는 엉뚱하게 그녀에게 가서 남편을 불러오라고 합니다(16절). 이유는 여자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 문제는 드러내지 않고 선물만 받으려고 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여자에 대하여 다 알고 계시던 주님은 그녀의 죄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것입니다.
   17절에 남편이 없다고 대답하는 여자의 말에 과거를 다 들추어 내어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같이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는 주님의 말씀에 이 여자는 주님을 선지자로 고백합니다(19절). 물론 저는 믿기로 18절과 19절 사이에, 혹은 19절 후에 이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자신의 깊은 상처를 토해내며 진한 눈물을 많이 흘렸을 것입니다. 아니 통곡을 하였을 것입니다.
   나중에 29절에 보면 그리스도로 믿음의 고백을 하는 것을 봅니다. 결국 하나님의 선물을 받고 죄로부터 자유함을, 영혼의 참 만족을 느끼고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사마리아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전하니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그녀를 통하여 예수를 믿게 됩니다(39절).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에게 이유 없는 갈증이 있습니까? 그 어떤 일에도, 누구에게서도 만족을 얻지 못하십니까? 마음 속에 불안함이 있습니까? 불면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까? 누군가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까? 정신이 자꾸 혼란해집니까?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선물을, 생수를 주시기 원하시는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아무 대가 없이 거저 주시기 원합니다. 그저 자신의 모든 죄를 다 고백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수가성의 여인처럼 온전히 치유 받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계속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이미 하나님의 선물을, 생수를 받아 마신 여러분들! 정말 주님으로 인하여 만족하며 사십니까? 영혼의 어떤 갈증도 느끼지 않으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해결되지 않는 죄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은혜 받는 시간은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주님에게 다 진솔하게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크고 작은 좋지 않은 일들이 우리 안에서 종양이 되어 썩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가시면 안됩니다. 사람들 앞에는 다 이야기 못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고통스럽고 아파도 다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의원이신 주님에게 수술해 달라고 요청하여야 합니다.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찾아간 사람이라면 우리도 찾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가로막은 벽이 높다 하더라도, 문화적인 장벽, 인종적인 장벽, 윤리적인 장벽이 높다 하더라도 누구나 차별 없이 찾아가야 합니다. 인종, 학벌, 사회적 지위, 겉 모습 등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굳어진 생각을 깨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는 능력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 묻은 복음이 들어갔는데도 우리 가운데 벽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복음이 들어갔다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어떤 장벽도 무너뜨리고 어떤 사람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예수님을 가슴에 품고, 예수님처럼 살아가기 원하는 참 믿음의 사람입니다. 아니 Christian 이라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소외된 사람들,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그 무엇에 포로가 된 사람들, 영혼의 갈증을 토해내며 생수를 원하는 그들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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