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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1-15 (월) 10:3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139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시 100:1-5)


우리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입니다. 교제가 가능합니다.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원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만 먼저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이 필요한지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은혜를 구하지 않을 것이며, 주어져도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새해 첫 주일에 ‘우리 하나님은 절대주권자입니다’ 라고 말씀드리면서, 우리가 믿는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은 온 우주 피조물에 대하여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진정한 자유를 가지셨다고 하였습니다. 만물의 통치자요,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할 의무도 없으시고, 우리를 구원해야 할 의무도 없으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응답할 의무도, 축복할 의무도 없으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들은 순전히 주권적인 은혜의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빚진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당연하며, 이러한 하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러한 모습들을 받으시면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도구로 우리를 사용하신다면 그것이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계속해서 본문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이심을 살펴보기 전에, 도대체 ‘우리는 누구인가’를 잠시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을 가리켜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고 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하였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한 원죄로 말미암아, 태어나면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죄로 인하여 인간의 마음이 너무 비뚤어져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으로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아니 선을 해할 능력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선은 세상에게 이야기하는 도덕적인 착함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기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고 하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조금도 가치가 없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엄청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우리 중 아무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사랑을 받은 것 밖에 없는데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십니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복 주시고자 하십니다. 이 사실은 참으로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감격하게 합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게 합니다.

여러분! 살다가, 혹은 신앙생활하다가 한계에 부딪쳐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인생을 좀 사신 연세 드신 분들은 쉽게 동의하시겠지만, 아직 젊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어쩌면 자신이 스스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심사숙고 하시면, 특히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많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시고, 지치지도 않으시며, 한번 계획하신 일은 실패하는 일이 없이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우리는 하루 하루 살면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윗 왕은 그 위대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한 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시 40:1-2)!

오늘 본문 시편 100편은 ‘감사의 시’입니다. 때로는 ‘기쁨의 노래’(a song of Jubilee)라고도 불리기도 하는데, 유대인들이 성막 혹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하였습니다. 요지는 우리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첫째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그 분은 하나님이시며(1-3절), 둘째로 그 분은 선하시고, 인자하시며, 그 성실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4-6절).
3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라고 말합니다. 창조주 여호와 그 분이 절대주권자이신 참 하나님인줄 알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것,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르시며 돌보시는 양들입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인정하고 믿는 성도들은 그 하나님을 즐거이 부르며, 섬기며, 노래하게 되어 있습니다(1-2절). 그래서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4절)라고 시편기자는 외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만 아닙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도, 홀로 있을 때에도 그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와 찬송이 입에서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전혀 우리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 이유가 없는데, 허락하시는 까닭이 5절에 나옵니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우리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기에, 그 인자하심, 자비하심이 영원무궁하기에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변덕스러운 날씨와 다릅니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베푸는 사랑과 자비와 다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는 어떤 것에도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다만 사랑의 방법과 모습이 여러분에게 다르게 보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십자가에서 확실하게 봅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주님에게 ‘나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이만큼 사랑한다’ 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그의 팔을 펼치시고 숨을 거두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을 십자가에 고정시킨다면,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 모습을 바라본다면, 그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다 넘치는 자비, 초월적인 사랑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 성실하심, 즉 신실하심이 우리뿐만 아니라, 대대로, 즉 자자손손에게 미친다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우리에게 더욱 소망이 됩니다. 죽으면 잠시 후에 우리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또한, 우리 성도들은 지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는 죽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시간 전에는 죽을 수도 없고 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순례자의 길이 어디서 끝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길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함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에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나이 많은 성도가 매일 하는 기도가 있는데, 그 기도가 자신을 환란에서 지켜준다고 했습니다. 그 기도는 바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 6:13)! 우리가 곤경에 처할 때에 포기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주님의 어떤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우리가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 안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의 끝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내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내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 영광입니다. 주님! 오늘이나 내일 뿐 아니라 영원히 그렇습니다. 아 멘!’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어느 것도 우리가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문제는 삶에 어려움이 다가오기 전에는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업이 망했을 때에 돈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중병에 걸렸을 때에 건강에 대한 필요를 느끼는 것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니 그런 큰 어려움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인식하는 것 이상으로 그 분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 15:5)!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요.
믿기 전 우리의 삶은 죄로 인해 망가진 삶이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는 죄 때문에 신음하고 괴로워합니다.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자연 질서도 무너지는 상태입니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길거리에서 총에 맞으며, 결혼은 절반 이상이 깨어지고, 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사람들의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맹신하는 종교 때문에 자살 폭탄 테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절대로 더 좋아지지 않습니다. 과학 문명의 발달로 조금 편하게 살게 될지는 몰라도 세상은 점점 악하여져 갑니다. 아무 것도 우리를,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원래 만들어 놓으신 상태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는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란에서 구원하셨도다”(시 34:6) 라고 고백한 다윗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어려운 상황에서 건짐을 받기 위하여 주님께 부르짖으면 우리의 소리를 들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부르짖지 않으면 듣지 않으십니다. 부르짖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자신만만한 자들은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곤고한 자’ 만이 주님을 부릅니다. 겸손한 자들 만이 주님을 부릅니다. 그리고 도움을 받습니다. 전혀 그러실 의무가 없음에도 사랑과 자비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시는 주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 임이요”(마 5:3)라고 말씀하신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 애통하는 자들,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는 온유한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비와 긍휼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우리가 교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고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할렐루야!
하지만 여러분 스스로 얼마나 주님이 필요한지 인정하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어떤 사람들은 밑바닥까지 내려가서야 비로소 위를 쳐다보며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조금 일찍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줄 알고 부르짖었다면 그런 지경에까지 가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나마 그 때에라도 돌아서서 부르짖으며 도움을 청하니 다행입니다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주님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무슨 일에든지 겸손히 주님께 간구하세요. 어려울 때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주님의 일, 교회의 일은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호사밧이 남 유다의 왕이었을 때에 한번은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이 연합하여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숫자에 잘 무장된 군사들이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결코 물리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때 왕은 전국적인 금식을 선포하였습니다.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주님께 간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여호사밧 왕과 모든 백성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대하 20:6-12).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응답하신 후, 다음 날 적들이 혼란에 빠져 서로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군대는 전쟁을 치르지도 않고 대 승리를 거두고 전리품을 탈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여 하나님께 허락하신 승리에 감사를 드리고, 기념하며 찬양을 드렸습니다. 인상 깊은 것은 여호사밧 왕의 기도 마지막에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하) 라고 주님께 말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망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쓰러질 수 밖에 없습니다’ 라고 부르짖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도와주시는, 얼마든지 도우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베푸신 사랑과 자비를 감사드리며, 찬송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전적으로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삶의 모든 영역에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부르짖으십시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고 하였습니다. 물론 여러분 자신을 온전히 내어 드려 하나님께서 어느 길로, 어떤 방법으로 인도하시든지 그 분 뜻대로 살겠다고 작정하십시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에게는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을 확신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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