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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3-19 (월) 08:1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143    
거룩하게 하신 자들을 온전하게 하시려고(히 10:1-18)


우리가 성도, 즉 거룩한 무리에 속하게 되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된 이유는 오직 복음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때문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성도가 아니라면 그런 삶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된 우리는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주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고난을 견디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2000여 년 기독교 역사 속에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우리를 거룩하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온전하게 하시려고 자신을 제물로 드린 것이라고 말입니다(14절). 우선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희생제사가 죄를 없이하지 못했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1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온전케 할 수 없었다’는 말씀은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갈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모든 인간의 간절한 바램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종교심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만들지요. 메시아를 믿지 못하는 유대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런 종교적인 제사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율법에 의한 예식은 그림자일 뿐이었습니다. 진정한 실체가 아니었기에 죄인들로 하여금 죄를 생각나게 할 뿐 완전히 죄를 없이 온전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예배를 종교적인 제사로 알고 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아니 인식하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 사함의 경험을 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불신앙 때문이죠.
히브리서 기자는 만약 율법의 제사가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을 단번에 정결하고, 온전하게 하였다면 왜 계속 제사를 드렸겠느냐, 그치지 않았겠느냐고 합니다(2절). 다만 지은 죄에 대해 생각하게 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3절). 그리고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4절)고 하였습니다. 짐승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림자인 짐승의 피로는 그 동안 지은 범죄에 대하여 일시적으로 사함을 받기는 했어도, 그 행동의 뿌리가 되는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죄를 짓지 않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즉,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제사는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한 것입니다.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를 받아들이셨는데 그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진정으로 인간의 죄에 대하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메시아를 예언한 시편 40편 6절에서 8절을 인용하여,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5-7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헌신된 마음이었습니다. 그 어떤 제사도 그냥 형식적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그런 제사를 원하지 않으셨다고, 기뻐하지도 않으셨다고 합니다(8절). 다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온 마음을 다한 순종만이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였던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오직 두루마리 성경책, 구약에 예언된 대로 메시아(그리스도)이신 우리 주님께서만 하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옛 언약이 새 언약으로 대체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9절)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겠다는, 헌신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우리의 연약함에 대하여 상하고 통회하면서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는, 순종하겠다는 각오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난 후에는 정말 최선을 다하여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우들 가운데 그저 ‘내 뜻’을 이루어달라고 하나님께 조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결과 우리 성도들에게 임한 축복이 바로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절)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단번에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려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를 없이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11-12절)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제거해 버릴 수 없었던 제사를 반복적으로 매일 서서 드려야 했던 제사장의 수고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완전한 제사였습니다. 옛날처럼 반복해서 ‘서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인 주님께서 ‘앉아’ 계십니다. 구속사역의 완성이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탄 마귀의 머리를 치셨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지만, 우리의 원수인 사탄 마귀가 악한 영들을 부리며 아직 역사를 하고 있기에 우리는 궁극적인 승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13절)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 때가 되면 사탄 마귀는 완전히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늦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아직도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십자가와 부활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는 효력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14절)! 바로 본문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말씀을 심령 깊이 새기고 자신의 것으로 삼고 돌아가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이미 거룩하게 된 우리들,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우리가 전혀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분, 정체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기 전에는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없는 우리들이었지만, 이제는 죄 문제가 해결되어서 얼마든지 하나님께 가까이 온전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허락하신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자녀 삼으셨다는 말입니다(요 1:12).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온전히 온전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기에 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연약하여 죄를 지었다면 자백하고 회개하여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다시 받아주시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얼마든지 거룩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것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레미야 31장 33절-34절에 예언된 새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15-17절) 하였습니다. 즉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인을 치시고, 우리의 생각을 주장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살 수 있게 해주셨다고 합니다. 완전히 용서함을 경험하게 하심으로 죄책감을 없이해 주셔서 다시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으며(14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해 주시며,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날 세상의 많은 교회들이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불신하며 세상 문화에 젖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교인들도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생활, 교양강좌를 듣는 취미생활 정도로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자주, 아니 매 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선포되어 왔고, 앞으로도 복음의 능력만을 선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삶의 전부요,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을 성취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주님의 십자가를 경험해보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까? 이 시간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죄를 없이해 주신 십자가의 능력이 그 삶에 나타나기 원합니다.
아니 복음을 믿어 성도가 되신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다시금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죄를 없이하는 것이 구약의 제사로는 불가능했기에 약속하신 대로 2000여 년 전에 우리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셨습니다. 이제 다음 주간이면 예수님의 고난을 다시 한번 묵상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오늘 말씀을 청종한다면 그 의미를 새롭게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의 단번에 드린 영원한 제사로 말미암아 우리는 엄청난 축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없이해 주셔서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온전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주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그렇게 살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절하)고 하신 것처럼, 우리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고 한 것처럼,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니,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죄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갈 5:1)고 한 것처럼, 마귀에게 끌려 살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을 온전하게 하신 복음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바로 우리를 빛이 되게 하셨고, 소금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빛을 발하도록, 짠 맛을 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제발 십자가를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가짜 믿음이 아니라면 저는 우리의 삶 속에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새 언약을 성취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얼마든지 일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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