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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0-03-09 (화) 04:0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39    
[3/7/10]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는(2)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는(2) (요 1:29-34)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의 자세, 태도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19-28절).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모습에서 그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임을, 한낮 도구에 불과함을 깨닫고 우리 자신들을 부인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증거할 때에 어떤 내용을 증거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본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산헤드린 공의회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자들에게 자신은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그 선지자도 아니며 다만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소리임을 증거한 다음 날,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것을 봅니다(29절). 그리고는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29-30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에 한번씩 유월절(Passover)이 되면 어린양을 잡아서 피를 흘렸습니다. 오래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하기 바로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마지막 재앙이 각 가정의 맏아들을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 이 재앙을 벗어나는 길은 딱 하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알려 주셨습니다. 바로 어린양을 대신 죽여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재앙을 내리는 천사가 그 집을 그냥 지나갔습니다. 재앙을 면하는 길, 죽음을 면하는 유일한 길은 어린양의 피를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계속 했으니 그 동안 수천만 마리의 어린양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죽었을 것입니다. 이 어린양들이 그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 백성들이 지은 죄를 일시적으로나마 해결하려면 양이 대신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 어린양은 자기 생명의 담보였고, 자신의 또 다른 생명이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자기가 죽어야 하는데 양이 있기 때문에 자기는 안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양은 흠이나 티가 조금도 없어야만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상한 곳이 없어야 했습니다. 사실 짐승의 어린 새끼들은 다 귀엽고 예쁩니다. 그런데 어린양 새끼는 정말 아름답다고 합니다. 흰 눈 같이 깨끗하고 순결하며 아무 죄가 없습니다. 다른 양을 머리로 들이받은 적도 없고, 다른 사람이나 아이를 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유월절 어린양이 바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바로 그 어린양이 자신 앞에 나타났기에 백성들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양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34절).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 새 생명을 주시고,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죄를 옆으로 잠시 치워두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치료하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이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이 놀라운 죄 사함의 은혜를 전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죄 사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영원한 죽음, 지옥의 고통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죽을 병이 걸려서 곧 죽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그것을 안다면 돈이 문제입니까? 결혼이, 직장이, 사업이, 대인관계가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문제는 딱 한가지입니다. 죽을 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병의 회복입니다.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각 심령에 예수님의 피가 묻어 있는지, 없는지 입니다. 그 사람이 가난하거나 부자인지, 많이 배운 자인지 못 배운 자인지, 잘 생겼는지 못 생겼는지, 흑인인지 백인인지, 아니 심지어 죄를 많이 지었는지 적게 지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의 문설주에, 그 가정의 문설주에 그 피가 발려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각 사람의 마음의 문설주에 발려 있으면 사망과 저주와 불행의 씨앗이 그 사람을 넘어갑니다. 그 피를 보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심판에 이르지 않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는 그의 피를, 피 묻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예수님을 믿는 분들도 신앙의 핵심을 잘못 짚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나와 내 가정을 지켜주시고, 여러 가지 복을 주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신앙생활 잘 하면 세상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그 자손들도 잘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강의 축복도 받습니다. 또 예수님을 잘 믿으면 결혼생활도 훨씬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진짜 복은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세상의 육적인 복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복이요,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만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꼭 그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런 세상적인 복들은 다 허무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인생 말년에 전도서에서 고백했지 않습니까?
진짜 복은 죄 사함의 은혜, 그 어린양의 피의 은혜입니다. 그 피 때문에 죽지 않고 영혼이 영원히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 가운데 가장 큰 은혜는, 축복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보혈로 덮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 보혈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 보혈의 공로를 가볍게 여기고,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내 힘으로 살겠다고 발버둥 칩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보혈의 은혜를 기억하고, 보혈의 능력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그 피의 능력으로 하늘의 승리를 맛보고, 성숙해져 가라고 하십니다. 할렐루야!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한 또 다른 내용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는 데,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를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31절).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이를 물로 세례를 줄 때에 성령이 내려서 머무는 것을 보면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아서 증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33-34절). 32절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정말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왔으며, 하늘로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이 그 아들이시며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세례 요한은 들었습니다(마 3:16-17; 막 1:10-11; 눅 3:22).
여기서 세례 요한은 자신이 주는 물 세례와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 세례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주었던 물 세례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물 세례는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미 자체가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람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막 1:4-5)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의하면 물 세례의 특징은 마치 율법의 역할과 같습니다. 몽학선생, 즉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이었습니다(갈 3:24). 예수님의 보혈이 필요함을 느끼도록 이끄는 몽학선생의 역할이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성령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에게 물 세례를 주지 않습니다만, 물 세례의 의미는 자신의 죄를 깨달으며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에 감사하여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인데,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신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표현하면 신들리는 것입니다. 무당들처럼 악한 마귀의 귀신이 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이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영이 없어도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만 단지 일정한 기간만 생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 후면 영원히 사망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영원히 살려면 성령이 그 안에 오셔야 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면 죄로 인하여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될 수 있고, 구원 받게 됩니다. 새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성령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하신 것처럼, 주님의 요청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시는 영이 성령님이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질 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을 때 받는 은혜가 성령 세례입니다. 이것이 체험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령 세례에 대한 확신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 중에 예수님을 믿을 자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고 해도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 구속 사역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앞서 언급하였듯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우리를 자신과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과 한 몸이 됩니다. 사실 세례의 의미가 연합한다는 뜻입니다(롬 6:4-5). 또 다른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 위에 도장을 찍어서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엡 1:13; 4:30). 믿는 우리들이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으로 죄를 범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본의 아니게 실수를, 잘못을 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탄, 마귀들이 금방 쫓아와서 우리를 낚아채 예수를 못 믿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귀들은 우리를 유혹하고 괴롭힐 수는 있지만 내주하시는 성령님 때문에 우리를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어 망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죄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성령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데, 성령의 힘으로 말미암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세상을 이길 힘이 생긴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혹시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지 않으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영원히 형벌을 받습니다. 죽어서 끝나버리는 것 같으면 좋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하였습니다.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대신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혈을 믿으면 삽니다.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마음을 열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보혈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임하셔서 인을 치시고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탄, 마귀들이 어쩌지를 못하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흉악한 형상이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던 형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회복됩니다. 모든 허물과 죄를 없이 하시며, 상처를 치유하시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그 은혜를, 선물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니 이미 그 보혈의 은혜를 입으며, 성령 세례를 받으신 여러분들!
입을 열어 이 복음을 증거하고 살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처럼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분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증거하지 않아서 그 분이 지옥을 가게 된다고 한다면 주님께서는 그 책임을 여러분에게 물을 때가 옵니다. 놀라운 보혈의 은혜를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원하여 흘려주신 보혈입니다. 회개하여 성령을 받아야 함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할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내주하심을 잊지 마십시오. 그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서 자유롭게 역사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을 온통 성령님께서 지배하시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지키시고 주장하시도록 말입니다. 제발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삶에서 능력이 사라집니다. 빛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됩니다. 흘려주신 그 보혈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늘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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