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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0-04-19 (월) 09:1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91    
[4/18/10] 얼마나 성전을 사모하십니까?
얼마나 성전을 사모하십니까 (요한복음 2:12-22)

오늘날의 교회들, 특히 이민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온유하시고, 인자가 많으시며, 항상 싸매어 주시고, 죄를 계속 지어도 그저 용서만 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계속 설교하고 가르치는 반면에, 하나님이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징계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잘못된 가르침으로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지옥을 만드셔서 심판하시느냐고 하면서 천국은 있어도 지옥은 없다고 선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께서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며,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만 알고 계시면 반쪽 진리만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실 십자가가 필요 없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진노하시며 채찍을 휘두르시는 것을 봅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2년 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도 또 나타나는데(마 21:12-16; 막 11:15-18; 눅 19:45-46), 그 때에는 예수님의 입에서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을 향하여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는 욕까지 하십니다.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향하여 그렇게 화를 내시고 듣기 거북한 욕까지 하셨을까요?
바로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거룩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항상 용서하시지만 때로는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세상 끝날에 불신자들에게는 큰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은 항상 열려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을 닫아버리는 무서운 분이시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시는 첫 기적을 행하신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마리아와 제자들, 즉 은밀하게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나타내신 표적이었습니다(요 2:1-11).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난 후, 공생해 첫 유월절을 맞이하면서 공적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근 각처에서 예루살렘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25 만명 정도가 모인다고 합니다. 문제는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괜찮은데, 멀리서 오는 사람들은 제물이 될 짐승을 끌고 오기가 어렵기 때문에 돈을 가지고 와서 예루살렘에서 제물을 샀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비둘기를,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양이나 염소, 소를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 20세 이상의 모든 유대 남자들이 성전에 들어가려면 매년 성전세를 내어야 했는데(출 30:13-14; 마 17:24-27), 이방인의 손에 묻은 돈은 하나님께 바칠 수 없기 때문에 성전 돈으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즉 로마나 헬라 화폐를 세겔로 환전을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장면이 14절입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장면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15-16절) 하셨습니다. 왜? 무슨 이유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진노하셨을까요?
   첫째는, 돈 때문이었습니다. 멀리서 예배하러 오는 자들의 편의를 봐 준답시고 장사꾼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돈을 벌었던 것입니다. 돈을 바꾸면서 그 수수료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약점을 잡고 돈 장사를 한 것입니다. 게다가 제물로 바칠 짐승은 흠이 없는 비둘기나 일년 된 숫양이나 숫염소라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짐승을 끌고 성전에 들어오면 검사를 하는 성전 관리들이 온갖 트집을 잡으면서 잘 통과를 시켜주지 않고, 대신 성전 안에서 값 비싸게 파는 짐승을 사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서 파는 짐승은 하자가 있어도 그냥 팔아버렸습니다. 이렇게 장사꾼들이나 절대 권력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챙기며 그들을 등쳐 먹는 종교지도자들은 부패하고 타락한 사람들의 표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성전을 “강도의 굴혈”(마 21:13)이라는 표현도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예배도 뒷전이었습니다. 돈 벌기에 혈안이 된 그들에게는 돈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던 같습니다.
   어떤 때에는 교회 안에서도 돈의 위력이 대단한 경우를 봅니다. 돈 있는 사람들의 소리가 커져서 교회를 주장하는 경우도 봅니다. 그런데 돈의 소리를 듣고 따라가다 보면 주님과 원수가 되는 길로 가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많은 성도들이 능력을 잃어갑니까? 돈을 사랑해서 그렇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고 하였습니다. 돈 소리를 들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열리기 바랍니다.
   둘째는, 성전 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이 돈으로 제물을 산다든지, 돈을 바꾸는 자체를 책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필요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돈에 눈이 어두워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고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것도 문제였지만, 주님께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 장소였습니다. 성전 안에서, 아마 개종한 이방인들이 들어와 기도하며 예배하는 뜰로 여겨지는 곳에서 이런 장사 행위를 한 것을 도저히 참지 못했던 것입니다. 성전이 하나님 아버지의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었기 때문입니다(막 11:17). 그렇게 장사를 하고 떠들고 있는데 어떻게 기도를 합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크게 분노하셔서 채찍을 만들어 사람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으시고 짐승들을 성전 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환전상들의 상을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빨리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떨면서 성전 밖으로 도망갔습니다. 한 사람도 예수님에게 대적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그 자리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분노하시는 얼굴을 보는 자들마다 공포에 질려 버렸습니다. 여태까지 어느 누구도 성전 안에서 감히 그렇게 행하며 외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드러내 놓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아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렇게 부르면 신성모독죄로 다스려지고 돌로 쳐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제자들은 시편 69편 9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17절)!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삼키리라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여기 ‘삼킨다’는 말은 ‘불태운다’ ‘망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즉 완전히 그 열정에 사로잡혀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고 그 일을 해버린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때문에 생명을 내놓았다는 의미가 됩니다. ‘성전은 거룩해야 한다, 예배는 정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얼마나 성전을 사모하십니까? 만일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 교회에 오시면 채찍을 들고 휘두르지 않으실까요? 강대상을 뒤집어 엎으시지 않으실까요? 찬양대원들을 다 쫓아내지 않으실까요? 돈에 눈이 어두운 채, 다른 목적으로 앉아서 건성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있어서 그렇게 화를 내시지 않으실까요?
   우리 하나님은 그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더러워지고, 예배가 변질되는 것을 참지 못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 우리 마음 속에 탐욕을 가지고,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거나, 추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지도자들이 자기의 명예를 내세우고자 교회를 이용하여 자기 잇속을 챙기려고 하는 것을 보신다면 채찍을 들고 내어 쫓으실 것입니다. 아니 정말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적어도 성전은, 예배당은 다른 장소와 구별해야 합니다. 장사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업을 하고자 이용하면 안됩니다. 기도하는 곳이며, 찬양을 드리는 곳이며,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말씀을 배우는 곳입니다. 성도들이 사랑을 나누는 곳입니다. 하나님 만이 높임을 받는 곳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때문에 성전을 더럽히는 그 어떤 것도 생명을 걸고 막았습니다. 우리도 그 주님의 열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성전을 더럽히고, 예배를 예배답지 못하게 타락시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면 어떤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막겠다는 뜨거운 열심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교회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는 주님을 막지 못하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주님에게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상상도 못하는 일을 하였는데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고 따지기 시작합니다(18절). 사실 표적이라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기적이 나타나서 주님이 참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나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일인데,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서 표적을 요구하고 있으니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하고 계십니다. 또한 구약 성경에도 이런 사실들이 분명히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표적을 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돈에 양심이 팔려서 옳은 것을 보고서도 옳다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알지만 믿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말씀이 나왔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절)! 정말 생명을 걸고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귀환한 유대인들이 스룹바벨의 지도 하에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들의 도움으로 재건된 것을, 헤롯 대왕이 약 주전 20년에 대대적으로 보수 공사를 시작하여 화려한 성전으로 탈바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46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완공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후 63년에야 대공사를 끝낼 수 있었는데, 주님께서 예언한대로 만 7년 후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하여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다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할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46년 이상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나중에 주님께서 재판을 받으실 때에 성전 모독의 중요한 고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이었던 것입니다(21절).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부활하고 난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과 주님의 말씀을 믿었다고 하였습니다(22절). 즉 나중에 유대인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때에 주님은 사흘 만에 살아나심으로 참된 성전을 우리 가운데 세우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치 ‘지금의 성전을 헐어버려라! 그러면 내가 새로운 은혜를 받은 새 사람들로 이루는 새로운 성전, 새로운 예배를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내가 부활한 다음에 너희에게 이 놀라운 예배의 시대를 열어주겠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약의 교회 시대를 여신 것이었습니다.
바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 이루어진 성령의 공동체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성령이 거하는 전이라고 했습니다(고전 6:19). 고린도교인들은 이방인들이요, 더러운 자들이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 안에 거룩한 성령을 모신 자들이었기에 그들은 거룩한 성전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피 값을 지불하고 산 몸이 되었으니 그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고전 6:20).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얼마나 유대인들의 마음이 강퍅했었으면 2년 후에 또다시 예수님으로부터 성전에서 똑 같은, 아니 더 심한 질책을 받습니까? 참으로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가 힘든 것을 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는 성전,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어떤 예배를 우리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 같습니까? 주님께서는 거룩한 성전, 거룩한 교회를 원하십니다. 타락하여 부패하는 것을 보시면 진노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종교개혁도 그래서 일어난 것입니다. 얼마나 로마 천주교회가 타락하고 부패하였기에 더 이상 참지를 못하시고, 루터나 칼빈, 낙스나 위클리프, 허스나 쯔윙글리 같은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개혁하게 하신 것입니다.
   거룩해야 될 교회를 사업하는 곳으로, 개인의 이익을 위한 곳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어떤 다른 목적으로 변질되거나 부패하지 않도록 주님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갖도록 합시다. 곧 신랑과 결혼을 하게 될 정결한 신부로서의 모습을 늘 유지하도록 뜨거운 열정을 가집시다. 비록 소수가 모이더라도 변질되지 않는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예배로, 영원토록 주님만을 높이는 우리들이 됩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되게 합니다.
   오직 교회에서는 눈물의 기도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기도소리가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저 모이면 기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만 드리는 기쁜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위한 찬양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찬양이어야 합니다. 또한 오직 주님의 말씀만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도 살아계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표적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놀라운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입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교회 위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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